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커피 #8. 언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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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아랍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은 직후였다. 이곳에 온 후 매주 진행되는 커피 모임을 통해 꽤 많은 친구들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임에 반해, 대부분의 유럽 출신 친구들은 3~4개 국어가 가능하고 심지어 그들 중 몇몇은 아랍어도 새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영어만으로도 거의 가능하지만, 주변의 다른 나라, 특히 풍광이 멋진 지방으로 여행 가는 순간 영어는 쓸모없는 언어로 전락하고 만다. 작년에 말이 통하지 않는 타 국가에서 차 사고로 고생한 적도 있고, 주위 친구들을 보며 자극을 받기도 했으며, 또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아랍어를 배워보겠냐는 생각에 일단 간단한 회화를 배울 수 있는 무료 강좌를 신청했다.

사실 새로운 언어를 배워보려 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수년 전 중국어와 일본어도 인터넷 강좌를 통해 시도해봤으나, 그 많은 한문, 그리고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새로 외워야 한다는 것에 질려서 포기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랍어라니. 다시금 부담감이 생기던 와중에, 15개 국어를 한다는 저자의 책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에서 지금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에 늦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1970년에 쓰인 이 책은 지금의 상황과는 괴리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언어 공부법 자체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책이다. 헝가리 출신의 저자는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는 물론 루마니아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14개의 외국어를 배우게 된 짤막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시청은 1945 년 2 월 5 일에 해방되었다. 나는 러시아어 통역사를 자처했다. 그들은 지체 없이 나를 고용했고 나는 곧 첫 일감을 받았다. 시의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시장이 누구인지 말해야 했다. 사령부 본부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자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냥 수화기를 들라고 했다. 사령부 본부가 받을 거라고 말이다. 1945 년 2 월 5 일, 부다페스트에는 연결된 전화선이 단 하나뿐이었다. 그때부터 언어 실력을 선보일 기회가 끝이 없었다. 유일한 골칫거리라면 내가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조잘거릴 수는 있었지만 (아마도 오류가 많았겠지만) 그에 반해서 이해하는 게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나의 대화 상대는 이 어려움을 청력 문제 탓으로 여겼다. 그들은 나를 위로하면서 내 귀에 대고 다정하게 고함을 질러댔고 내 건강이 나아지면 청력도 돌아올 거라고 여겼다. 당시 나는 키에 알맞은 몸무게보다 20 킬로그램은 덜 나갔다.

그녀는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었다. 언어를 많이 할 줄 안다는 점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너무나 겁이 없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회사에 다니던 당시의 나는 새로운 일을 덥석 맡기 전에 미리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일도 망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왔는데, 내 직속 상사들은 그것은 일을 맡은 후 고려할 문제라며 나의 그런 점을 답답하게 여겼다.

저자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는데도 시청에서의 통역사를 자처했다. 나로서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사람이었기에 새로운 언어에 도전하고, 그에 대한 일감을 받고, 자신을 궁지에 내몰리게 함으로써 언어 능력을 빨리 향상시킬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주제는 언어를 공부하는 방법과, 여러 비슷한 언어를 배웠을 때 주의할 점, 그리고 언어를 활용한 직업에 대한 소개로 나눌 수 있다.

아쉽게도 언어를 공부하는 방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70년대 이 책이 처음 쓰였을 시기에는 특별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대부분의 방법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방법이다. 때문에 이미 교과과정을 통해 영어를 배운 사람이 영어를 더 잘하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의 경우처럼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면, 또는 영어를 배우기 시작할 아이가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언어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습관화하면 좋을 방법과 피해야 할 점을 그녀의 경험을 통해서 짚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택했지만, 다행히도 수능 시험과 함께 프랑스어는 기억에서 잊혔다. 덕분에 프랑스어의 단어와 영어의 단어가 헷갈려서 고생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15개 국어를 하는 저자는 그런 경험이 매우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는 헝가리어와 달라서 문제가 없었겠지만, 영어의 경우 프랑스어, 독일어의 영향을 받았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의 영향을 받았기에 그 언어 들의 단어의 생김새는 비슷하면서도, 발음과 뜻은 또 다른 경우가 있어 사용하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영어와 한국어와는 전혀 다른 아랍어를 배우는 것에도 장점이 있긴 한 것 같다.

언어를 배울 때는 문어체와 구어체를 모두 습득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문어체는 문법을 따르는 것과 달리 구어체는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을 때가 많아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저자는 “지금 몇 시입니까?”에 대한 표현이 나라마다 어떻게 다른지를 그 예로 들었다.

독일어로는 ‘얼마나 늦습니까(Wie spät ist es)?’, 프랑스어로는 ‘어떤 시간입니까(Quelle heure est-il)?’, 러시아어로는 ‘어떤 시간(Который час)?’, 영어로는 ‘시간이 무엇입니까(What is the time)?’, 스웨덴어로는 ‘시계가 얼마나 됩니까(Hur mycket är klockan)?’, 히브리어로는 ‘시각이 무엇입니까(Mah ha shaah)?’라고 말한다.

사실 문어체와 구어체의 차이는 아랍어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아랍어의 문어체는 1,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반면, 구어체는 각 나라에서 다르게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어체만 배워서는 글을 읽을 수 없고, 문어체만 배워서는 대화를 할 수 없다. 또한 각 나라별로 아랍어에 프랑스어, 그리고 지역 방언이 더해져서 발전했기에, 아랍어를 쓰는 나라의 국민 간에도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고 한다. 때문에 아랍어를 배우는 것은 2개 언어를 동시에 배우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15개 국어를 사용하는 저자를 보니 한숨만 내쉬고 있을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언어를 활용한 직업으로는 언어 교사, 번역가, 통역가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통역을 하는 것을 선호했지만, 통역의 장점만을 말하기보다는 성격에 맞춰서 직종을 택할 것을 권하고 있다.

언어 관련 세 가지 직종 중에 어디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는 연습보다는 성격 문제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직종을 구별하고 성공이냐 실패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시간이다. 내향적이지 않고 주목받는 일에 겁먹지 않는 사람만이 교사와 통역사가 되어야 한다. 배우 다음으로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르는 사람이 바로 교사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배우는 몇 주, 몇 달 혹은 운이 좋으면 몇 년 동안 미리 연기의 모든 세세한 점을 연구하고 나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서 교사와 통역사는 무대에서 다양한 변화를 마주한다. 둘도 물론 서로 다른데 교사는 보통 주변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반면 통역사의 삶은 예측불허다.

이 책이 1970년에 쓰인 책이라니. 대학교 원서를 쓸 때 내 주위 사람들 모두는 나의 성격보다는 성적 및 학교 이름에 맞춰 학과를 추천했다. 나뿐 아니라 친구들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전공을 택했다. 성적이 아닌 성격에 맞는 전공과 직업을 택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30대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는데,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는 조언자를 일찍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이 책에서 원하던 부분을 찾았다. 바로 아래의 대목이다.

나이와 언어 학습에서 잘못된 추측 두 번째는 바로 ‘나이가 들면 잊어버리기나 할 뿐 새로운 걸 배울 수 없다’는 태도이다.

나는 열린 마음으로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세세한 기억력은 역시 흐려지겠지만 통찰력은 좀 더 넓어진다. 범주의 윤곽은 탄탄해지고 그 안의 개별적인 세부 내용은 예리함이 줄어든다.

물론 저자 또한 발음의 경우에는 11살 이후에 고치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영어를 예로 들어 ‘r'과 ‘l' 발음을 구분하거나, ‘f’와 ‘p’를 구분하는 것 정도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발성법부터가 다른 것을 뒤늦게 커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이상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z’와 같이 한국인들이 어려워하는 발음이 있는가 하면, 일본인들은 아예 받침 사용을 어려워하고, 프랑스인들은 ‘h’의 ‘ㅎ’ 발음을 ‘ㅇ’로 읽는다. 또한 스페인어의 경우에도 ‘ㅈ’ 발음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아무리 천천히 발음을 알려줘도 ‘ㅈ’ 대신 ‘ㅎ’을 쓴다.

아랍어 수업에 가기 전만 해도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오히려 수업에 가고 보니 50대로 보이는 분들도 아랍어를 배우고 계셔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게다가 그분들 중에는 고급 과정을 듣는 분들도 있었으니, 역시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닌 노력과 시간인 것 같다.


또한 그녀는 ‘언어 재능은 없다’라고 주장한다.

나는 교육 수준에 걸맞은 수준으로 모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주위에 외국어를 유독 잘 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언어적 재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글을 읽어보면 따로 재능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주위 친구들을 보며 '이 사람은 참 한국말을 잘한다.'라고 느낀 적은 없었으니까.


그럼 과연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나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이 또한 작가의 글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실체가 없고 정의 내리기 힘든 ‘언어 재능’보다는 ‘학습법’이 어휘, 좋은 발음, 총체적 문법 지식 들을 습득할 때 더 큰 역할을 한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 시리즈와 성문 시리즈는 영어 공부를 위한 책인 것인지, 오히려 담을 쌓게 하는 책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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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가와 소통하는 살아있는 미디어, 마나마인>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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