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될 줄 알았던 한 달이 겨우 엿새 만에 악몽으로 바뀌어버렸다.
이 기록을 누가 읽기나 할지 모르겠다. 결국엔 누군가가 발견할 것이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백 년쯤 후에 말이다.
공식적인 기록을 위해 밝혀두자면…… 나는 6화성일째에 죽지 않았다. 다른 대원들은 분명히 내가 6화성일째에 죽은 줄 알고 있다. 아마 조만간 나의 국장(國葬)이 치러질 것이고 위키피디아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이렇게 나올 것이다.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서 사망한 유일한 인간이다.’
그리고 십중팔구 그것이 현실이 될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게 확실하니까. 다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6화성일째에 죽지 않았을 뿐이다.
대강의 상황은 이러하다. 나는 화성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헤르메스나 지구와 교신할 방법도 없다. 모두들 내가 죽은 줄 알고 있다. 내가 있는 이 거주용 막사는 31일간의 탐사 활동을 위해 설계된 것이다.
산소 발생기가 고장 나면 질식사할 것이다. 물 환원기가 고장 나면 갈증으로 죽을 것이다. 이 막사가 파열되면 그냥 터져버릴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다. 나는 망했다. _본문에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겠지만 이 책은 앤디 위어의 SF소설이자 영화 ‘마션’의 원작이다. 나도 책보다는 영화를 먼저 봤고 영화가 재밌어 두 번 보고 나서야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이 두꺼워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지만 우려와 달리 근래에 봤던 소설 중 가장 몰입해서 읽은 책이었다.
다들 아는 줄거리를 잠시 설명해보자면 화성을 탐사 중이던 마크 와트니 일행은 거센 모래폭풍을 만나 화성 탐사를 중단하고 철수하게 된다. 그러던 중 모래폭풍과 함께 날아온 안테나에 맞은 와트니는 일행과 떨어져 낙오하게 되고 팀원 모두는 그가 죽었을 거라 판단, 와트니를 화성에 두고 떠나게 된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와트니의 화성 생존기가 시작된다.
책 대부분은 와트니의 생존일자에 맞춰 일기 식으로 쓰여 있다. 간간히 나사 쪽과 우주 왕복선 헤르메스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나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영화 마션에서는 많은 것을 생략하거나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가지만 책은 그보다는 세세하다. 하나의 문제가 생기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와트니 특유의 유머와 함께 자세히 설명한다. 그래서 생소한 과학 용어가 곧잘 등장하지만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우주선이나 화성 주변 환경에 대한 묘사가 섬세한 편은 아닌데(길었다면 지루했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영화를 먼저 봐 상상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와트니 얼굴도 자연스레 맷 데이먼으로 연상됐지만.
아무튼, 작가의 다른 작품인 아르테미스도 곧 읽어볼 생각이다. 작가의 위트를 생각해보면 분명 재밌을 거 같다.

||북끄끄 책장||
#15 최은영, 그 여름
#16 릴리 프랭키,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17 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18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19 김영하, 오직 두 사람
#20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21 정유정, 7년의 밤
#22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