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위로는 감정인가 의문이 들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검색했다. 위로는 행위다. 불쾌하고 잡아두고 싶지 않은 감정을 덜도록 혹은 지나가도록 도움을 주는 따뜻한 행위. 위로엔 어떤 감정이 필요한 걸까? 위로를 하는 사람에게 또 위로를 받는 사람에게 어떤 감정이 지나쳐가고 그것이 어떻게 위로가 되는 걸까?
1. 남자 친구라고 위로가 되진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다 보면 내게 필요한 상대의 조건을 알게 된다. 나와 더 잘 맞는 사람의 리스트가 채워진다. '이런 사람은 절대 못 만나.', '이런 사람이 아니면 절대 못 만나.' 양극단의 절대적 조건이 붙기도 한다. 내겐 그중 하나가 대화였다. 일상적인 대화가 아닌 남들이 자주 하지 않는 진지하고 심도 깊고 자신을 다 드러내는 솔직한 대화. 가끔은 그 '영혼의 대화'가 필요했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그 영적인 대화를 고집했다.
그런데 어쩌다 '집요정'씨를 만났다. 집요정 씨는 영혼의 대화 같은 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게 세상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 경청을 잘하고 숨기는 것도 없이 솔직하지만 그래도 영혼의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 대화로 내게 위로를 줄 수 없는 사람.
오늘도 그랬다. 무언가 내 마음속 내밀한 대화를 하고 싶어 작은 신호를 보내면 눈치 없이 분위기를 깬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시작했던 말을 그저 일상의 언어로 되받아쳐버린다. 나를 사랑해서 내 말을 잘 들어주기 위한 그의 노력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그 말은 내가 바라던 반응이 아니다. 그의 언어를 듣고 있자면 도저히 원래 하려던 모든 말을 내뱉을 수 없게 된다. 나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온 듯 답답한 마음을 접어두고 그저 미소 지을 뿐이다.
어떤 날은 그게 너무 답답해서 혼자 막 쏟아낸다. 집요정 씨는 큰 눈을 멍하고 동그랗게 뜬 채 놀라 내 말을 또 경청한다. 많이 알아들어봤자 50% 정도, 그래도 안 하는 것 보다야 시원하다. 집요정 씨는 내가 영혼의 대화가 필요하단 사실을 나를 통해 알게 되었다.
너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지만 그 대화가 없는 너의 관계를 지속하는 게 내겐 참 고민이다. 그런데 사람이 모든 걸 바라면 안 되니깐 그런 건 너에게 바라지 않겠다고 말하니 그는 물었다.
-그래서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가르쳐줘야 알지.
-으음. 그런 거 가르쳐준다고 되는 게 아니야. 괜찮아.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너를 사랑하지만 그게 내게 위로가 되진 않아.'
2. 위로 받았던 순간
얼마 전 집단 상담에 참여했을 때 위로받은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나 베프와 처음 친해진 그 시점이 아닐까 싶다. 그녀가 나를 별종으로 취급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한 사람으로 나를 대해주는 게 내겐 가장 큰 위로였다. 특별히 내게 더 마음을 써주지도 내 기분을 북돋으려고 노력해주지 않은 게 참 위로가 되었다. 내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그녀의 태도가 내겐 큰 위로였다.
사람보다는 음악, 영화, 책. 우연히 만나는 다수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내겐 더 위로가 된다. 자우림과 Nell, 가을방학 이진아의 노래, 해쉬스완의 랩, 나비효과, 미스터노바디, 파울로 코엘료의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전혜린의 에세이 등.
나와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또 있구나.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건 내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다. 그건 누군가가 깊이 골몰해서 세상에서 내미는 진정성 있는 작은 손길과 목소리다.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이고 보통 관계에서 알 수 없는 부분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낸다. 여러 번 곱씹을 수 있고 원할 때마다 음미할 수 있다. 그 위로에는 대가도 부담도 없다. 내 마음을 전하지 않아도 돼서 더 좋다.
가끔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으면 '고마워, 위로가 되었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쓰이니깐.
3. 위로를 해줄 수 없다는 죄책감
내 특기가 위로라고 생각했었다. 어릴 때 위로받은 순간이 너무 좋아서 늘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내 삶의 존재 이유가 거기 있다고 생각했다. 희망의 증거 누군가에게 위로되는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난 더 가벼워지고 싶었다. 다른 사람보단 내 삶에 집중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늘 위로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 슬픔과 괴로움은 그 사람의 몫이고 나는 어차피 타자였다. 누군가가 위로를 받고 싶어 내어 준 그 공간만큼만 내겐 허락될 뿐이고 딱 그만큼만 채워질 뿐이다. 그 이상은닿을 수 없다. 내어주지 않는 자리까지 바라보다 지쳐버리는 건 더 이상 싫었다. 소모되는 감정이 부담스러워졌다.
며칠 전 4달 만에 K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위로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나는 그때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고 전날 술을 먹고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어 졸리고 피곤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받지 않았을 전화, 그녀라서 받았다. 그녀는 요새 지치고 힘들고 외로울 테니깐. 그 다음날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해야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만 했다. 또 다른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그녀에게 맥없이 '잘 될 거야.' 형식적 응원을 보낸 후 전화를 끊었다.
주말이 다 지나고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그녀 생각이 났다. 상처 받았을까? 내가 조금 더 위로해줘야 하지 않았을까? 사실은 날 만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제 내게 다시는 전화하지 않을지도 몰라.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위로를 못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요즘은 힘들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곤혹스러움은 곧 약간의 자책감을 안겨준다. 머리로는 그 사람의 일이니깐 다정하게 있어주는 것만으로 괜찮다고 정했지만 사실은 위로가 되지 못할까 두렵고 미안하다.
4. 그냥 존재 자체로 위로가 돼.
얼마 전 내 감정이 요동칠 때 집요정 씨에게 물었다.
-너도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있잖아. 그럴 땐 넌 어떻게 해? 너의 낙은 뭐야? 넌 뭘로 위로받아?
-나는 너를 만나면 다 괜찮아져.
그 말에 충격을 받아 집요하게 따지듯이 물었다.
-뭐? 왜? 그냥 만나는 것만으로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응. 그냥 네가 있다고 생각하고. 네 얼굴을 보면 나는 다 괜찮아져.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내겐 아직 그런 존재가 없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은 없었다. 스스로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면 그런 영혼의 대화를 상대방에게 강요할 필요 없겠지. 아직도 믿기진 않는다. 세상에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게. 어쩌면 집요정 씨도 이런 기분이 들겠지. 내가 영혼의 대화를 운운할 때마다. 단어와 문장은 들리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하나도 잡히지 않겠지.
그렇지만 사실 가장 큰 위로는 누군가에게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다. 감동스럽고 다시 생각해봐도 참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위로에 내가 생각하는만큼 복잡한 감정 같은 건 불필요할지도 모르겠다.
P.S. 글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그냥 내 글은 아주 가끔씩만 만족스러울 뿐이다. 맘에 들지 않는 게 기본값이다. 받아들이기로 한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쓰면 좋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이게 지금의 최선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점점 자비를 베풀고 있다. 그냥 기억하고 싶었던 일을 마구 적어내려간 기록 자체에 의미를 둔다. 졸리다. 오늘도 수고했다.
[안녕, 감정] 시리즈
01 입장 정리
02 감정을 드러내는 거리
03 평화의 날
04 다름에서 피어나는 감정
05 아플 때 드는 감정
06 열등감 - part 1
07 나의 무기력
08 열등감 - part 2
09 거짓 감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