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일기 #14. 넌 몇 살일까?

7년 전 처음 첫째를 데리고 왔을 때만 해도 수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2살이라는 나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몇 가지 행동을 통해 다른 집에서 키워졌던 아이라는 생각은 했었다.

  • 친구에 의해 발견된 당시부터 사람을 잘 따랐다.
  • 처음 차를 타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뒷좌석 선반에 올라가 식빵 굽는 자세를 취했다.
  • 우리 집에 온 며칠간 눈치를 보며 침대나 식탁에 올라가지 않았다. 심지어 실수로 액자를 건드려 액자의 방향이 틀어지자 반대쪽에서 살살 밀어서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 목욕을 시키려 고무 대야에 물을 받고 첫째를 넣었는데, 가면 갈수록 물이 차자 세면대에 올라가서 자세를 취했다.

첫째만 있을 땐 고양이가 영특해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둘째를 데리고 와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첫째가 우리의 첫 고양이이기 때문에, 데리고 온 주말에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 친구는 의기양양하게 오뎅 꼬치를 들고 나타났는데, 우리 첫째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친구는 '2살인데 이렇게 반응이 없을 수 있나?'라는 의심을 했지만, 그냥 성격이 그런가 보다 했다.

아부다비에 와서 길고양이를 자주 접하며 알게 된 것은, 길고양이는 몸에 상처는 있을지언정, 항상 그루밍을 통해 깨끗하게 털 관리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인 만큼, 어린 고양이가 아닌 이상 비쩍 마른 아이는 보기 힘들었다.

첫째가 친구에 의해 구조되었을 때의 몸무게는 성묘라고 보기 힘든 2.6kg였고, 유기동물보호소에도 '기아'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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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데리고 온 것은 구조된 지 10일 정도 된 날이었다. 그간 동물병원에서 잘 먹고 지냈지만, 발 색깔을 봐선 털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다.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3살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안타까우면서도 첫째가 처음 발견되었을 나이가 3살 이하일 거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아무래도 나와 남편 모두 첫째는 9살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요즘 들어 나이가 의심되는 일이 잦아 고양이 나이를 확인하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찾아본 바로는 자묘에서 2살까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지만, 그 이후로는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보였다. 그리고, 수의사 선생님 입장에서는 고양이 나이를 어리게 말하는 편이 입양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 12월부터 발톱 빠짐에 의한 끝마디 절단 수술, 스트레스성 피부병, 관절염, 장염, 거대결장에 의한 변비, 알레르기, 그리고 요새 우리를 괴롭히는 식욕부진까지 몇 달 사이에 병원에 갈 일이 정말 많아졌다. 게다가 지난주에는 침까지 흘려 병원에 갔는데 딱히 구내염이 아니지만 일단 구내염용 치약을 써보자고 했다. 구내염이 아닐 경우 간을 의심해야 하는데, 첫째가 예민한 것은 이미 병원에서도 많이 겪어 검사를 최소화하고자 한다.
다행히 치약을 사용한 후, 입술을 핥는 행동은 그대로지만 자면서 침을 흘리진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변비와 식욕부진인데, 그래도 변비는 좌약으로 해결 가능한 편이나, 식욕부진은 억지로 먹일 방법이 없어 힘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섭취 열량이 적정 열량에 한참 모자라 고민하던 중, 잘 먹던 시기에 비교해 습식사료의 양은 그대로인데, 건사료를 먹는 양이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 요즘 들어 둘째에 비교해 잘 못 씹어 건사료를 먹는 속도가 현저하게 늦어진 것이 생각나기도 해서 노묘용 건사료를 사러 펫 용품점에 들렀다. 그리고 Royal Canin Senior Ageing 12+를 집어 든 순간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In some senior cats, the senses of taste and smell decline with age which can lead to lower food intake. AGEING 12+ helps stimulate the senior cat’s appetite with a highly palatable, double texture kibble which is easy to chew.

적게 먹는다. 잘 못 씹는다. 아무리 봐도 첫째 얘기였다.
그러고 보면 첫째는 몸에 좋은 습식 캔은 모두 거부하고, 인공 향료가 들어간 습식 캔을 먹는다. 그리고 기존에 급여하던 건사료도 적게 먹지만, 습식 캔도 씹을 고기가 남아있는 것보다는 갈아져 있는 형태를 선호한다. Ageing 12+ 건사료는 제발 좋아하길 바라며 사 왔는데, 기대한 것 이상으로 좋아한다. 게다가 열량도 1g당 4kcal 이상으로 우리가 찾고 있던 고열량이면서도 씹기 쉽고, 맛있고, 변비에 좋은 차전자피 까지 포함된 건사료이다.

어제 오래간만에 첫째가 먹은 총열량이 총 권장 섭취량을 넘어섰다. 기분이 정말 좋은데, 반면 첫째가 9살이 아니라 적어도 12살일 것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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