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에 수록된 오십 편의 짧은 글들은 잡지 <앙앙anan>에 매주 한 편씩 일 년 동안 연재한 것입니다. <앙앙>을 읽는 사람들은 대개 스무 살 전후의 젊은 여성들이 아닐까 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대체 어떤 읽을거리를 원하는지ㅡ아니, 읽을거리 자체를 원하기는 하는지ㅡ 나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터라(유감스럽게도 주위에 그 연령대의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뭐든 좋으니까 내가 흥미 있는 것을 마음대로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다만, 젊은 독자를 대상으로 쓰는 만큼 나름대로 한 가지 정해둔 것은, 안이한 단정 같은 것만은 피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당연히 다들 알고 있을 테니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야’ 하는 전제를 포함한 문장은 쓰지 않도록 하자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하는 강요하는 글도 되도록 쓰지 않도록 하자고.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옳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옳지 않은 것도 있고, 어떤 때는 옳은 것이 다른 때는 옳지 않기도 하니까요.
이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니 뭔가 나 자신이 단순히 저기 저쪽에 떠도는 공기가 되어버린 듯,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매주 비교적 술술 글이 나왔습니다. <앙앙> 독자가 실제로 읽고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아주 즐거웠습니다. 여기 모은 글들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겠지만, 즐겁게 읽어주신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나로선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_후기에서

일전에도 독후감을 쓴 적 있는 하루키의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의 첫 번째 책이다. 순서로 따지면 이 책을 먼저 봤어야 했지만 어쩌다 보니(책에 순서가 없는 줄 알았다) 뒤죽박죽 됐다. 내용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읽는 내내 찜찜한 기분이었다. 중요한 뭔가를 놓친 듯한 그런? 이제와 아쉬워한들 어쩌겠나. 기억을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루키가 연재한 <앙앙>이라는 잡지는 성향 상 젊은 여성 독자가 많은 모양이다. 후기에서도 말했다시피 이런 독자층에 맞춰 어떤 글을 써야 할지 하루키는 꽤 고민한 것 같다. 물론 본문을 읽는 동안에 고민의 흔적을 발견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다만, 후기를 읽고나자 하루키가 어떤 태도로 글을 써 내려갔을지 상상이 됐다.
나이 든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를 대하는 듯한, 투박하지만 상냥한 그런 느낌이랄까? 공감이 잘 안 갈 수도 있는 이야기에서는 내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그렇지 않나요?”라고. 전혀 그 답지 않게. 아무튼 에세이 속 하루키는 무척이나 상냥했다.
후기에는 책의 삽화를 그린 오하시 아유미大橋步의 글도 있는데 하루키의 굉장한 팬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루키의 책에 자신의 글을 남기는 게 엄청난 영광이라며 삽화를 끼워 주셔서 매우매우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겼다.
아마 나였어도 하루키의 책에 내 글을 담기게 된다면 원고 가득히 그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로 도배했을 것이다. “저같이 하찮은 사람의 글이 하루키 씨의 책에 남게 되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라고.
쓰고 나니 본문에 대한 내용보다 후기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거 같다. 순서를 제대로 맞춰 읽지 못한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이런 사실을 먼저 알았다면 다른 권도 더 재밌게 읽었을 텐데 하는.

북끄끄 | 무라카미 하루키, 저녁 무렵 면도하기
written by @chocolate1st

||북끄끄 책장||
#15 최은영, 그 여름
#16 릴리 프랭키,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17 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18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19 김영하, 오직 두 사람
#20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21 정유정, 7년의 밤
#22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23 앤디 위어, 마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