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생각하면 짜이와 잎담배, 인도 영화가 생각난다는 저자와 달리 인도를 생각하면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싱가포르에서 만난 인도인들이다. 교환학생 시절, 분명 같은 수업을 듣는 인도인들이 있었으나 묘하게 그들과는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그들의 수가 적었던 것도 아니고, 원하는 사람과 짝을 지어 프로젝트를 한 것도 아닌데 희한한 일이다. 다만, 매 수업마다 너무나도 우아해 보이는 사리를 입고 오던 여자 교수님과 자신감이 넘쳐 보였던 학생들과 달리, 싱가포르에서 궂은일을 하시는 분들도 대부분 인도 출신인 것을 보며, 그들의 빈부격차,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카스트 제도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IT 개발자로 일을 하는 동안 꽤 많은 인도인을 접했다. 업계에서의 통념은 "인도 사람과 일할 때는 세세한 것까지 모두 지시해야 한다.”이지만, 사실 한국 사람을 포함한 다른 어느 나라 사람과 다름없이 세세한 것을 알려줘도 못 하는 이가 있는 반면, 기대한 것보다 훨씬 나은 성과를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함께 일을 하다 친해진 이들 중에서는, 내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음을 진심으로 화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인인 나의 입장에서는 결혼식을 위해 인도에서 온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상대가 어디에 있던 결혼식에는 초대하는 것이 관례인듯했다. 당시에 초대받은 인도에서의 결혼식은 물론 바빠서도 참석하지 못했지만, 사실 그 당시 나는 인도를 여행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런 내가 인도를 여행지로 생각하게 한 계기는 다름 아닌 영화 ‘김종욱 찾기’였다. 공유와 임수정의 키스신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영화에 나왔던 블루시티, 조드푸르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비록 블루시티는 아니지만, 올해 초에 있었던 지인의 결혼식과, 지난 주말 인도에 거주하는 한국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올해 두 차례 인도에 다녀오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여행을 준비할 때 가이드북을 읽지 않았다. 방문해야 할 곳은 트립어드바이저를, 각각의 정보는 위키 페이지를, 그리고 동네 맛집은 구글맵을 통해 알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각 지역에 얽힌 생생한 이야기, 한층 더 파고든 문화에 대한 설명은 이들을 통해 접하기 어렵기에 여행할 때마다 그 지역에 대한 책을 읽곤 했고, 이번 여행을 위해서는 <인도, 그 아름다운 거짓말>이라는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다수의 시인, 건축가, 연극 연출가, 소설가, 음악 평론가에 의해 쓰인 책이다. 여러 사람이 지은 책인 만큼 어떤 이의 글은 나와 취향이 너무 달라 급하게 넘기기도 했고, 또 다른 글은 몰입해서 단숨에 읽기도 했다. 또한 비록 내 관심사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인도의 문화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고,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도 있었으며, 저자가 겪은 황당한 상황을 수긍하며 그냥 웃어넘기기도 했다.
인도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 인도 사람들은 모두 힌두교도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흐메드’라는 성을 가진 인도 개발자를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인도에도 무슬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처럼 극소수의 사람만이 무슬림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인도인의 10%가량이 무슬림이며, 영국에 지배받기 전 가장 최근까지 이어진 무굴 제국 자체가 이슬람 왕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무굴 제국이 왜 갑자기 이슬람교를 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힌두교와 이슬람교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사실 인도는 불교의 기원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론리플래닛이 소개한 싼 숙소인 인터내셔널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전압이 불안정해 물 끓이는 코일이 고장났다. 우리는 겁이 나서 노트북을 켤 수 없었다.
전압이 불안정해 물 끓이는 코일이 고장났다는 위 글을 보며, 인도에 노트북과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길 잘 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다만 내가 다녀온 곳은 그래도 큰 도시였으니 가져갔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쿠쉬나가르라는 조그만 시골마을을 여행하게 된 계기는 그곳이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공교롭게도 저자가 쓴 내용이 아닌 석가모니의 말씀이었다. 힘든 시기가 오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지지만, 사실 결정을 해야 하는 이도 나 자신이고, 살아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일 뿐이다. 문득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떠올랐다. 언젠가는 읽어봐야겠다는 마음만 있었을 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그 책. 다음 책으로는 ‘싯다르타’를 택해야겠다.
우리는 1초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어떻게 보면 삶과 죽음은 너무도 가까운 사이이다. 그럼에도 화장터로 쓰여 죽은자의 시신이 모여드는 바르나시의 갠지스강 만큼은 절대로 가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그곳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렇게 시선을 조금 바꾸고 나니 어쩌면 나도 바르나시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들어 사진에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까지 접했던 인도에 대한 사진은 대부분 무질서, 가난, 그럼에도 밝은 아이들에 대한 것이었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나도 그런 모습을 담겠다는 마음으로 인도로 향했다.
첫날 친구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번화한 쇼핑몰이었다. 애플스토어, 삼성모바일, 스타벅스, 디젤, 하겐다즈, 태그호이어 등 쇼핑몰을 가득 메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점들을 보며 한국에 온 것인지, 아부다비의 몰에 온 것인지, 인도에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곳은 인도를 담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진을 포기하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다음 장소는 그곳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이었다. 누군가의 결혼식이었는지 현지인들의 파티가 열리고 있었고, 값비싼 사리를 걸친 여자들과 턱시도 또는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들이 로비를 오갔다. 그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꺼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잠시 동네 과일가게를 가는 길에 드디어 내가 상상했던 현지인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의 사진을 담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고, 나는 잠시 생겼던 선입견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저자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물 장수의 물을 마신 것일까? 지인들로부터 인도에서 배앓이를 한 경험을 수없이 들었기에, 지난 여행에서는 식당에서도 뚜껑이 잘 잠가진 생수만 마셨다. 아니,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양치도 모두 생수로 했었다.
사실 최근 몇 년간 인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위생 관념과 화장실 시설 또한 이전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때문에 이번에 친구 집을 방문해서는 수돗물로 양치를 했다. 물론 친구 집이 콜카타에서의 어느 호텔보다 깔끔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인도를 두 차례 여행하며, 책으로 접하거나 지인들로부터 전해 듣고 겁먹은 것에 비해 인도 여행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그 어떤 나라 보다 베지테리언용 음식이 풍부한 곳이었기에, 공기 오염만 덜 하다면 그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회만 된다면 언젠가는 조금 더 자유롭게 가벼운 차림으로 인도 시골로의 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이 글은 <작가와 소통하는 살아있는 미디어, 마나마인>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