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끄끄|| #22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jpg


바다표범 오일이란 거 아십니까? 문자 그대로 바다표범의 지방으로 만든 건강보조제. 북극권의 에스키모들은 채소를 먹지 않고 동물성 식품만 먹는 데도 동맥경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조사해보니 그 이유가 그들이 날마다 먹는 바다표범 고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 포함된 오메가3 지방산이 혈액을 맑게 해서 심장을 튼튼하게 하고 관절을 유연하게 지키는 효과를 낳았던 것이다.

바다표범 오일은 일본에서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비교적 고가여서 오슬로에 갔을 때 현지에서 구입했다. 건강보조제 가게에서 캡슐에 든 것을 사려 하니, 계산대 아주머니가 “캡슐보다 생기름으로 먹는 편이 훨씬 효과 있어요. 그런데 냄새가 좀 나서…….”라고 했다. ‘외국인에게는 무리일지도’ 같은 뉘앙스를 읽고 ‘좋아 한번 사보자’ 이렇게 돼서 생기름을 사왔다. 기름이 캡슐보다 훨씬 쌌던 것도 이유의 하나였지만.

그런데 실제로는 냄새가 ‘좀’ 나는 정도가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고 엄청나게 비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 위로 커다란 바다표범 한 마리가 올라와서 어떻게든 해서든지 밀어제쳐 억지로 입을 벌리고 뜨뜻미지근한 입김과 함께 축축한 혀를 입안으로 쑥 밀어넣은’ 것처럼 비렸다. 결코 그런 일은 당하고 싶지 않겠지만. _본문 바다표범의 키스에서



하루키의 소설은 잘 못 읽지만 그의 에세이는 자주 읽는다. 하루키의 소설 속 세상은 차갑고 복잡해 이해하기 어렵지만 에세이 속 그의 일상은 따뜻하고 단순한 것들뿐이다. 내가 그의 소설은 안 읽어도 에세이는 읽는 이유다.

일전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에세이를 읽은 적 있다. 워낙 하루키와 성향이 맞질 않아(사놓고 쳐 박아 둔 게 한 두 권이 아니다) 그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이해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읽었던 에세이였다.
읽고 난 후 하루키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그의 에세이는 소설과 달리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이후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에세이가 있다는 걸 알고 세트로 전 권(이라고 해봐야 모두 세 권이다)을 구입했다.
이 책은 두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다. 첫 번째를 건너뛰고 두 번째부터 읽은 게 된 건 순서가 있는지 모르고 대충 골라 읽었는데 그게 하필 두 번째 권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독후감을 어떻게 쓰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책 내용 중 기억나는 건 거의 없다. 책 내용이 시시콜콜하고 가벼우며 매우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커피 주문하는 사람 이야기, 장어집 고양이가 어떻게 자는지, 호텔방에 있던 금붕어의 안부 같은 시시한 이야기들뿐. 에세이가 보통의 일상을 담는 글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물론 내용이 가벼워 재미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하루키가 갖고 있는 생각과 그의 투박한 단어를 읽는 재미는 쏠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기발한 표현들을 읽고 있으면 존경심이 저절로 생긴다. 누가 바다표범 오일을 먹으며 바다표범과의 키스를 상상하겠는가. 이밖에 타인의 섹스에 관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역시 작가는 사소한 것이라도 재밌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난 여전히 그의 소설은 못 읽겠다.

맺음말2.jpg

||북끄끄 책장||


#15 최은영, 그 여름
#16 릴리 프랭키,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17 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18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19 김영하, 오직 두 사람
#20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21 정유정, 7년의 밤


H2
H3
H4
Upload from PC
Video gallery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6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