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감정] 15 집단, 결핍, 불안

결핍은 때론 그저 결핍으로 남을 뿐이다..


나의 최애 프로그램은 '동물농장'이다. 매일 아침 일요일 9시 30분쯤 이불에서 뒹굴거리'며 본방 사수하는 게 일요일 나의 가장 큰 낙이자 보람이다. 귀엽고 흐뭇한 사연은 그 자체로 즐겁기도 하고 때론 마음 아프고 안쓰러워 인상을 찌푸리고 눈물을 흘리지만, (물론 마음속으로) 무엇보다도 동물의 삶에서 인간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발견할 때가 가장 흥미롭다.

지난주에는 '과연 강아지도 외모를 따지는가?'를 알아보는 실험이 나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기 있는 강아지의 요건은 무엇일까?'가 주내용이었다. 결론은 이렇다. 강아지 역시 외모를 보지만 자신과 취향이나 습성이 비슷할 확률이 높은 유사한 견종의 외모를 선호한다. 즉, 자신을 닮은 개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크기나 견종을 능가해서 어딜 가나 인기가 폭발하는 강아지가 존재한다. 강아지는 후각에 예민하며 냄새 정보 한 번으로 영양상태는 물론 잘아온 환경 전반적인 정보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인기 터지는 강아지는 공통적으로 주인에게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자란 양가집 규수와 같다. 이런 주인의 사랑과 세심한 돌봄이 강아지의 자신감을 높여준다. 즉 강아지 세계에서의 인기란 한마디로 누가누가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사회성이 뛰어나게 발달했는가의 척도와 다름없다.

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조금 서글프고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흔한 비극은 필요한 사람에게 그 무언가가 주어지지 않는데서 시작한다. 정작 그것을 넘치도록 가지고 있고 바라지도 않는 사람에게나 그 무언가가 저절로 뒤따른다. 마치 물질처럼 사랑과 애정의 빈부격차는 커지기 마련이다. 사랑과 애정을 충분히 받는 사람은 이유 없이 무한한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게 되고 사랑이 절실한 누군가는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인해 점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간다.

그렇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관계란 늘 아슬아슬하다. 상대방이 날 싫어할까 떠나갈까 두려워하는 불안이 관계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조금씩 그 관계가 흔들릴 때마다 그 불안을 견디지 못해 오히려 내 쪽에서 끊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 불안을 없애는 방법은 단 하나다.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관계와 끊임없는 애정이 있어야 비로소 그 불안은 자취를 감춘다. 문제는 그 망할 놈의 불안이 꽤 괜찮았을 누군가의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게 늘 해방을 놓기에 그런 관계의 성공 경험의 데이터를 쌓지 못할 뿐이다. 그 불안의 악순환의 꼬리는 단지 내가 '불안이 있구나.'라는 자각만으로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

인기란 무엇일까? 나는 인기란 자연스럽게 그 무리 안에 녹아들 수 있고 함께 있어도 좋다고 받아들여지는 기분이라 생각한다. 더 많은 커뮤니티 혹은 집단에서 그러한 안정적인 소속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을 인기 있는 사람이라 본다. '내가 이곳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타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몇 차례 밝힌 것 같은데 나는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커뮤니티에 목말라했다. 함께 있는 유대감이 좋았다. 그래서 하루에 12시간 이상 크레이지아케이드 테트리스를 하며 채팅을 했고 정작 그 연예인에 크게 관심도 없으면서 팬클럽을 기웃대며 팬픽을 읽곤 했다.

나는 집단의 소속감이 무척이나 결핍된 사람이고 어쩌면 나의 인생의 꿈은 내가 단단하게 속할 사랑할 수 있는 사적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가꾸는 일로 귀결된다. 나는 카페를 차리고 싶었는데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도 아니었고 맛있는 커피나 디저트를 대접하고자 하는 사명도 없었다. 나는 그 카페라는 공간을 매개로 불특정 소수의 유대감 강한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다.

내게도 몇 개의 운명 같은 커뮤니티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다. 하나는 우연히 계단에서 만난 선배에게 이끌려 가입하게 된 교내봉사동아리. 나는 초창기 멤버로 적응이 쉬웠고 거기엔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운 좋게 잔뜩 포진해있었다.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나를 겸손하고 성실하게 받아주었다. 나는 그곳을 무척 사랑했지만 동시대에 학교를 다니지 않은 졸업반 선배들이 참 부담스러웠다. 또한 결정적으로 동아리 내 오빠와 사귀다가 헤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커뮤니티는 내게 불편함을 주게 된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자연스러울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외부 동아리였는데 진로와 연관된 자율적인 커뮤니티였다. 나름 서류전형과 면접 절차를 통과한 사람만이 그 동아리에 선발될 수 있었다. 그곳엔 경험이 많고 나와 다른 성격의 개방적이고 지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대학생이 가득했다. 다양하고 배울 게 많은 곳이었다. 어느 날은 나이는 어리지만 날 뽑는 자리에 있었던 동생에게 나는 어떻게 뽑히게 된 거냐고 묻자 그 동생이 말했다. '그냥 언니는 딱 우리 동아리 사람 같았어.' 내가 느꼈던 에너지와 자연스러움은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그곳을 박차고 나왔다. 거기 있으면 내가 점점 작아지고 부끄러워지곤 했다.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나올 수 있는 시기에 딱 맞춰 그곳을 나왔고 다시는 그곳에 가지도 사람들과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어느 집단에서 나오게 되면 친했던 모든 사람과도 완벽히 단절되곤 했다. 이런 나의 실패 경험은 켜켜이 쌓여 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나는 아웃사이더다. 완전히 속할 수 있는 집단이란 어차피 내게 없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사실 늘 먼저 끊어낸 건 나다. 먼저 어색해서 거리를 둔 것도 나다. 내쪽에서 먼저 불안감을 보이면 그렇지 않았던 분위기도 낯설어지고 상대도 내게 부자연스러움과 이질감을 느낀다. 그렇게 자기 예언은 실현된다. '거봐. 내가 뭐랬어.'

사회성이 부족한 인간은 자각만으로 사회성이 발달되지 않는다. 나는 강아지가 아닌 인간인지라 더 바라는 게 많다. 한 사람과의 관계, 개개인의 애정만으로 이 불안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경험없는 이성적 접근만으로 나의 결핍이 극복되지 않는다. 어쩌면 미래의 어느 날 셀 수도 없이 오래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녹아든 어떠한 집단을 발견하는 행운이 있다면 아 '내게도 소속감이란 게 있구나.' 안심을 하고 나는 더 쉽게 어딘가에 속하게 되고 커뮤니티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도 결핍도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어릴 적 시골 주택가에서 느꼈던 자연스럽고 완전했던 안정감을 주는 믿을만한 커뮤니티를 나는 여전히 갈망한다.


P.S. 오늘도 또 단점을 고백해버리고 말았다.


[안녕, 감정] 시리즈
01 입장 정리
02 감정을 드러내는 거리
03 평화의 날
04 다름에서 피어나는 감정
05 아플 때 드는 감정
06 열등감 - part 1
07 나의 무기력
08 열등감 - part 2
09 거짓 감정
10 위로에 드는 감정
11 인정 그리고 책임
12 멀어지는 교차로에 선 감정
13 이름을 불러줘요
14 타인의 삶을 시샘하며


aaronhong_banner.jpg

H2
H3
H4
Upload from PC
Video gallery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3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