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감정] 01 입장 정리

감정 너를 어쩌면 좋을까?


감정적인 인간

정확한 정의를 몰라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감정이란 게 정확히 뭔지 몰라도 이건 확실하다.

난 감정적인 인간이다. 비하하는 표현 같아 좀 더 구체적으로 적자면, 나는 '작은 자극이나 사건에도 타인보다 좀 더 많은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에 의미 부여를 잘하는 사람'이다.

이 표현 자체가 긍정을 나타내거나 부정인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한 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감정적인 인간은 확실히 피곤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채 360도 회전하는 열차에 꼼짝없이 몸을 맡겨야 한다. (난 분명 롤러코스터 대기 줄에 서 있던 적이 없는데도) 선로를 따라 하늘을 붕붕 나는 듯한 환희를 겪다가도 어느새 땅으로 곤두박질쳐버린 자괴감으로 마무리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평온한 일상 속에도 감정을 건드리는 사소한 일이란 끊임없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아침 출근길 스마트폰을 보느라 유난히 옆구리를 찌르는 한 남자의 팔꿈치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물론 반대급부로 좋은 점도 있다. 사소한 일에 감동하고 행복도 쉽게 느낀다. 회사 동료가 날 위해 챙겨 온 초콜릿 하나에 기분이 두둥실 좋아지고 오랜만에 온 친구의 안부에 설레고 기쁘다.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잠시의 수다로도 너무 쉽게 기분이 풀리곤 한다. 특히 잠은 나의 모든 감정을 해결해주는 가장 믿음직한 특효약이다. 어떤 슬픔과 분노, 우울함도 자고 일어나면 늘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자고 일어난 직후 생각이 끼어들지 않은 그 멍한 순간이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하루 에너지는 어쩌면 감정을 느끼는 데 모조리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에어팟 오른쪽 분실한 후 세상을 잃은 듯한 자책의 카톡 8:30AM


에어팟을 찾은 후 고작 20분만에 일어난 극심한 기분 변화


감정이 거슬리기 시작했을 때

아마도 어릴 적에도 똑같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어떤 감정은 말로 배우고 나면 선명해지기도 하다. 반대로 분명 특정한 감정이 드는데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나의 신체 변화가 어렸을 적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다. 감정이 무뎠던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감정이 충만한 인간으로 변모하진 않았을 것이니. 분명 어릴 적에도 감정이 충만한 아이였고 이는 내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 키우기 참 쉬운 아이'였다고 한다.

언제부터 나는 나의 감정이 불편해졌던 것일까?

그건 감정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느낀 순간이다. 감정 때문에 나의 일상이 훼손되고 있다고 느껴지던 그 지점.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었을 일,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하지 않는 게 나았던 일이 뒤얽혀 일상의 흐름을 놓친다. 감정이 내 삶의 우선순위가 되면 효용과 상관없는 결정이 내려지고 평온할 때 내린 합리적인 결정이 번복되고야 마는 경험이 축적된다. 그렇게 내 쓸데없이 충만한 '감정' 때문에 스스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감정의 파도가 밀어닥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약속을 잘 지킨다. 사람과의 약속이든 일상의 습관으로서의 약속이든 나와 하는 약속이든 쉽게 하진 않지만 한 번 하는 약속을 잘 지킨다. 그러나 내 약속을 방해하는 유일한 요소는 다름 아닌 내 감정이다.

가끔 감정의 파도가 몰아치는 순간이 온다. 나도 안다. 외부의 사건은 계기에 지나지 않는걸. 그저 나의 스위치를 살짝 눌렀을 뿐이다. 그 작은 자극이 비와 바람을 몰고 거대한 폭풍우를 일으켜 내 안의 평화를 산산조각낸다. 난 그 감정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사실은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은 내가 그런 거다.

가끔 유난히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약해져 버리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면 내 감정은 더 요동치고 스위치는 언제라도 눌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어제가 그랬다. 이 글의 상당 부분은 엊그제에서 어제 아침 나를 다독이며 썼다. 요새 마음이 좀 이상하다. 힘이 없고 별거 아닌 일에도 우울하다. 아 뭔가 마음이 말랑말랑해진 시기구나 싶었는데 어제 오후 나절 기어코 스위치가 켜졌다. 회사에서 간신히 눈물을 참고 가까스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들키지 않으려는 꾹 참는 그 시간이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집안일을 하고 건강한 식단을 먹고 요가를 갔어야 했고 이 글의 초안도 끝내려고 했지만, 감정의 파도가 밀려온 나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만화를 보고 잠을 푹 자고 일어났더니 역시 다시 괜찮아졌다)

훌훌 털어버리고 감정이 지나가게 하는 일 그게 잘 안 된다. 뭐랄까 주인은 난데 오히려 내가 셋방살이를 살듯 감정이 괜찮나 어느 순간 눈치를 살피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제발 오늘은 잠잠해 줄래?'하면서….


감정이 내가 아니라고?

나는 얼마 전까지 감정과 나를 동일시했다. 심리학에서 정서, 감정을 나누는 용어를 배울 때도 나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감정과 나를 분리하고 제삼자로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 감정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감정이 몰아치면 여유가 사라지고 그 감정에 사로잡혀 버리고 마니깐 감정과의 분리는 상상할 수 없었다.

감정에 대해 자각을 하게 된 건 최근 몇 권의 책을 통해서다. 어떤 책은 머릿속으로 말하고 생각을 하는 목소리는 내가 아니라고 했고 감정은 왔다가 가게 만들면 된다고 했다. 맞다. 감정은 늘 사라진다.

어떤 책에서는 감정은 어차피 호르몬 작용이니 감정에 속지 말고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행동에 따라서 감정과 생각이 달라진다고 했다. 감정을 바꿀 생각하지 말고 행동을 바꾸라고 충고한다.

반면 어떤 책은 감정을 알아주고 마음을 보살펴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감정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실제로 나는 내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해버려 내 삶을 송두리째 뒤덮었던 곤란한 일이 있었다. 감정은 역시 관심을 지니고 알아줘야 하는 대상일까?

그렇다. 나는 아직 감정에 대한 입장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내가 감정적인 인간이라는 걸 인정한 다음에 나는 무얼 해야 하는 걸까?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을 완연히 느끼면서도 잘 살 수 있을 만한 방법을 모색해가야 할까? 아니면 감정은 일시적이니깐 휘둘리지 말고 기다리면서 감정이 옅어지는 습관을 기르도록 노력해야 할까?

아니, 나는 내 감정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내가 감정적인 인간이라는 게 좋은 걸까, 싫은 걸까? 감정이 피곤하고 귀찮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진정 감정이 무딘 인간이 된 나를 상상해 본다. 그건 또 그거대로 슬플 것 같고 내가 아닐 것 같다. 다시는 좋은 풍경, 사람, 예술 작품을 보며 예전만큼 기쁨이 크지 않을 나를 상상하면 그걸 포기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예술가였다면, 감정이 내게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감정이 예술적 의미로 승화되는 작용을 통해 감정을 마음껏 느껴도 되는 명분을 획득하는 것이다. 아…. 아니다. 그래도 역시 삶이 피곤하긴 매한가지일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 이 시리즈를 통해 다른 날 다를 각도에서 다른 깊이로 이런 답 없는 생각을 적극적이나 비논리적이며 두서없이 해나갈 생각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조금은 감정에 대한 나의 입장 정리가 되어있길 바랄 뿐이다.

감정. 너를 담담하게 풀어 담백하게 고찰하고 싶은데 그런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안녕, 감정? 지금부터 너를 적극적으로 만나보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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