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을 쓴 후, 고양이 신부전에 대한 자료를 읽고, 영양제를 사고, 첫째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일은 6일 만에 다시 피검사를 할 예정인데, 돌이켜보니 지난 며칠간 탈수를 해결하지 못한 것 같아 검사 결과에 대한 기대는 적다. 검사 결과를 받아본 후 글을 쓸까 했는데, 혹시 너무 충격받으면 또 글 쓸 마음이 사라질 것 같아 오늘 쓰는 것으로. 그래도 첫째가 잘 버텨주고 우리도 슬슬 적응해가는 중이라 그다음 검사 결과는 조금 더 낫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품어본다.
7월 4일
- 몇 가지 피검사를 한 후 크레아티닌 수치와 BUN 수치가 높게 나와 신장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통원하며 정맥 수액을 맞추기로 했고, 3일 정도 맞추고 나면 수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굳게 믿었다.
BUN : 50 mg/dL (16-36)
CREA : 4.7 mg/dL (0.8-2.4)
3.62kg
- @thinky님에게 추천받은 Hill's K/D 사료는 돼지 지방이 들어 이곳에서 팔지 않는다. 유럽의 한 온라인 몰에서 Hill's K/D 건사료와 습사료를 주문했다. 10일이 지났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 유럽! 일 좀 하자. ㅠㅠ
7월 6일
- 병원에서 인 수치를 낮춰주는 Ipakitine을 받아왔다. 인 수치가 높아지면 신장에 무리가 가고 식욕이 없어진다고 한다.
- 네이버 카페와 TANYA'S COMPREHENSIVE GUIDE TO FELINE CHRONIC KIDNEY DISEASE를 통해 고양이 신부전에 많이 이용하는 영양제를 알게 되었다. 프로바이오틱스, 오메가3, 철분제, 비타민 B, 칼륨, 유근피 등인데 아부다비, 두바이를 돌아다녀도 구할 수 없어 유럽과 미국에서 빠른 배송으로 주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칼륨과 철분제는 전해질 검사가 필요하지만, 필요시에 약을 빨리 구할 수 없는 것 같아 미리 주문했고, 프로바이오틱스는 다행히 변비 때문에 가지고 있었다. 다만 Azodyl이라는 생균 제품이 가장 유명해서 또 주문했다.

겉모습으로는 안 아파 보이는 첫째.
신장이 안 좋아지면 털도 나빠지고 살도 빠진다는데 따라다니면서 먹였더니 살이 크게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6개월 내내 다닌 병원 의사도 신장 검사할 생각을 안 했다.
7월 7일
- 수액 맞춘 지 3일이 지난 날이라 또다시 10시간 금식 후 피검사를 했는데, BUN 수치는 떨어진 반면 CREA 수치가 그대로여서 충격이었다. 어쩔 수 없이 3일 더 통원하기로 했다.
BUN : 40 mg/dL (16-36)
CREA : 4.7 mg/dL (0.8-2.4)
PHOS : 4.1 mg/dL (3.1-7.5)
3.57kg
- 작년 이맘때의 CREA 수치는 2.3이었다. 당시엔 아직 정상 수치이지만 신장이 안 좋아질 수 있다며 Renal 사료를 처방해주었는데, 작년 12월부터 발 수술, 장염, 알러지성 피부염 등을 겪으며 항생제를 먹다가 급격히 나빠진 게 아닌가 한다. 게다가 올봄에 거대결장 때문인 변비가 오면서 Renal을 끊었던 것도 무리가 된 것 같다.
- 올해 병원에 다니면서 피검사를 몇 차례 해서 당연히 신장 검사가 포함되었을 줄 알았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그 검사는 모두 CBC(Complete Blood Count)라는 일반 혈액검사였고, 크레아티닌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Blood Chemistry Panel , 즉 혈청 화학검사가 필요했다. 병원에서 보여주는 값만 확인하지 말고, 아예 검사표를 받아왔었으면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한국에서는 CREA 2.3만 되어도 난리가 나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4.7이지만 느긋하다. 누가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7월 8일
- 병원에서 6~9시간씩 지내는 데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집에 오면 원하는 곳에 가도록 해주었다. 바람을 쐬고 싶은지 항상 정원에 나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호흡을 1분에 120회씩 하고 있었다. 신장 손상과 계속된 수액으로 인한 빈혈은 아닌지 걱정되었는데, 방으로 옮기니 괜찮아졌다. 고양이는 사막에서 왔다고 해서 높은 온도에 강할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33도 이상에서는 열사병에 걸린다고 한다. 요즘 이곳은 38~46도, 체감 온도 46~55도이다.
- 신부전 관련 자료를 읽다 보니 식욕 부진, 소변 실수 등 신장이 안 좋아졌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었던 징후가 몇 개 있었는데 당시엔 소변 실수는 스트레스, 식욕 부진은 변비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후회되는 마음에 이제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자 자료를 꼼꼼하게 읽다 보니 호흡수에도 빈혈을 걱정하는 극성스런 엄마가 되는 부작용이 있다.
- 7월 4일에 유럽에서 주문한 신장용 습식 사료가 아직 유럽에 머물러 있어 마음이 급해졌다. 이전 글에서 팅키님에게 댓글로 힘든 상황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sunnyshiny님에게서 도와줄 일 없냐며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다. 언제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써니샤이니님에게 사료 택배를 부탁했다.
7월 9일
- 6일째 병원에서 수액을 맞았는데, 병원에서는 잘 먹지 않을 뿐 아니라 잠도 못 잤다. 집에 오면 잠만 자는 바람에 먹일 시간이 더욱 없어졌고, 이미 양 앞 다리에 정맥 수액용 카테터를 3일씩 꽂았기에 집으로 데리고 왔다. 첫날, 이튿날은 또 병원으로 가게 될까 봐 내내 찬장 위에서 경계하더니 셋째 날이 되어서야 마음 편하게 잠을 자기 시작했다.

- 친구를 통해 신장용 습식 사료를 파는 동물 병원을 알게되었다. Beaphar Kidney 시리즈를 종류별로 사왔는데, Duck, Salmon은 실패했지만 Chicken, 특히 Taurin 맛은 첫째가 좋아한다.
-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주사기 강제 급여를 시도했는데 결과는 참패였다. 계속 찾다가 지퍼백을 짤 주머니로 쓰는 영상을 봐서 따라 해봤는데 주사기만큼 위험하지도 않고 효과적이다.
- 주식 캔을 곱게 간다.
- 지퍼백 한쪽 끝에 넣은 다음 IKEA 클립으로 닫는다. (음식을 밀기 쉽다.)
- 따뜻하게 중탕한다.
- 가위로 끝을 잘라서 먹인다.
영상에서는 고양이가 서 있었는데 첫째는 도망가기 바빠서, 우리는 남편이 안고 내가 짤 주머니로 입에 넣어주고 있다. 한번에 20~30g씩 먹일 수 있는 정말 감사한 방법이다.
7월 12일
-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7월 9일에 써니샤이니님이 발송한 택배가 제일 먼저 집에 도착했다. 나머지 택배는 여전히 유럽, 미국에 있거나 운송되는 중이다. 한국에서 일할 땐 신속,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는 문화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렇게 마음이 급할 때는 그 문화가 그립다.

- 드디어 택배를 받았다는 기쁨도 잠시. 이곳의 날씨 때문에 사료가 모두 따뜻하게 데워진 채로 배달되었다. 사료는 안전할지 모르나, 냉장배송을 요구하는 프로바이오틱스, Azodyl이 걱정이다. 집에 도착한다 해도 효능이 남아있을지.
- 짤 주머니 기법으로 무슨 습식 캔도 먹일 자신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Beaphar Kidney가 맛있는 거였나 보다. Hill's K/D를 곱게 갈아서 줬는데 입에 부어주면 혀로 싹싹 닦아서 먹던 평소와 달리 퉤퉤 하며 반쯤은 뱉어버렸다. 아쉽게도 Beaphar Kidney는 최대 6개월만 급여하게 되어있다. 6개월이 지나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 이날 스팀잇에 감사 글을 쓸 생각이었는데, 저녁에 처음으로 피하수액을 시작하면서 넋이 나갔다. 하루에 100 ml ~ 150 ml는 맞추라고 했는데, 고분고분한 유튜브에서의 고양이들과는 달리 우리 첫째는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게다가 나비침을 꽂고 피하 수액을 시작한 지 3분도 안 돼서 첫째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는데 등을 만져보니 물혹이 생겨있었다. 아무래도 바늘을 움직이다 피하가 아닌 피내에 수액을 주입한 것 같았다. 병원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개인 병원이 아니라 의사와의 전화 연결은 쉽지 않고, 밤이 늦은 시간에다 주위에 이런 경험을 한 친구가 없어 울고만 싶었다. 게다가 통화가 되더라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더욱 정신이 아득해졌다.
- 급하게 검색한 결과 피내에 맞춘 수액은 피하수액보다 많이 아플 뿐, 결과적으로는 몸에 흡수된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실수했는지 첫째의 등이 낙타 등처럼 되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한참 후에 확인한 선생님도 그럴 수 있다며 괜찮다고 했다.
- 실수할 때마다, 또는 첫째가 음식과 물을 거부할 때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진다. 남편도 함께 힘들어서인지 서로 꼭 안고 다독여주는 일이 빈번해졌다.
- 50 ml는 맞추려 했는데, 15 ml도 못 맞추고 끝났다.
7월 13일
- 습식 캔을 먹이기 시작한 후로 첫째가 물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아픈 고양이는 그릇 위치, 높이, 재질, 모양, 온도에도 민감하다는 얘기에 집에 있는 그릇과 컵을 몇 개 꺼내보았지만, 그 어느 것에도 입을 대지 않는다. 첫째가 좋아하는 그릇 찾기 컨테스트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 첫째가 먹은 음식의 종류와 양을 기록하고 있고, 습식 캔의 80%가 수분이라 하루 섭취하는 물의 양을 계산했는데 건강한 고양이의 권장량에도 못 미치게 먹고 있었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피하수액밖에 없었다.
- 아침과 저녁에 피하 수액을 시도했는데, 한 번에 20 ml 이상 맞출 수가 없었다. 유튜브를 아무리 봐도 얌전한 고양이를 대상으로 찍은 시범 영상이라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밤늦게 @thinky님의 댓글이 달렸다. 나비침의 종류도 중요하다는 내용이었고, 그 이외에 많은 도움과 조언을 주셨다. ㅠㅠ
7월 14일
- 팅키님의 조언 덕분에 아침과 저녁 수액을 실수 없이 각각 50 ml 맞추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저녁 수액 땐 처음 5분간은 첫째도 예쁘게 엎드려서 수액을 맞아줬다. 조금 더 빨리 맞출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우리가 가진 23G 나비침은 주삿바늘이 작은 대신 액체가 흐르는 속도가 느리고, 주사기를 직접 미는 게 아니라 링거 세트를 사용하기에 100 ml를 맞추려면 15분은 필요하다.
스팀잇을 가입했던 것은 암호화폐에 대해 알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관심 분야가 아닌지라 곧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고, 어느새 족장님께 사진을 배우고 있었다. 3월부터 첫째가 아프면서 많은 분께 위로를 받았다. 비마이펫 님을 통해 거대 결장에 대한 조언을 얻기도 했고, 이번에는 @sunnyshiny님과 @thinky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분들이 이렇게 힘이 되어 주실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감사하기만 하다. 스팀잇을 시작한 것은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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