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일기 #15. 시간이 더디게만 간다

얼마 전부터 7월 4일을 기다려왔다. 첫째 고양이가 자력으로 배변을 하게 된 지 2주가 되는 날이라 이제 Miralax의 양을 조금 줄이고 프로바이오틱스를 소량씩 급여할 계획이었다. 거대결장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단계에서 글리세린 좌약도 없이 2주 연속 자력으로 배변하기까지 석 달 반이 걸렸다. 그래서 우리는 들떠 있었다.

첫째가 식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한국에 있을 땐 4kg였는데 작년 여름엔 3.8kg였고, 지금은 3.6kg이다. 아부다비에 온 첫 1년간 체중이 감소했을 때 의사 선생님은 집 크기가 커져서 활동 반경이 늘어나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냥 그렇게 믿어버렸다. 그래도 올해 3월 변비를 겪기 이전까지는 음식에 흥미가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장염, 그리고 변비를 겪고 병원에 입원한 동안 첫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이후 집에 와서도 내내 음식 먹기를 거부하다 어느 순간부터 다시금 먹기 시작했다. 5월에는 계속되는 변비로 습식 사료만 먹일 것을 권고받았는데, 입맛이 까다로운 첫째가 좋아하는 습식사료를 찾는 것조차 매우 힘들었다. 결국, 처음 2주는 어떻게든 습식 사료만으로 버티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일일 권장 섭취량을 채울 수 없어 건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 잘 먹던 첫째는 다시금 건사료를 포함한 대부분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10일쯤 전 혹시나 해서 준 노모용 건사료를 잘 먹어준 덕에 우리는 또다시 긴장을 풀었다. 일일 권장량도 채울 수 있었고, 그 기간이 자력으로 배변한 기간과 겹쳤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긴 터널의 끝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노모용 사료를 먹은 지 9일째 되던 날 구토를 한 후 전혀 입을 대지 않는다. 다른 상표의 노모용 건사료를 몇 종류 더 줘봤지만, 내내 따라다니면서 먹여야 겨우 성의를 표할 뿐, 자발적으로 음식 앞에 다가가는 일이 없어졌다.

식사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 지 3일째였던 어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의사는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인다며 안심시켜줬지만, 상복부를 누르자 첫째가 반응을 보였다. 상복부에는 간, 신장, 이자가 있는데 전체 초음파가 가능한 의사가 휴가 중이라 일단 피검사를 하기로 했다. 오늘 오전 10시간의 금식 끝에 피검사를 했다. 2~30분이면 확인할 수 있다고 한 결과는 기다린 지 1시간 만에야 나왔고, 신장 관련인 크레아티닌 수치와 BUN(혈중 요소 질소) 수치 모두 정상 수치보다 높게 나왔다.

작년 여름 피검사 때 크레아티닌 수치가 정상 범위의 끝부분에 다다라 그 이후부터 로열캐닌 Renal을 급여하고 있었는데, 올해 변비가 오면서 프로바이오틱스와 섬유소가 포함된 Gastro Intestinal로 바꿨다가, 어느덧 12+ Ageing까지 오게 되었다. 사실 Gastro Intestinal로 변경할 때에도 신장이 걱정되어 의사 선생님과 얘기를 했었고, 그 당시는 신장보다 변비가 더욱 위협적이라 일단 사료를 바꾼 후 3주 후에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었다. 그런데 변비가 너무 오래 지속되자 피검사를 할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첫째는 지금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있다. 느린 수액이라 하루 4~5시간가량 3일간 맞힌 후 다시금 피검사를 하기로 했고, 병원에서는 절대 식사를 하지 않던 전적이 있어 링거용 주사기를 꽂은 채로 통원치료를 하기로 했다. Miralax는 변비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신장에 무리가 가는 약이라 중단하기로 했다. 어차피 줄여보려 했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단 병원에서 로열캐닌 Renal을 사왔고, 예전에 @thinky님이 추천하신 Hill's K/D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잘 먹어야 하는데 잘 먹어줄지 걱정이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1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중 하나는, 첫째와 둘째가 아플 때는 우리가 보살피면 되지만 나중에 우리는 누가 보살피느냐였다. 그리고 조금 더 우리 가족의 건강에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잘 늙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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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바늘을 꽂은게 영 마음에 들지않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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