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_ 17. 그 여자의 청첩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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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멋지게 써주신 @kundani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kimssu

_

17.
그 여자의 청첩장(1)

2017년 1월 1일.

오빠 동료선생님의 추천으로 <라라랜드>를
보기로 했다.
뮤지컬 영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누군가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고 하길래
고민하지 않고 예매했다.

웅장한 음악, 화려한 춤
그리고 공감되는 이야기들...
처음 보는 뮤지컬 영화에 신세계를 느끼면서
신나게 영화를 감상했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얼마나 쌍욕을 한지 모른다.
결말 부분에 나오는
여자주인공의 선택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기가 차서 헛웃음도 났다.

"그 년이랑 다를 게 뭐야?
진짜 세상 미친년이다. 세상 미친년이야.
여자들은 왜 그래? 왜 저러냐고!
왜 여자 주인공이 딴 남자한테 가 있어?
남자 주인공이랑 잘 되야지!
저게 왜 영화야? 영화니까 어?
아름다운 결말 몰라?
남자 주인공이랑 알콩달콩 잘사는 거!
그거 보여줘야지!
또!
여주인공은 왜 나가면서 뭐하러 또 남주인공 한 번 돌아봐?
그냥 나가지!
아! 짜증나!"

오빠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알고 있었는데.
'사랑한다고' 말할 때 부터 뭔가 느껴지지 않았어?"

"아니, 사랑한다 해 놓고! 왜 사랑하는 사람이랑 잘 안 된거냐고!"

나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혼자서 계속 씩씩거렸다.
그 때가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오빠가
"커피 한 잔하면서 얘기 더 하다가 들어갈까?"
라고 물었다.
그래서 "그래야 할 것 같아!"라고 대답하고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았다.

좀 차분해진 목소리로 오빠에게 말했다.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남주인공 가게에 들어왔을 때, 눈 마주쳤을 때 그 눈빛이 진짜 너무 슬픈거야.
그리고 피아노 연주 끝나고
여주인공이 나가면서 남주인공이랑 눈 마주치잖아.
그 때 남주인공이 살짝 웃는 거!
거기서 약간...
예전에 오빠가 그 여자랑 헤어질 때
오빠 표정이 저랬을 거 같은거야...
난 그게 너무 슬펐어.
....영화를 너무 잘 만든 거 같아.
짱이다, 진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IPTV로 나오면 꼭 다시 봐야겠어."

영화관에서 털어 놓지 못한 말 들을
오빠 앞에서 툴툴거리며 털어놨다.
"여주인공의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거야?
나는 잘 모르겠어.
왜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 차버리고...
자기 꿈을 지켜 준 사람이고
지원해주고, 밀어 준 사람인데
그냥 딴 남자 만날 수가 있는거지?
난 도저히 이해가 안돼!"

결말을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 <라라랜드>는
나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
IPTV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장용으로 가장 비쌀 때 구입해서
보고 싶을 때마다 다시 돌려본다.
돌려볼 때마다
꼭 그 장면에서 '아유 미친...' 하면서도
여자 주인공이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생각해봤다.
그런 여자가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내 사랑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지,
그 여자에게
어쩌면
고마워 해야할 일은 아닐지
생각해봤다.

.

.

.

그 날은 아침에 늦잠을 잤다.
원래라면 엄마가 동생 어린이집 보낼 준비시간에 맞춰 나를 깨워서
평소 어쩔 수없이 일찍 일어났었는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엄마는 늦게까지 자는 나를
내버려 둔 것 같았다.
재돌샘은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 동안 만나지 못 했던
대학 친구들을 만날 거라고 여행 중이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폰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이제 일어났다고 재돌샘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답장을 받았다.

나 사기 당한 것 같아
-재돌오빠

'여행 갔다가 큰 일이 났나 보다.'
싶어서 얼른 볼 일을 마무리하고
화장실에서 빠져나와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재돌샘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재돌샘이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여보세요? 사기를 당해요?
무슨 일 있어요?
땅이 꺼지는 듯한 재돌샘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여자가 교무실에 청첩장을 돌렸데!"

재돌샘은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그리고

"나 사기 당한 거 맞지? 하핳하하하핳"

나는 내가 들은 말이 정확한지
다시 확인 해야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뭐라구요? 설마 내가 아는 그 여자가요?
뭘 돌렸다구요?"

"청첩장!"
재돌샘의 웃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특유의 웃음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으하하하학. 흐핫으하하하하하학."

재돌샘이 웃는 게 웃겼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것 같기도 했고.
나는 웃을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웃는 걸 참고 싶은데
심각해야 할 것 같은 당사자가
미친듯이 웃기만 해서
나도 실실거리게 됐다.
"쌤 지금 어딘데요? 학교예요?"
집에서는 재돌샘이랑 전화하면서
'오빠'라고 부를 수 없었다.
방에서 '오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엄마, 아빠에게 들릴까 싶어서
집에서는 '쌤'이라고 불렀다.

"아니. 나 지금 휴게소에 잠깐 주차 중이야."
"휴게소? 그럼 그 여자가 청첩장 돌린 지는 어떻게 알아요?"
"그게 정석쌤(중학교 과학쌤) 전화가 왔어.
'여보세요?'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말은 안 하고 숨이 넘어가도록 꺽꺽 웃는 거야.
아주 호쾌한 듯이 웃더라고.
그래서 내가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어봤지.
한참을 웃다가 딱 멈추더니
'니 전 여자친구 결혼한데!!!'
이러는거야.
그래서 내가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까
오늘 중학교 교무실에 그 여자가 청첩장을 돌리러
왔었데!
정석쌤은 그 얘기를 하고 또 웃겨 죽겠다고 웃는데
기가 차더라고."
"헐....미친....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중학교 교무실에다
청첩장을 돌려요?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얼굴에 철판 깔았네. 철판 깔았어."

"하아.....진짜 상도덕이 없지 않니?
상도덕이 없어.
상도덕은 지켜야 되는 거 아니니?
진짜 뻔뻔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내 말이.
미쳤다... 미쳤어... 진짜."

"나 진짜 사기 당한 거 같아!!!!!!"

그리고 정신 놓은 사람처럼 또 웃었다.

"난 내가 실연을 당한 건 줄 알았는데
사기를 당한 거 였어!!!!!!!"

나는 넋이 나간 채로 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재돌샘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쌤은 괜찮아요?"
"나? 나 뭐... 괜찮고 자시고 할게 뭐 있겠어.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진짜,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졌을 뿐이야!"

그리고 재돌샘은
"어, 전화 온다. 친구 전화 받아야 되서
나중에 또 연락할게.
끊을게."
재돌샘이 전화를 끊은 후에야
"....네." 하고 대답이 나왔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숨이 푸욱- 절로 나왔다.

재돌샘이 전화를 끊은 후에도
내 귀에는 '청첩장, 결혼, 사기.....'라는 말이
윙윙 돌았다.
B반 여자 수학선생님의 얼굴과
'청첩장, 결혼, 사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충격이 도통 가시질 않았다.
내가 오히려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_다음편에 계속


@calist님의 아이디어를 빌려왔습니다^^
다음 글의 링크를 달아 둘테니 정주행에 막힘없이 달리세요~

▷▶▷▶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_ 17. 그 여자의 청첩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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