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커피 #6. 오베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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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무거운 책보다는 휴대폰 화면을 통해 글을 읽는 것을 선호하지만, 절대적으로 실제 책을 고집하게 되는 공간이 있다. 그곳은 바로 해변인데, 밝은 해변에서는 휴대폰이 쉽게 뜨거워질 뿐 아니라, 밝기를 아무리 조절해도 글을 읽을 만큼 충분히 화면이 밝아지질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은 졸릴 때 얼굴을 덮고 자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휴양지에서 읽기에는 가벼운 소설,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 적당하다. 가끔 내용을 모르고 들고 갔다가 무거운 내용, 또는 어려운 내용을 접하고 나면 영 쉬고 온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지난 주말, 이번 주말에 해변에서 읽었던 <오베라는 남자>는 휴양지에 적당한 책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오베라는 59세 할아버지로, 아이패드를 사려고 상점에 들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아이패드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그저 점원이 자신을 속이려고 한다는 의심으로 가득 차있다.

오베는 평생을 정직하고 착실한 게 살아온 사람이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법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누가 시키지도 않은 동네 순찰을 하며 밤새 강도가 든 집은 없는지, 주차 금지 구역에 주차를 한 차는 없는지를 확인한다.

오베에게는 자신의 유일한 행복이었던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만 오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만다. 혼자 남겨진 오베는 하루빨리 부인을 뒤따라 가고 싶지만, 자신이 죽고 나면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는 아무렇지 않게 오베에게 해고를 통보했고,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오베는 자살을 결심한다.

오베는 자살을 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다. 부인 옆에 묻힐 수 있도록 묏자리를 사 놓았으며, 신문 구독을 취소했고, 차량 점검을 한 후 자신의 유서에 바퀴를 언제 갈아야 할지도 남겨 두었다. 또한 자신이 죽고 난 후 사람들이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왔을 때 마룻바닥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온 집안에 보호용 비닐 시트를 깔아 놓았다.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던 그날에는 제일 좋은 바지와 외출용 셔츠를 입고 그 위에 정장 재킷을 입었고, 어쩐지 그에게 매우 어울리는 강박증으로 인해 마루 천장의 정 중앙에 구멍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는 마루의 정 중앙에서 밧줄을 매달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밧줄이 끊어지면서 자살을 실패하고 대체 밧줄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표출한다.

부인의 묘비에 가서 오늘은 꼭 뒤따라 갈 것이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던 오베는 이후에도 여러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생각지 못한 이유로 동네 사람들과 얽히게 되고, 그렇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하나하나 얻어 가다 원치 않던 길고양이 한 마리도 집안에 들이게 된다. 과연 그는 원하는 대로 죽을 수 있을까?


오베가 아이패드를 왜 사려고 했는지는 책의 끝부분에 가서야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 따뜻한 이야기이다.




아래는 공감가는 문구들.

묘석과 고양이 모두 그의 옆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오베가 잠시 자기 신발을 바라보았다. 신음 소리를 냈다. 눈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묘석에서 눈을 더 털어냈다. 조심스레 그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보고 싶어.” 그가 속삭였다.
오베의 눈가가 살짝 반짝였다. 그는 뭔가 몽클한 게 팔을 누르는 걸 느꼈다. 잠시 뒤 그는 고양이가 자기 머리를 그의 손바닥에 부드럽게 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단지 고양이에게 물과 밥을 주고 지낼 곳을 제공하는 일이 아니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다 보면 어느새 사람도 고양이도 서로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온다. 고양이가 아플 때 약을 먹이고, 병원에 데리고 가고, 질병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것처럼, 고양이도 사람이 아프면 바짝 붙어 누워 온기를 전해준다. 또한 울고 있으면 조용히 다가와서 한참을 곁에 앉아있거나 머리를 문지르고 간다. 그러면 더 이상 우울해하고만 있을 수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정말 그랬다. 남편과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땐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 노심초사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며 서로의 단점을 알게 되었고 때때로 싸우기도 했다. 만난 지 꽤 오래된 지금은 어떻게 하면 싸우게 되는지 알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또한 마음이 상했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아플 땐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면, 무엇을 먹이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덕분에 크게 상처받기 전에 화해할 수 있고, 따로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퇴근하는 남편 손에 조각 케이크가 들린 날이 꽤 있다.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 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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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가와 소통하는 살아있는 미디어, 마나마인>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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