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치킨 권하는 마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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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치킨 권하는 마음의 미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보통 유년시절을 떠올린다. 오로지 생각해야 할 것은 ‘친구들과 뭘 하면서 놀까?’ 가 전부였다. 막연한 미래와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시절은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미리 예감으로 했다는 듯이 하루도 쉬지 않고 뛰고 또 뛰었고, 치열하게 놀고 또 놀았다.


우리는 모두 한 방에 모여서 만화책을 베껴 그리는가 하면(미술), 그러다가 보자기를 목에 묶고 등장인물 흉내를 내면서 칼싸움을 하다가도(연극), 이내 지겨우면 밖으로 나가 공을 차고(체육) 놀았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한참 아저씨가 된 지금의 나는 놀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종일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막상 바라왔던 휴식 시간이 갑자기 등장할 때는 나는 반가운 대신에 어쩔 줄을 모르며 안절부절 할 때가 많다. 아.. 노는 방법이 뭐였더라..?



건물주가 꿈이라니



주변에 육아를 하는 친구가 있거나 직접 교류하는 어린이가 없어서 지금의 아이들은 뭘 하고 노는지 잘 모른다. 듣는 얘기로 요즘에는 유년시절도 더 이상 행복하게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조차 치열해진 경쟁 시스템 속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 학원 저 학원 옮겨다니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들었다.


또 ‘노는’ 것조차 점수와 경쟁, 그리고 효율을 따지게 되면서 아이들이 뛰어놀기 위한 체육학원이 성행이라는 말도 누군가에게 들은 것 같다. 하굣길에 돌맹이를 차면서 걸어가는 초등학생을 볼 때면 내 어린 시절과 참 비슷한 것 같은데.. 또 시대가 변한 만큼 그들의 삶도 변했을 것이다. 하긴, 무거운 교재 때문에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초등학생을 신문 기사에서 본 적도 있으니까. 가끔 지나가는 어린이를 붙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보고 싶다. 너... 요즘 사는게 재밌냐?


건물주가 꿈이라는 어느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이야기는 이제 너무 익숙해서 충격이 아니다.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의 저서 <마음의 미래>에 따르면 인간의 자아 인식은 “자신이 등장하는 미래모형을 만들어 시뮬레이션하는 행위”라고 한다. 건물주를 장래의 모형으로 구성하고, 그것을 시뮬레이션해보는 초등학생은 무슨 놀이를 하고 놀까? 무슨 마음을 미래로 설정했을까? 월말이 되면 건물을 돌면서 돈을 걷거나 새 건물을 구입해서 기존의 임차인에게 세를 올려 받으며 함박웃음을 짓는 놀이?



그럼 양념치킨은 어때요?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이런 상상은 지나친 기우였다. 취재를 위해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를 찾아서 1시간이 넘게 아이들을 관찰할 기회가 생겼다. 아이들은 여전히 뛰기를 좋아했다. 달려가다가, 방방 뛰고, 고꾸라졌다가, 기어다니다가, 큰 소리를 지르며 웃었다. 하긴 20만년이 넘는 인류의 습성이 고작 50년도 되지 않은 문화에 흡수될 리는 없었다.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뛰고 노는 본성을 ‘아직’ 잘 간직하고 있었다.


수업 중에 “넌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지구인의 90%가 동의할만한 대답을 했던 한 아이가 기억난다. 그 친구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치킨을 먹다가 잠에 들 때요!” 아.. 너는 정말로 인생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사람들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했구나. 바로 그거야. 우리가 사는 이유야. 좋아하는 사람과 치킨을 먹다가 잠에 드는 것. 인생 뭐 있니?


하지만 미리 구성된 수업 진행을 위해 돼지 분장을 한 선생님은 “나는 치킨을 먹을 때 행복하지 않아. 나는 어떻게 하면 좋지?” 라며 다른 방향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려는 찰나, 다른 아이가 갑자기 진지하게 소리쳤다. “선생님, 그러면 혹시 양념 치킨을 드셔보는 것은 어때요!?” 그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순간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말이 다음 날까지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단지 웃겨서가 아니라 행복하지 않은 친구를 위해 기꺼이 다른 옵션을 제안해보는 그 마음이 참 아름다웠다. 이런 마음이 방해받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난다고 하면 설령 건물주가 꿈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원고를 마감하고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양념 치킨을 시켜 먹어야겠다.




*서울문화재단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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