[안녕, 감정] 16 유치한 감정의 흐름


이번 주는 꽤나 시무룩할 일이 많았다.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으면 중간이라도 갈 것을 뭘 또 이렇게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만큼 참으로 잘도 변한다. 1년 전, 2년 전, 3년 전 쓰지 않은 일상은 사라져 가고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감정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오래전 쓴 글을 보며 문득 놀랄 때가 있는 거다. 내가 아닌 타인의 기록 같아서. 특히나 첫 직장을 다니고 여행을 다니기 전 사이 공백기 동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갔는지 미지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그다지 기록이 많지 않다. 그럴 때 보면 결국 우리는 모두 오늘을 살뿐이다. 과거에 회한과 미련을 가득 남겨두고 과거에 잡힌 것처럼 느껴지고 미래의 불안함에 짓눌려 오늘을 낭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엔 오늘을 산다. 그 충만한 감정에 대한 마음가짐이 조금 다를 뿐이지.

기록하지 않는 모든 하루가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는 별로이고 특별하지 않은 하루라도 적지 않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천하재일 연재대회가 이번 주에 끝나가는데 기준이 되는 20개 글에 한참 모자란 15개의 글을 완성했다. 전부다 마음에 드는 글은 아니나 대충 써 내려간 글은 아니다. 생각보다 내가 선정한 주제가 너무 어려웠다. 감정에 관련한 지식도 아닌 개인의 에세이라니. 갖다 붙이면 일상의 모든 주제가 감정과 연결되어 소재가 무궁무진했는데 비틀어 생각하면 억지로 짜낸 느낌이 들어 어느 것 하나 원래 의도에 부합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적당히 타협을 한 채 써 내려갔고 어느 날은 한 문장 쓰고 한 문장 쓰고 지우다가 생각이 날 때 적자고 접었다. 그리고 도무지 그 글일 쓰고 싶단 욕구가 돌아오지 않아 억지로 책상에 앉아 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주어진 날이 다 지나갔다.

마감의 힘이라기보단 책임감과 약속이란 측면에서 이번 주라도 5개를 모두 적어버릴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글에 담을 메시지의 힘이 빈약했다. 브런치에서의 에세이를 읽다가 '써야 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쓰고 싶어 쓰는 글이 아니라 쏟아내지 않으면 못 배기는 그런 글을 쓰고 있다.'는 작가의 고백을 들었을 때 내 마음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매일 긴 분량의 '쿠바노 시리즈'를 적을 때 느낀 그 감정이다. 쓸 수밖에 없는 글이 있다. 효용 가치를 말하는 것도 수준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마음속에 담긴 하나의 이야기나 메시지가 꼭 분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글이 있고 그런 글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강렬하고 아름답다.

또한 이 감정에 파고들다 보니 글이 주인을 닮아 부정적이거나 힘이 빠질 소재들에 무게가 실려버리고 말았다. 끊임없이 단점과 약한 점을 고백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낼 생각도 의지도 없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고 단점을 말하는 건 내게 힘들지도 그다지 부끄러운 일도 아니나 그렇다고 이 부정적인 기운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세상에 부정적 메시지를 설파하고 징징거리는 어린아이와 다름없었다.

또 하나 굳이 20개의 글을 써야 한다는 제한을 두지 않는 연재대회의 유연성에 마음을 놓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신청하면서 누군가의 연재 기회를 빼앗아 간 게 사실일지도 모르나 이미 일은 벌어져서 바뀌는 건 없다. 내가 여기서 15개의 글을 쓰며 마무리를 하든 20개를 꽉 채우든 연재대회측에는 그다지 큰 피해도 룰을 어긴 것도 아니라는 위안이 들었다.

한 가지 이 일이 내게 주는 교훈은 나름 메타인지가 발달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글쓰기는 내 생각보다 더 어려웠단 점이다. 글을 기고하거나 마감이 있는 자신의 이름을 건 전문 작가들의 글쓰기는 역시 나도 너무나 멀고 어려운 이야기다. 간접체험이 되었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인데 월요일 지하철에서 숨이 멎을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하고 싶은 걸 찾았다. 그리고 그 감정은 실로 오랜만에 찾아와 이전 데이터를 찾기도 어려웠다. 놀라운 건 이미 머릿속으로 평소라면 생각하기도 싫은 문제들을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정리하며 그 일을 하기 위한 계획을 순간적으로 세우는 나 자신이었다. 힘과 에너지가 넘쳐났고 뭐든 다 괜찮을 것 같았다. 나태하고 귀차니즘 무기력과의 동행이 너무 길어 내게 그런 모습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물론 여러 고민과 논의 끝에 나는 그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한 번도 쥐어본 적 없는 저 먼 곳에 존재하던 다른 존재임에도 마음속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긴 듯 상실감이 들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많이 시무룩했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에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었잖아. 하고 싶은 느낌이 이런 거구나. 잘 기억해야겠어. 이제껏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어서 열의가 부족했던 거였어.

내가 예전부터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님이자 강연자인 '김수영'님은 유튜브에 종종 좋은 책에 대한 리뷰를 올려주신다. 최근 '하버드 행복한 감정 수업'에 대한 책을 소개해줬는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드는 건 그 안에 뇌간을 흔들만한 나의 부족함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 멍해져서 어쩌면 내가 사회적으로 효용가치가 적은 인간이 된 건 내가 너무 감정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른 건 잘 못해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인격적 감정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어쩌면 그저 미성숙한 그리고 끊임없이 성숙하기 위해 바닥에서 물장구를 치며 애쓰는 어린아이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마음 수련이 부족하다. 많이 성장한 것 같다가도 어느 날 그 자리인 것 같은 의심이 든다.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여기서 끝내지 말고 내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내면을 더 채우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도록 일희일비하고 감정에 내 삶의 키를 주어지지 않도록 어렵지만 노력해봐야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많은 말과 글로 쏟아내고 다짐했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그렇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기는 어려우니깐 내게 져주는 셈으로 이번 주까지는 조금 시무룩해있어야겠다.


[안녕, 감정] 시리즈
01 입장 정리
02 감정을 드러내는 거리
03 평화의 날
04 다름에서 피어나는 감정
05 아플 때 드는 감정
06 열등감 - part 1
07 나의 무기력
08 열등감 - part 2
09 거짓 감정
10 위로에 드는 감정
11 인정 그리고 책임
12 멀어지는 교차로에 선 감정
13 이름을 불러줘요
14 타인의 삶을 시샘하며
15 집단, 결핍,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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