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진전] #02 "교회" (글/사진 @soosoo)

처음 교회(성당이라 해도 좋고)를 방문하는 것은 다른 종교를 가진 내게 결코 평범하거나 쉬운일은 아니었다. 교회는 여행자들에 활짝 열려있는 공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를 움츠려들게 하는 것은 내가 마음속에 긋고 있었던 종교란 분류였다. 그래도 유명한 장소이기도 하고 거기까지 안볼 수도 없기도 했지만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중한 건물들은 여행자로서의 소심한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는 척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나는 내가 믿고 속한 종교란 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도 나를 붙들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붙들어매고 이념으로 무장된 자아검열 같은 걸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아검열이 주는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생각하는 오직 하나의 길만이 옳다는 것이었고, 그 옳은길 외에 다른 길은 체험의 대상이 아니라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훌륭하게 잡다한 호기심을 제어하고 기피에 성공한 나는 아주 튼튼한 심지를 가진 훌륭한 자기통제자라고 믿고 있었다. 그 낡은 믿음을 깨뜨릴 수 있었던 것이 내가 여행에서 얻은 큰 인생템 중 하나였던 게 아닐까 싶다.

유럽을 이해하는 큰 코드 중 가장 중요한 곳은 역시 교회이다. 유럽에서 비록 신은 죽었다지만, 교회에 가보지 않고 우리는 유럽의 문화, 사람, 역사, 전통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뉴에이지...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일부 개신교도들은 왜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엄마가 중요한지를 반문하겠지만, 노트르담 - 성모 마리아 - 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란 뛰어난 성인 한분만의 어머니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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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Strasbourg /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 프랑스

밤에 비추는 조명이 붉은 색과 만나면 일품이라지만, 우리 여행의 시간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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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국이나 일본을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오래된 불교나 도교의 사원들이 종교시설이 아닌것처럼, 유럽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오래된 교회 혹은 성당들은 분명 종교라는 의미 그 이상이다. 일상에서 자신이 향하고 있는 다른 믿음이나 다른 기준들은 높게 솟은 천장아래에 은은한 조명과 장미창을 통해 그 순간만큼은 잠시 희석되어 버린다. 개인적으로야 비록 어떤 종교적인 권위가 결코 내 마음에 들어오는 걸 허용하기 싫어하는 편이지만, 그 순간 여행자인 내게는 적어도 이탈리아어와 같은 느낌의 라틴어 미사는 오히려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에 더 폐부 깊숙한 곳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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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 / 비엔나 Wien, 오스트리아

모짜르트의 결혼식, 장례식이 이루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공사중인 커버가 재치있긴 한데, 사진을 이따위로밖에 찍지 못한 10년전의 어떤놈을 때려주고 싶지만. 전체샷이 궁금하신 분은 구글에서 검색 gogo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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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가운데 줄쳐놓은 뒷자석은 방문객과 신도들을 갈라놓는 선이다. 그러나 앉아야 할 지 서야 할 지를 결정못하는 더 많은 관광객들의 어색함이 결코 그 분위기와 따로 놀지는 않는다. 엄숙한 분위기에 알아서 적당히 조용히 해주는 여행자들 일부는 앉아서 눈을 감고 나름의 기도를 하기도, 성호를 긋기도 한다. 하지만 미사를 보는 몇 안되는 신도들의 대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이들의 태도나 복장이 그들이 이 교회에 다니는 성도가 아니란 걸 금새 알게 한다. 나와 그들 중 일부는 하루에 딱 4차례만 틀어주는 교회벽 뒤의 거대한 - 정말 거대한 - 파이프오르간의 소리가 울릴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성상들과 벽화들과 각각의 상징들을 둘러보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그런 대상이나 상질들에 어떤 이야기와 역사가 스며있을까를 상상해 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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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청Curia Romana / 바티칸 Vatican, 이탈리아

세계 기독교의 본산이자, 거의 독립된 국가이며, 교회이자, 정부이며, 거대한 미술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위시한 수많은 국보급 회화의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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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대성당Duomo di Firenze / 피렌체 Firenze,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침을 깨우는 종소리가 요란하다. [냉정과 열정사이冷静と情熱のあいだ] 영화배경 때문에 두오모의 꼭대기는 싫지 않은 몸살을 앓는다.


제법 큰 글씨로 2유로라고 되어있지만, 나는 1유로짜리 동전 하나를 헌금함에 넣고 아래 쌓여있는 촛불 하나를 켜고, 성호를 긋고, 손을 모으고 나름의 기도를 드려본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계식으로 된 곳은 허용되지 않는다. 2유로라고 써져 있으면 2유로를 넣어야 초가 나오든 불이 나오든(?) 뭔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동식 헌금함임에 감사한다. 나는 결코 넉넉하지 않은 여행자니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기념주화뽑기를 여러번 해봤다. 아, 뽑기라도 100% 나온다. 그리고 교회의 작은 미니어쳐들을 구매하는데 나는 돈을 아끼지는 않았다. 잘 만들어진 미니어쳐를 수집하는 것은 마치 내 인생의 조각들을 모으는 것 만큼이나 중요할 때가 있었다. 이젠 포기한 취미가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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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 제르맹 데프레 수도원 Église de Saint Germain des Prés / 빠리 Paris, 프랑스

여행객들이 즐겨찾는 건너편 레뒤마고와 플로랜스란 유명한 카페들에 가려 조그만 지역교회처럼 여겨지지만 6세기에 지어진 오래되고 규모가 큰 교회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철학자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잠들어 있다.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대목에 나는 순간 몹시 어눌해진다. 평소의 내 종교가 아니기에 그 순간도 스스로의 몸짓에 대한 어색함을 애써 모른체 한다. 물론 머릿속은 그 애매한 성호긋기가 위에서 오른쪽부터인지 왼쪽부터인가를 가늠하고 있다.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휘리릭 대충 뭉갠다. 물론 사람들은 내가 어느쪽으로 하든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교회의 천장을 올려다 보느라 바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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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크레 쾨르 대성당La basilique du Sacré-Cœur / 빠리 Paris, 프랑스

프랑스 근대정치의 이념의 얼룩속에서 완성된 흰백색의 성당, 역사를 말하듯, 빠리 전체를 내려다 보는 전망대이자 집시(?) 미술가들의 랜드마크이며, 매일 벌어지는 교회앞의 여행자들이 흥겨운 음악에 빠지는 야외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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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종교들의 세계관이나 역사, 종교철학엔 관심이 많지만, 흔히 말하는 종교적, 그러니까 감성적이거나 영적인 측면에서 종교를 접하는 태도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종교란 우리 삶에서 필요한 극히 일부분일 뿐이니까. 다시말해 내가 종교의 철학적 메시지 - 잘못 읽지 마시길, 메시아나 맛사지가 아니라 메.시.지 - 가 내 삶을 충만하게 해야지 종교의 행태에 휘말려 끌려다니고 싶지는 결코 않다. 단 그 일부분, 종교적인 의례들이 내 마음의 감성을 건드려주고, 인류와 함께 했기에 주변의 역사를 알게 해 주며, 또한 생존한 오래된 건축이나 미술양식들이 내게 정보와 배움을 주기 때문에 종교는 내게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다만 철지난 사진들을 보니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사물을 보는 구도가 얼마나 단편적인지를 새삼 느낀다. 화질이나, 사진에서 중요한 색상이야 그렇다 치고, 위아래를 다 잘라먹은 저 근시안적인 구도 바라보기는 약간은 창피하기도, 우습기도 하다. 누 말마따나 "오늘은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성숙한 날이다.(사실은 드라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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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낭끄 노트르담 수도원Abbaye Notre-Dame de Senanque / 고르드 Gordes, 프랑스

산 속 깊이 있는 수도원답게 제법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활짝 열린 저 수도원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빠진 머리털 말고는 털이 덥수룩한 수사님 한 분이 슬리퍼를 끌고 어슬렁거린다. 낯선 여행자지만 무반응으로 삐죽 쳐다보고 그만이다. 그게 쉬크든, 도루코든 그 무심한 태도가 별로 불편하지 않다. 아, 목도했던 저 색감과 향기를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마냥 아쉽기만 하다. 저 보라색 라벤더 물결에 수도원이란게 무색하지만, 반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거나, 감정이란 기관이 존재하지 않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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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대성당Kaiserdom/St.Bartholemäuskirche / 프랑크푸르트 Frankfurt am Main, 독일

프랑크푸르트 어디에서 솟아오른 이 성당은 주변의 높은 건물들 때문에 전체가 잘 보이지 않지만 눈에 잘 뛴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한 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대관식을 치루었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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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서구의 종교 전쟁들 중 가장 대표적인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많은 ‘종교전쟁’들은 주제나 소재나 모두 종교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사실은 그 배후에 있던 권력들과 서로의 필요를 주고 받는 이용관계에서 오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이 책임을 오롯이 종교에 묻는것은 종교에게 있어 억울할 뿐 아니라 비종교의 입장에선 비겁한 태도일 수도 있다. 전쟁, 그리고 가해자들은 이런저런 적당하고 적절한, 나아가서 더 웅장한 명분을 찾지만, 그것의 본질에는 모두 당시를 살았던 이들의 욕망이 깔려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에 대해 책임을 물을 생각도 없다. 욕망을 부리다가 그 결과로 피해자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제공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과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랬다고 해서 모든 인간들을 본질적으로 나쁜 욕망을 부리는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건 ‘대비란 태세’라기 보다는 ‘불신이란 태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불신은 가족이나 친구들을 제외한 거의 모두를 향한 것이다. 가끔은 가족이나 친구도 포함되지만.

예수천국 불신지옥론을 과도하게 절실히 믿는 극소수의 일부 존재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예수님을 불신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불신하는게 문제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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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대성당Kölner Dom / Hohe Domkirche St. Peter / 쾰른 Köln, 독일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쯤 되는 1200년대에 짓기 시작했지만 몇 백년의 시간을 멈추었다가 19세기에 완공했다. 2차대전 중 영국의 폭격기의 공격 덕에 시커먼 색깔이 되어버렸지만, 그 다크그레이가 나름 멋진 배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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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 빠리 Paris, 프랑스

빠리의 노트르담/노틀담의 꼽추Notre Dame de Paris / The Hunchback of Notre-Dame때문에 설명이 필요없지만, 사실 노트르담은 성모마리아란 뜻으로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함께쓰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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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높은 천장과 환하게 밝혀진 촛불, 그리고 아름다운 음성의 미사와 파이프 오르간 연주 어디에서도 용서관용이란 메시지 이외에는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오랜 세월을 인류와 함께 했던 건축물에서는 새로 지은 그 어떤 곳에서도 맡을 수 없는 긍정적인 옛날 냄새가 난다. "하나만 아는 사람은 그 하나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교회에서 종교만 보고 다른걸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무관심한 사람이다.

두 가지 종교를 동시에 갖는 것이 이상한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바보들에게 이 사진과 글을 바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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