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단편_ 응용인문학강의실 M201 #4"

수수단상표지2.jpg


지난주에 선과 악에 대한 학생들의 조별발표가 있었다.

'권선징악勸善懲惡' 30대 중반인 내가 어린 시절에 익숙하게 들었던 진부한 저 구절은 오늘 학생들에게 동의를 받고 깊은 상자안에 넣어버려야 할 그런 개념이었다. '권선'을 하고 '징악'을 하려면 선과 악이 무엇인지 먼저 구분해야 하고, 누가 선행을 하고 누가 악행을 하는 사람인지 가려야 하는데, '신세계'란 비리권력과 조폭을 소재로 한 흔한 한국 영화 한편이 보여준 선악이 혼재된 연출은 비록 연출이긴 했지만, 너무도 까다롭고 또한 지독히도 현실적인 화두를 젊은 학생들에게 던져주었던 것 같다.

나는 오히려 그 영화를 무덤덤하게 봤는데, 한 조가 발표한 선악에 대한 주제에 대해 이 영화의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분석하면서 추적하는 방식의 프리젠테이션의 유려함과 디테일은 정말 나를 30분 내내 기함하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3학년 때 기발한 생각들을 나름 많이 했지만, 주어진 주제와 익숙한 소재들을 저렇게 잘 연결시킬 줄 아는 능력이 있었던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

'후생가외後生可畏. 후학들의 실력이 경험많고 먼저 공부한 선배들을 두렵게 한다'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유가의 개념 중 가장 내 마음을 크게 흔들었던 그 말이 다시금 실감난다. 이 시간 몇몇 학교의 꼰대들은 자신들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힘들게 접근했던 전공학문에 대한 자신들의 성취에 대해 부리고 있을 자만심이 오버랩 되었다. 그들은 정작 자신들은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요새 젊은 사람들의 지식의 천박함'을 운운하면서 앵무새처럼 생존한다. 하긴, 다음세대가 이전세대에게 천박하게 취급되지 않았던 역사가 있었겠냐마는 "나는 이바닥에서 저런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 하며 되뇌여 본다. 하긴, 세상이 너무 힘드니 "내 소원은 살아남아서 무사히 꼰대가 되는 것"이라고 인생목표란에 쓰는 사람도 있다는 시절이니.

이번엔 저번 주제인 '링크'와 마지막에 나왔던 '피고의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요. '피고'라고 하니까 이상한가요. ㅎ

우리는 대개 이중 잣대를 갖고 상황을 판단해요. 유리한 자료를 갖고 각자의 정보를 해석하죠. 그러니 나름대로는 근거가 있지만 서로 맞춰보면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객관적인 근거라면 그 결과도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대개 주장은 주관적인거죠.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이랄까요?

'깨진 유리창 이론BWT'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죠? 한적한 곳에 세워진 더럽고 낡은 자동차의 창문이 깨져있다면 누구나 쉽게 다가가서 내부의 물건을 훔치는 동기부여가 더 쉽게 된다는 사회이론이에요. 사실 이건 실험을 통해서 나온 결과니까 사실에 가깝습니다.

필연적으로 여기서 선과 악의 문제가 나오게 됩니다. 대부분은 이 문제에서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죠? 가끔 딜레마가 있긴 해도 명확하게 선에 대한 항목과 악에 대한 항목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요.

성선설과 성악설을 들고 나오면 사람들 대부분은 성악설에 훨신 표를 많이 줍니다. 경험으로 아는거죠. 해도 되는 상황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을 행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곳에서 목격되니까 말입니다. 이건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그래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평이한 일상일 경우를 가정하면 사실은 적극적이냐 수동적인가 하는 조건이 더 앞설 때도 있는데요. 생각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행동은 대체로 어떤 이득이나 흥미가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이건 심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행위의 결과가 특정한 이득이 되거나 흥미를 주지 않으면 굳이 그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경제적'인 거죠. 필요없는 행동을 통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동물에게 에너지는 중요해요. 현대인이 특별히 생산성없는 '운동'을 하는 건 섭취한 에너지가 남기 때문 아닌가요?

그런데 어떤 행위의 결과가 똑같은 가치를 가져올 때 선행과 악행을 선택하라면요? 만약 성악설에 따른다면 이런 선택은 별로 상관없겠죠.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은 뭘 선택할까요? 사람들은 대부분 '선'을 선택합니다. 왜냐면, 유사한 결과가 기대될 경우 선행을 하는 편이 사회에서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거든요. 이 이론이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Selfish Gene'입니다. 이기적 유전자가 생존하려는 이기적 행위가 바로 선행이죠? 철학에서 선악이 의미가 없는 것은 물론, 물리적으로도 이미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다는게 밝혀진겁니다.

성악설性惡說이 말하는 '악'은 사실은 '이익'이에요. 우리는 오늘날 적절 혹은 적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에 대해 크게 부정적이지 않죠? 하지만 옛날엔 '이익', 그걸 추구하는 자체가 악이었어요.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그래서 오늘날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이 말이 당시 사람들에겐 매우 일반적인 '선'이었던 겁니다. 자본주의란 사회제도 위에 살고 있는 우리의 대부분이 근검, 절약이란 방식을 화폐나 소비에다가 적용시켜서 오늘부터 생활한다면, 우리 사회는 아마 6개월도 버티지 못할겁니다. 가끔 우리는 전통을 지키는 것과 전통의 방식으로 생활하는 걸 햇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다른겁니다. 우리가 고의대신 진을 입고, 식혜대신 콜라를 마신다고 해서 전통을 깨는게 아니에요.

왜 우리 다수가 성악설에 공감하냐면, 현실적, 아니 현상적인 측면에서만 사람들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우리는 기계적으로 A가 B란 원인을 제공해서 C로 나타난다고 분석하지만, 현상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은 사실은 A~Y가 모두 뒤엉킨 상태로 수많은 조건들, 그 필연과 우연들이 얽히고 설켜서 일어나거든요. 우리가 가진 주관이란 단순히 내 방식으로 보는게 아니라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최적의 결과, 그리고 그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까지 고려해서 봅니다. 그걸 사람들이 동물적으로 가진 기제機制라고 해요. 기제란 인류가 살아오면서 각인, 프로그래밍 해 둔거에요. 유사한 상황이 되면 무조건 반사로 나오는 겁니다. 불나서 연기나면, 스프링쿨러가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말이죠.

성악설은 불편한 사회적 감정을 다수에게 표현하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이 원래 그런존재니 기대감을 버리게 해 줍니다. 또 한편으로는 마음놓고 혐오할 수 있게 해줍니다. 카타르시스를 통해 조금이라도 감정을 풀 수도 있죠. 다시 말해 내가 '누군가를 잘 싫어하는 사람'이란 위험에 놓이지 않고 혐오하는 걸 가능하게 하죠.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를 혐오해도, "인간들은 혐오 받아도 쌀 만큼 나쁘기 때문에" 혐오하는 것은 당연한 거지, "내가 특별히 혐오를 잘 하는 사람이어서"는 아니게 되죠.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잠재적인 적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우리의 기제입니다. 동물세계 같으면 적은 멀리 피하거나 물어뜯어버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사회에선 그게 불가능하죠. 물리적인 공격이 사회적으로 금지되어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상대가 우리모두에게 적이라는 메시지를 홍보함으로써, 더 많은 동조자를 만들어 효과적으로 그의 존재가치를 공격하는 겁니다. 그게 동물행동의 측면에서 본 '혐오'란 감정의 실체죠.

주관적인 시각과 선악의 문제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다면적으로 많은 것들을 고려할 수 있는 우리의 수준에선 결코 쉽게 나눌 수 없게 되었죠. 그래서 또 하나 의미없어진 개념이 '권선징악' 같은 거에요. 전래동화의 주제로 많이 등장하는 말이죠. '형법'같은 도구가 특정인이 사회에 죄를 지은 만큼 양형을 줄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죄를 짓게 된 필연적인 배경을 찾아내서 고쳐주거나, 댓가를 다 치르고 나온 그를 다시 좋은 사람으로 되돌려 놓을 수는 없죠.

깨진 유리창 이론은 사회현상적인 측면에선 증명된 이론이지만, 반드시 인간의 심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상황속에서 여러가지 선택을 하고, 유사한 상황이라면 악보단 선을 선택하죠. 무엇보다 선악이란 개념 자체를 무조건 따라갈 것이 아니라 고민을 좀 해봐야 합니다. 이 개념과 많은 문제들이 얽혀 있거든요.

선악이란 주제만큼 모호한게 또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중도에 가서 이쪽저쪽 코너를 기웃거린다. 가끔 생각이 정리가 안될 때 쓰는 방법이다. "책껍데기 구경하기 신공" 이 방법은 의외로 생각치 못했던 좋은 자료를 발견하게 하기도 한다. 전공도 아닌 문학도서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가 지난학기 수업을 들었던 학생을 만났다. 두달이란 세월은 함께 한 한 학기를 어색하게 할 만큼 길었나보다. 학생은 반가워했고, 선생은 어색해했다. 마음 속에 뭔가 역할을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걸까. 결국 어색한 인삿말과 함께 헤어지고 종종걸음으로 돌아와서 연구실 의자에 앉았다. 조교의 의자치고는 머리까지 푹신하게 받치고 뒤로 넘어가는 편안한 의자였다. 눈을 감고 아까 만난 학생에게 실제로 했어야 할 행동을 못한데 대한 늦은 후회속에 잠긴다.

"… 그 흔한 자판기에서 500원짜리 포카리**트라도 하나 뽑아줄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수수단상] 다른 글
[수수단상] 단편시리즈
H2
H3
H4
Upload from PC
Video gallery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1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