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의 멜로디 : 필경사 바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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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필  경  사  바  틀  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월스트리트의 어느 회사에 입사한 바틀비는 고용주의 지시에 대해 이렇게 명쾌한 한마디로 거부한다. 봉급을 받고 일하는 일개 사원의 입에서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입사한 지 사흘 후부터는 심지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것임을 고용주에게 선포한다. '절이 싫으면 중은 떠나라' 라는 고용주의 요구에 대해서도 간단히 "안 떠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며 상식에 위배되는 언행을 이어간다. 바틀비의 계속된 무단 점거에 결국 그는 구치소로 송치되고 이후 완전히 식음을 전폐함으로써 스스로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책은 끝난다.


.......



도대체 왜



이렇듯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소설의 마지막 장이 끝나버릴 때 '뭥미?' 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작품,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읽은 자세 그대로 소파에 누워서 소설 속의 변호사처럼 한동안 바틀비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으나 어떤 단서도 찾아내지 못한 채 그대로 짧은 단잠을 잤다. 10분가량의 낮잠을 청한 후 눈을 떠서 다시 바틀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역시 무리였다.


혹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을까 소설의 처음 장면부터 차근차근 상기해 보았지만 어떤 관점으로도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괜시리 머리가 복잡해져 리모콘을 눌러 뭘 봤는지도 생각나지 않는 쓸데없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갑자기 허기가 찾아와 부엌으로 가서 식빵을 구웠다. 새까맣게 타기 일보직전에 꺼낸 빵에 딸기잼을 바르면서 다시 바틀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적당히 데운 우유를 마시면서도 생각해보았다. 결국 실패다. 바틀비를 세계 7대 미스터리로 등재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아니 왜??! 라는 의문 부호만 머리속에 가득..



거절의 멜로디



<필경사 바틀비>는 들뢰즈와 지젝 등 여러 철학자들을 사로잡은 소설이라고 책 뒷편에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괜한 확대 해석을 하기 싫다. 모두가 '예'라고 말할때 '아니오'라 말할 수 있는 사회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라는 해석도, 고립되어 끝없이 일만 계속해야 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완강한 거부라는 해석도, 인류애와 형제애에 입각해 인간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는 해석도, 모든 가능성을 거부하고 끝없는 잠재성을 추구하고 있는 바틀비에 대한 철학적 해석도.... 모두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바틀비의 대사,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는 독자에게 어떤 통쾌함을 선사해준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선택권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으며 응당 그래야 할 상황에서 바틀비는 거절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거절에 관한 소설이다. 어떤 것에 대한 거절도 아니다. 그저 거절을 표현하기 위한 소설은 아닐까.


그리고 그 거부의 표현이 너무나도 통쾌하다. 주인공은 바틀비가 아니라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는 문장이다. 허먼 멜빌은 어떤 주제의식이나 사회적 비판의식에 기인한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마치 작곡가에게 어느 날 한 줌의 멜로디가 떠오르고 그것을 노래로 만들듯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멜로디가 떠오른 것이다. 바틀비는 그 문장을 내뱉기 위해서 만들어진 인물이며, 적절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적당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적절한 곳에 이 문장을 한번 더 쓸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그렇게 소설은 완성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내용이고 창작자로서 이 소설이 십분 공감이 갔다. 바틀비는 그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했을 뿐이다.




타이틀 디자인 @kyu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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