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오류. 언론들이 용어를 막 쓰는^^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우선 다음 그림을 보실까요? 네이버 뉴스에 "판문점 선언 국회"를 검색어로 넣어 얻은 결과 중 첫 페이지만 캡처한 것입니다.

제목만 잘 보시면 첫 페이지에 뜬 10개의 기사 가운데 8개가 "국회 비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바로 이 표현 때문에 오지랖 넓은 헤르메스, 학교 성적처리와 펜클럽 문학상 심사로 정신 없는 와중에 키보드를 붙잡게 되는데요. 이게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꼰대 기질 때문인지, 하루라도 스팀잇에 글을 올리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히는 중독 증상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니 저, 머글 연구 전공이 정치학이었군요. 가끔 잊어버린다는...ㅋㅋ)
모든 서구 민주주의 국가 그러하듯 대한민국에도 세 개의 '정부'가 존재합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그것으로, 여러분도 잘 아시는 삼권 분립의 원리에 따른 것이죠. 각 권력기관의 명칭에 붙는 한자 '부'는 '정부'를 뜻하는 府이지 '부서'를 뜻하는 部가 아닙니다. 이렇듯 3부는 서로 동등한 지위를 가짐에도 권력자가 지휘, 장악해야 할 '부서'쯤으로 인식한 것이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지난 권위주의 시대 그리고 이명박근혜 시대가 지닌 한계였죠.
각설하고, 입법부는 국민들의 의사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국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침해할 소지가 있는 사항들은 원칙적으로 입법부의 심의와 의결을 거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법률은 본질상 국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새로 만들거나(제정) 수정하는(개정) 권한이 입법부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조세 또한 마찬가지로, '세금을 매기고 거두는 행위'는 본질상 국민들의 재산권을 제한 또는 침해하는 것이므로 국민들의 대표인 입법부에 그 권한을 부여하는 '조세 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내각제적 요소가 일부 있지만)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고 세 정부를 아우르며 국정을 조정하는 '국가 원수'의 지위를 겸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세 정부의 우두머리인 국회의장, 대통령, 대법원장 가운데 유일하게 국민들이 직접 선출했기 때문이겠죠.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서 갖는 국가 대표권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조약 체결 및 비준권'입니다. 쉽게 말해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맺는 모든 계약의 내용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사인'할 권한을 사장님 격인 대통령에게 부여한 겁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우리나라는 "국제법(국가간 조약 등)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고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같은 대통령제이지만 우리와 달리 별도의 입법을 통해 국제법의 국내법적 근거를 마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제법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등 국민들의 기본권을 직간접적으로 침해할 소지가 있는 조약의 경우, 대통령 비준 이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입법부의 본질적 기능에 비추어 논리적으로 자연스런 귀결이죠.
본 내용과는 관련이 없지만 참고로 말씀 드리면, 국회의 권한 가운데 '동의'와 '승인'의 차이는 '사전 동의', '사후 승인'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중대한 대통령의 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사전 동의를 원칙으로 하되, 사태의 긴급성 등으로 사전에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긴급 명령, 긴급 재정경제 명령, 계엄령 등)에 한해 사후에 승인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또 한가지, '판문점 선언'에는 남한과 북한 간의 특수한 관계에서 비롯된 추가적 쟁점이 잠재해 있습니다. 국내적으로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불법으로 점하고 있는 '반국가 단체'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유엔에 가입되어 있는 합법적인 '국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판문점 선언'은 국가간의 조약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2005년 제정된 '남북관계발전법'이 이러한 괴리를 메울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됩니다. 이 법은 '판문점 선언'과 같은 남북간의 모든 합의를 '남북합의서'로 정의하고 '남북합의서'를 국제법에 준하는 효력을 갖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 법은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에 대해 국회의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고 한 데는 바로 이러한 법률적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정리해 볼까요?
1. 조약 체결 및 '비준'권은 국가 원수인 대통령의 권한이다.
2. 조약을 포함한 국제법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3. 따라서 기본권을 직간접적으로 제한할 소지(중대한 재정적 부담 등)가 있는 조약의 경우 대통령 비준 이전에 입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4.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남북합의서는 국가간의 조약에 준한다.
5. '판문점 선언'은 남북합의서에 해당하므로 조약과 마찬가지로 3의 규정에 따라야 한다.
이상입니다. 잘 이해되셨나요? 그럼 이만 저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러...
후다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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