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은 대부분 잊힌다. 강렬했던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사라지기 마련이다 (물론 때로는 나를 놔주지 않는 감정이 있긴 하다) 감정은 사적이고 상대적이다.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감정은 영원히 내 마음속 비밀처럼 간직할 수 있다. 누군가는 그냥 그렇게 감정을 마음에 담아두기를 선호하고 다른 이는 꼭 표현하길 원한다. 어쩌면 사람을 만나는 건 감정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일, 서로에게 드러낼 감정의 거리에 따라 그저 지인 혹은 친구나 연인 같은 특별한 관계로 구분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는 어디쯤일까? 그 지점은 서로 합의될 수 있는 걸까? 오늘은 감정의 거리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01 감정을 드러내니 치유가 됐었다.
우울했다. 아니 우울한지도 몰랐다.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다.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았다. 혼자 고립된다. 어느 날인가 나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쯤 병원에 가게 되었다. 약을 먹고 상담을 하면서 우울한 감정은 많이 사라졌다. 그때 배웠다. '감정은 표현하는 거구나.' 해결되는 게 없어도 말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위안이 되는 거구나. 나는 내 감정을 억압하지 않기로 했다. 관심을 가지고 알아주고 나누고 공감하면 괜찮아지는 경험을 했고 내게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무렵 첫사랑을 했다. 그는 내 연애의 기준점이 되었다. 우리 사랑에 연애 감정이 3 정도라면 서로를 보듬어주는 마음이 7 정도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는 내 아빠가 되어줬던 것 같다.
나는 세상 가장 견고해 보이는 가족이라는 관계조차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은 직후였다. '아, 엄마도 아빠도 나를 떠날 수가 있는 거구나. 당연한 게 아니구나.' 그게 어린 내겐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사람을 믿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는 그를 만났고 나의 애정 결핍 욕구를 빈틈없이 채워주었다. 나를 무조건 사랑해주었고 관계에 대한 불안한 내 마음에 확신을 주었다. 가족도 해줄 수 없는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다른 존재가 세상에 존재하는 거구나. 그래서 그에게 비밀 같은 건 없었다. 타인에게 말할 수 없는 가장 내밀한 감정도 그에겐 아무 부담 없이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있었다.
눈이 펑펑 오던 밤, 평소 20분쯤 걸리는 그 거리를 1시간쯤 걸어 눈사람이 된 상태로 그의 집에 도착했다. 연락도 없이 멋대로 찾아와 문을 두드린 채 멍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놀라 눈을 털고 이불을 덮어주며 말없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그. 우리 사이에 선이 없었다. 내 멋대로 굴어도 나를 책망하지 않았고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감정을 내뱉어도 놀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었다. 그의 모든 걸 알고 싶었고 나의 모든 걸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연인이 되면 그래도 되는 줄만 알았다. 아니 그래 줄 수 없다면 연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02 풋내기 시절의 연애
새내기 시절 풋풋한 연애를 했다. 동갑인 그 남자애는 동아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그는 날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좋아한다고 남자답게 고백했다. 우리는 곧 사귀게 되고 설레고 행복한 순간이 가득했다. 뭐랄까 그건 내 인생에서 드물게 존재하는 청춘 로맨스물 연애였다. 처음에는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갔다.
나의 요동치는 감정을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그때 지금보다도 더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에 늘 지배받고 있었다.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으니 오히려 내 마음은 불안해지고 감정의 동요가 생겨났다. 그리고 난 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남자애에게 내 부정적이고 어두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사귄 지 한 달 만에 나는 그 남자에게 장렬하게 차였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반수를 한다는 이유로 애매하게 내게 거리를 두는 그 남자에게 술 한 병을 마시고 전화해서 헤어지고 싶으면 제대로 말하라고 진상을 부리니 몹시 어렵게 그의 헤어지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무얼 잘못한 건지 그냥 이별이 슬펐을 따름이지.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해보니 그에게 참 미안한 게 많았다. 아마 그는 평범하게 데이트하고 가끔은 사소한 일로 투정을 부리고 질투도 하다가도 어느새 화해하고 같이 공부도 하는 그런 캠퍼스 생활을 함께할 발랄한 여자 친구를 기대했을 텐데.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세상 다 산 표정으로 죽는소리를 해대며 어쩌지 못하는 부정적이고 다크 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에게 표현하곤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새내기의 연애란 무릇 그런 것일 리 없었는데….
연인이라고 감정을 모두 표현해도 되는 건 아니었다. 스무 살의 나는 어리석게도 몰랐다. 나도 감당할 수 없는 내 감정을 타인에게 받아들이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건 참으로 이기적인 태도였다.
03 거리 설정
그렇게 나는 살아가면서 경험에 근거해 각자의 거리 설정을 하게 된다. 이 친구와는 여기까지, 저 친구와는 거기까지 우리가 서로 불편해지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적당한 감정의 거리를 재기 시작한다. 그 감정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내겐 더 친하고 특별하단 의미가 되었다.
내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네가 힘들 때 외로울 때 생각나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어.
과거에는 행복이나 즐거운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슬프고 우울하고 비관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친구라면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물론, 속상한 일이 있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친한 사람과의 대화는 도움이 된다. 그 일을 잊고 훌훌 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좀 더 근본적인 절망과 부정, 자기비하 같은 단단하고 무거운 감정은 타인의 행복까지 앗아가곤 했다. 그건 누가 뭐라 한다고 위로가 되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에 가닿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 냈고 그 사람과 그 감정이 조건화되어버려 만남을 피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상대의 감정에 지쳐 벽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나는 나로 인해 누군가가 그 벽을 보고 있을까 두려워졌다.
내 감정 하나 감당하기도 버거운데 사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루를 버티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답 없는 문제를 공유하며 괴롭히고 싶지 않게 되었다.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 있다. 어떤 감정은 표현하지 않고 묻어두는 게 좋을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가까운 사이에서도 자연스레 정리된 이후에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졌다.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게 정제된 감정을 조심스럽게 꺼내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었고 내가 이렇게 느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과거의 일로 만든 후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일이 많아졌다.
어쩌면 예전보다 감정을 드러내는 거리가 좀 더 멀어졌을지 모른다. 오히려 조금 거리를 두니 알겠다. 내가 책임져야 할 못난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받아주는 상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또 여전히 내게 말하기 어려운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 마지막으로 꼭 감정의 거리가 관계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척도가 아니라는 사실도.
여전히 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감정을 드러내도 될 만한 적당한 거리를 끊임없이 재고 있다.
[안녕, 감정] 시리즈
01 입장 정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