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9년에, 티롤 (Tirol) 의 주도가 되었고..
1490년대에, 황실이 옮겨오면서..
유럽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 가 되는..
영광!! 을 누리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도..
마리아 테레지아를 비롯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 유산으로.. 유명해졌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리즈 시절. 초상화이다.)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국모” 라고 일컫어지는..
마리아 테레지아 (Maria Theresia) 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장녀로 태어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 가 되었는데..
친족 관계를 맺었던 유럽 열강들의 이의 제기로..
(유럽의 왕실은.. 어떤 식으로든..
합스부르크 왕가와 친인척 관계를 맺고 있었다.)
왕위 계승 전쟁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결국.. 상속권을 지켜냈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여성이 승계할 수 없었기에..
남편을.. 명목상의 황제로 즉위. 시켰으며..
그녀는.. 실질적인 통치자. 로..
오스트리아와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18세기, 유럽 열강들의 세력 각축전 속에서..
오스트리아를.. 견고히 지켜냈던..
강인한 여성이자, 뛰어난 정치가였다.

그녀는.. 자녀를 16명이나 두었는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그녀의 딸. 이었고..
남편의 사망 이후로는..
아들 요제프 2세와 공동 통치로 바꾸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집정했던..
호프부르크 궁전 (Kaiserliche Hofburg) 은..
막시밀리안 1세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었지만..
그녀가 로코코 양식의 성으로 재건한 궁전. 으로..

홀에는.. 멋진 샹들리에 아래로..
마리아 테레지아와 자녀들의 그림과..

동상이 펼쳐져 있었고..




이런 풍경. 이었는데..
그녀의 딸인.. 마리 앙뚜와네트가 살았던..
베르사유 궁전! 을 본 이후라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규모가 작아서..
아기자기한 느낌. 이었다. ^^ㅋ

구 시가의 중심에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까지 있을 정도. 였는데..
이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 로.. 손꼽힌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