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 Cubano#18] 마리암의 아파트

쿠바는 참 묘한 나라다. 쿠바에 오기 전 내가 만난 여행자들은 어느 나라가 제일 인상 깊었냐는 나의 질문에 두 부류로 나뉘었다.

-쿠바! 언니 쿠바는 꼭 가야 해요. 거긴 달라요. 전 진짜 좋았어요. 또 가고 싶어요.
-글쎄.. 역시 쿠바일까? 거긴 절대 다시 안가. 정말 최악이야. 삼일 만에 돌아오는 표로 바꿨다니깐.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여행지. 왜냐고 물었지만 시원하게 대답해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직접 가보라는 말 밖에는


쿠바는 유기농이 유명한 나라다. 농약이나 화학제품을 살 돈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붉은살 육류를 많이 먹지 못한다. 내국인이 사 먹기에 너무 비싸다. 의도치 않은 건강한 웰빙식단, 불량식품을 사 먹기엔 너무 비싼 나라니깐.

쿠바는 단연 올드카로 유명하다. 기나긴 미국과의 수교 단절(엠바고)로 인해 외부와의 교류가 원할치 않았고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했으니깐. 50~70년대 미국 부자들이 타고 다니던 올드카가 여전히 도로 위를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 마치 고전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 빈티지한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쿠바에서 누구나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흔하지 않은 소품과 배경 그리고 특유의 빈티지 느낌이 충만하니깐.

쿠바 사람들은 외부 자원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부에서 모든 걸 해결했다. 흔히 길거리에서 파는 맥주나 음료수는 유리병의 윗단을 솜씨 좋게 잘라 만든 컵에 담겨있다.중고품도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되는 재활용이 강한 나라. 물통이나 잡동사니를 섞어 만든 엉성한 보트로 진짜 바다를 건넌다. 알레 말에 의하면 심지어 비행기도 만들다 정부에 걸려서 감옥에 갔다고 한다. 몰골은 형편 없었지만 정말로 그 비행기는 상공을 날았다고 한다.

관광 대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도 관광객과 로컬 사람들이 접촉하길 원치 않는 미묘하고 아이러니로 가득 찬 이상한 나라 쿠바. 분명 그곳에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그들만의 분위기나 문화, 질서라는 게 존재한다.

더 이상 여행자도 그렇다고 거주인도 아닌, 오로지 떠나기 위해 그곳에 머무는 애매한 3자로서의 쿠바, 나의 세 번째 쿠바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시 만난 우리는 기합이 바짝 들어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여행객이 아니며 쿠바를 떠나야 한다는 도전적인 미션을 이행해야 하는 전사였다. 알레는 내게 말했다.

-Stella 이제 넌 예전의 Stella가 아니야. 강하고 똑똑한 soldier(군인)가 되어야 한다고.

멕시코에서 페소화를 인출하고 달러로 모두 바꿔 현금을 챙겼다. 넉넉히 가져오긴 했지만 앞으로 얼마나 필요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어 우리는 긴축재정에 돌입했다. 최소한으로 생활비 지출을 해야 한다. 여행자들은 보통 1.5 L의 생수를 사서 마시는데 한 통에 무려 1~1.5 CUC에 달한다. 어느 나라건 보통 여행지에서는 수돗물을 마시는 데 유의해야 한다. 물갈이를 해서 고생할 수도 있으니 안전한 생수를 사먹는 게 상식이다. 이전까지는 나도 그러했다.

식당에 가면 보통 외국인에게는 물을 주지 않는다. 수돗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몫의 물을 부탁했고 한 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훗. 걱정 마 알레. 난 멀쩡할 거야.

그리고 난 역시 멀쩡했다. 좋아! 하루에 4 CUC이상 절약 확정! 사실 이전에 멕시코에서 위생이 불량한 거리음식을 먹고 장염에 걸려 한 달 넘게 고생한 이후 뭘 먹어도 내 속은 멀쩡했다. 그게 도움이 될 줄이야.

다음은 교통편. 택시를 타면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5~20 CUC은 지불해야 한다. 여기는 수도 아바나, 택시 이외에도 버스, 공용 택시, 자전거 택시 등등 대중교통이 즐비하다. 앞으로 택시는 금지다. 알레는 내 배낭을 메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를 안내했다. 버스 요금은 정말 저렴했다. 거의 1원에 가까운 요금. 그 이후로 우리의 주요 교통수단은 버스가 된다.

나는 쿠바 버스를 참 좋아했다. 아바나 버스는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외관을 지녔는데 다른 나라에서 쓰다 버린 버스를 가져와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간간이 우리나라 버스도 볼 수 있다. 창문은 다 열려있거나 아예 없어서 매연을 그대로 마셔야 한다. 당연히 에어컨은 없다.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2호선 출근길만큼 사람이 많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버스를 타면서 단 한 번도 불쾌감을 느낀 적이 없다. 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그 지옥 같은 버스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거나 찡그리는 법이 없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 탈라치면 한~참이나 버스는 그 자리에 서서 그분이 자리에 무사히 앉을 때까지 기다려주곤 했다. 간혹 누가 짐을 들고 타거나 어린 아이나 노인들이 타면 자연스레 자리를 양보했다. 때로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여자라는 이유로 자리를 양보해주곤 했다. 또 버스를 타거나 내릴 때 땅 상태가 좋지 않거나 사람이 많으면 낯선 이의 손을 거리낌없이 잡아주기도 했다. 1원에 담긴 그 여유가 좋았다.


내가 없는 동안 알레는 이미 숙소 문제를 해결했다. 그곳은 호세(첫 번째 여행 당시 아바나에서 자기 방을 빌려줬던 알레의 친구) 부인인 마리암(가명)의 아파트였다. 아바나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면 바다 근처의 주거지가 나온다. 3층짜리 빌라 같은 아파트 중 3층의 한쪽 집이 마리암의 집이다.

역시 마리암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리암은 진한 갈색 머리와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목소리가 부드럽고 다정했다. 꾸미는 걸 좋아했고 웃음이 많았다. 나보다 1~2살쯤 더 어렸는데 그녀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였다. 머리가 새하얗고 인자하신 마리암의 어머니(사실상 아파트 소유주), 깜찍한 한 살 터울의 두 공주님, 그리고 남편인 호세가 그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아파트는 방이 두 개뿐이었다. 마리암은 하루 10 CUC을 받고 침대가 있던 안방을 우리에게 흔쾌히 내주었다. 또 낡은 옷장 속 짐을 잔뜩 꺼내 비워 주었다. 창문틈 사이로 바람이 조금 새어 들어왔지만 날씨가 춥지 않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낡았지만 정갈한 방이었다. 물론 그 외 모든 공간은 가족들과 공유해야 했고 방문은 잠기지 않았다.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인데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호세와 다르게 단 번에 마리암의 가족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알레에게 마음에 든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작은 방에서 마리암의 두 딸과 호세가 같이 잠을 자고 어머님이 거실에서 주무셨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낯선 여행객을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10 CUC이란 돈이 쿠바에서는 제법 큰 액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불법이었기에 우리는 처신을 잘해야 했다. 그렇게 뜻밖에 쿠바 홈스테이(?)를 경험한다.


주변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우리는 재료비를 부담하고 마리암 가족에게 요리를 부탁하기로 결정했다. 어느 날 마리암이 예쁘게 꾸미고 밖을 나가려고 했다. 마리암을 부르니 장을 보러 갈 건데 함께 갈 마음이 있냐고 해서 당연히 할 일 없는 우리는 장바구니를 들고 그녀를 따라나갔다.

그날은 유독 날씨가 좋았다. 우리 셋은 웃고 떠들며 시장으로 향하는 길을 끊임없이 걷고 또 걸었다. 마리암은 영어를 하지 못했기에 알레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야 했다. 또는 간단하고 엉망인 나의 스페인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다행히 마리암은 꽤나 센스가 있었다) 마트에서 땅땅 얼은 돼지고기와 닭고기, 소세지 등을 샀다. 쿠바 마트에는 물건이 충분하지 않았다. 물건이 언제 들어올 지 모르니 그냥 있는대로 사야 한다. 채소는 시장에서 저울에 무게를 달고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었다. 겉모습은 초라해 보이지만 맛은 아주 좋다. 나를 간혹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상인을 만나곤 했다. 그렇게 장바구니를 채워가고 있는데 도무지 달걀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수많은 시장과 마트를 수소문하며 달걀 원정대 마냥 달걀을 찾기 위한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 아주 먼 그 부근에서 가장 큰 시장에 도착했는데도 댤걀은 없었다.

-마리암, 도대체 쿠바 닭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들판을 뛰어노는 닭들은 심심찮게 보이는데 말이지. 계란이 없다니! 세상에.
마리암은 내 말에 소녀처럼 꺄르르륵 웃으며 즐거워했다. 쿠바 정부는 각 가정에 쌀이나 식료품을 배급하긴 하는데 그 양이 터무니 없이 적어 쿠바 사람들은 항상 배고프다고 알레가 설명했다. 결국 우리는 자기 몫의 배급된 달걀을 웃돈을 받고 파는 한 아저씨를 거리에서 만나 달걀 반 판을 살 수 있었다.

돌아와서 냉장고에 모두 집어넣으니 한 달간 식재료는 문제 없다. 알레는 이 상황이 그들에게 굉장한 행운이라 말했다. 그런데 우리로서도 이렇게 저렴하게 양질의 숙식을 해결할 수 있기에 서로 윈윈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리암을 만나 행운이었다.


그렇게 나는 마리암네서 보내는 일상에 익숙해져갔다. 마리암의 어머니는 아침마다 늘 작은 포트에 커피를 끓여 주셨다. 아침은 계란이나 소시지와 빵 혹은 바나나, 점심에는 밥과 약간의 샐러드나 과일, 고기류의 반찬 혹은 수프 그리고 저녁엔 점심과 유사한 메뉴를 다시 먹었다. 식탁에 자리가 3개 뿐이어서 보통 나와 알레가 따로 식사를 했다. 저녁엔 마리암도 같이 식사하기도 했고 그럴 때면 식탁은 매우 소란스러워지곤 했다.

내가 샤워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물을 끓여 양동이 하나 가득 채워 화장실로 옮겨주었다. 빈 양동이에 찬물을 섞어 알맞은 물 온도를 만들면 준비 완료. 나는 양동이 두 개 분량으로 머리도 감고 이도 닦고 샤워도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냥 찬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샴푸나 바디로션이 없었다. 알레는 쿠바사람들이 샤워를 정말 자주하는데 그 이유는 목욕용품을 살 돈이 없어 냄새가 날까봐 우려하기 때문이란다. 내 목욕용품을 화장실에 그대로 두었는데 양이 줄지 않는 걸 봐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하루는 손빨래를 마치고 베란다 빨랫줄에 평소 익숙했던 방식(반으로 옷을 걸쳐 빨래줄에 거는)으로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마리암의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옷을 완전히 핀 후 빨래집게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빨래를 너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주셨다.(미소와 행동으로) 그래야 옷이 더 잘 마른다며. 쿠바 빨래줄은 보통 4~5줄이 나란히 묶여 있고 빨래줄 빼곡히 형형색색의 빨래가 걸쳐있었다. 그 장관을 보고 있으면 왠지 셔터를 누르고 싶어지곤 했다. 남의 집 빨래라서 실제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이불 빨래 사진은 몇 장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며칠동안 나는 마리암집이나 그 근처에서 평온한 일상을 보냈고 알레는 인터넷방을 가거나 쿠바를 탈출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 쏘다니곤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가 단서를 얻은 건 아주 뜻밖의 장소였다.


Mi Cubano 시리즈
[Mi Cubano#1] 첫 만남 - 난 생각보단 괜찮았고, 넌 날 쉽다고 생각했다
[Mi Cubano#2] 예고된 불협화음의 시작
[Mi Cubano#3]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Mi Cubano#4] 사랑하지 않아도 특별한 사람
[Mi Cubano#5] 그렇게 마음이 열리다.
[Mi Cubano#6] 때로는 곤란해도 괜찮다.
[Mi Cubano#7] 트리니나드에서 생긴 일
[Mi Cubano#8] 너는 나의 카르마
[Mi Cubano#9] 아니야...
[Mi Cubano#10] 분명한 선을 가진 연애
[Mi Cubano#11] 비날레스, 자전거 그리고 흉터
[Mi Cubano#12] 시엔푸에고스 불안정한 평화
[Mi Cubano#13] 바라코아에 가야만 했다.
[Mi Cubano#14] 이야기가 있는 바라코아
[Mi Cubano#15] 취중진담
[Mi Cubano#16] 결정적 순간
[Mi Cubano#17] 뜻밖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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