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미스터 선샤인의 감상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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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선샤인에 감상을 마치며


말 한마디를 하면서 나이든 사람들은 가능한 길게하고 크게하며 반복하고 강조하여 자신의 의도가 상대에게 전달하기를 요청한다. 나이어린 사람들은 대개 말 자체를 잘 않고, 짧게하며, 짧으면서도 강조가 잘 안되면 감탄사나 욕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대체로 그런 경향을 보이는 것 같더라만, 딱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말에는 하는 자의 의도와 감정이 함께 들어가며 또 듣는 사람도 그걸 해석해서 듣는다. 하지만 그 통역실력은 대부분 형편없어서 특정한 주제가 분명하게 일치하지 않을 때 대부분의 말은 자신의 의도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또 듣는 사람 역시 상대의 의도와 감정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분명한 건, 우리가 화자일 때 대개는 청자의 어학실력을 고려해서 너무 자세히 말하거나, 무시하고 대충말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가 청자일 때 화자의 어학실력을 깔보고 대충번역하거나 너무 고려하여 자의적인 해석을 하는데 있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고 정확히 듣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나를 포함하여 외국어 때문에 너무 많은 이들이 고생하고 있지만, 역시 나를 포함하여 우리의 모국어 실력 역시 실은 형편없어서 그저 원하는 걸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그 이상이 결코 아니다.

드라마는 그 배경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했건, 그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건 간에 작가와 감독, 연기자가 만들어 낸 연출이다. 그러나 그 연출의 의도는 대개 하나의 통일된 의도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미스터 선샤인이란 드라마가 뭔가 전에 없이 갑성을 자극하는 건, 악역의 일본을 잔인하게 그려내려는 노력이나 항일의 주역들을 의무적이고 당연한 선의로 그려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대충대충 그리고 있으며, 더 정확히 말하면 너무도 자연스럽지만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희성은 선한 인물이긴 하지만, 조부모 때 부터 많은 이들을 수탈한 나쁜 집안 출신으로 일본에서 유학한 엘리트로 본국에 돌아온 인물이다. 구동매는 벌레취급 받던 백정 출신으로 일본 무신회의 도움으로 사람처럼 살 수 있는 자격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최유진은 말할 것도 없이 가슴속에 그득한 부모가 동시에 상전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걸 목격하고 미국 신부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고 조선에 복수를 하러 돌아온 인물이다.

그들이 의병과 함께 활동을 했다는 건 누가봐도 말이되지 않는다. 그들의 조국에 대한 원한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만약 이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들이 조선의 피를 가졌음을 상기하며며 항일의병활동에 조력했다면, 있을법 한 사실에는 더 가까울지 몰라도 작품의 가치로선 너무 평범하고 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조선인이었다거나, 같은 민족이라거나 핏줄이라거나 이런 생각은 마지막까지 생각해거나 표현해 본 적이 없다. 다만 고애신이란 한 여인에 대한 각기 다른 사랑과 연민을 쫓다보니 그렇게 자신들의 방향이 그쪽으로 향했을 뿐이다.

드라마에선 의병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항일에 목숨을 걸었던 많은 그들은 실제로도 ‘나라와 겨레를 지키겠다’는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 그렇게 싸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고증 사극들 보다 더 사실일 것만 같고, 더 감동이 있는 이유다. 100년전의 역사에 안창호는 단 한 사람 밖에 없지만, 수많은 고애신, 김희성, 구동매, 최유진들은 분명 실재했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주목한 고애신의 연기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나 역시 공감하지만, 사실 나는 이양화의 연기에서 많은 매력을 느꼈다. 그야말로 문무겸비. 아군과 적군이 함께 공유하는 호텔의 주인으로 드라마의 연기 속에서 다시 한 번 더 연기를 해야하는 위치에서 결정적인 장면들에서 눈썹조차 떨리지 않는 태연함을 보여줄 땐 그것은 그저 대범함 일 뿐이었다. 하지만 울면서 친구 아닌 친구 앞에서 완전히 패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한 인간들의 속살이 보여주는 무게와 진심을 다 보여주는 장면은 작가와 배우의 지극한 의도였달까. 그게 뭐든 이양화의 움직임 없는 눈빛은 깊은 정적 매력이었다.

인물의 감정 묘사는 복잡하고 격차가 클수록 스토리와 연출에 더 호평을 받지만 사실은 그것이 인간의 본 모습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누구나 인간이라면 그만큼 복잡하고 극적인 모습을 내재하기 마련이다. 이중이 아니라 다중의 인격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현실에선 누군가를 더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요소지만, 그것이 드라마이고 내가 청자라면 거기서 더 분명한 인간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들은 인간을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에서 더 인간적으로 보게 되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게 현실에서는 내게 영향을 끼치게 되니, 나의 대상들은 "내가 파악한만큼이기만"을 바라는 욕심이여서겠지만.

작가도, 연출과 연기도, 그리고 OST도 너무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드라마였던 것 같다. 극중과 드라마밖에서의 접속선조차도 너무 일치해서 전율이 흐를 지경이다. 한약방 약재의 그많은 상자 중 왜 어성초칸을 골랐는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거기에도 이유가 있을것만 같게 만드는 말들. 그 칸마다 켜켜이 쌓여있는 말장난같은 진지함들. 제목도 고애신의 영어어휘를 배우다가 S단계의 단어들을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왜 이 드라마의 제목이 미스터 선샤인으로 명명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물론 양광선생陽光先生같은 중국판 제목은 우리에겐 다소 웃기게 느껴지긴 하지만.

평소 번역서를 통해 존경했던 한 학자가 “역사적인 당시엔 그들의 훈훔함이 없었으니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드라마는 감성을 건드리지만 청자들에게 사실을 전달하는데는 실패했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나는 오히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그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반론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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