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후로.. 기록영화제작소 보임. 에..
정식으로(?!) 합류. 를 했을 때에는..
이미 구성되어 있던..
다른 스탭 언니들도 있었기에..
나는.. 그냥 기획실 막내. 였는데..
개봉을 하고 나자.. 언니들이.. 하나둘씩..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기 시작. 하더니..
결국에는.. 나만 혼자! 덜렁- 남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졸지에..
프로듀서. 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솔직히.. 프로듀서. 라는 게..
뭐하는 건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건지..
전혀 몰랐기에.. 그저.. 영주 언니가..
시키는 일! 을 하는 게 전부. 였는데..
당시에.. 내가 맡았던.. 가장 큰 일. 은..
스리슬쩍- 나에게로 넘어왔던(?!)..
사무실의 통장. 을 관리하는 일. 이었다.
그래서..
이미 엄청나게 적자가 나버린.. 제작비. 와..
매일, 일을 진행하면서 써야하는.. 진행비. 를..
걱정하면서.. 메꾸어 내느라..
엄청나게 허덕였던.. 기억이 제일 많이 난다. ㅠㅠ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제작비의 운용. 과 관리. 가.. 프로듀서. 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 이기도 했다.)
그런 고로..
처음에.. 나를 유혹(?!) 할 때..
“월급을 많이는 못 줘도..
한 달에 30만원은 주겠다!” 라고..
큰 소리쳤던.. 영주 언니의 약속은..
단 한번도!! 지켜지지 못했고.. 흑흑~
월급. 은 커녕.. 진행비. 까지도..
내가 먼저.. 통장의 잔고를 확인해가며..
걱정을! 해야 했을 정도. 였으니..
당시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월급 얘기는.. 단 한 번도! 꺼내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명색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프로듀서. 가 되었으나..
실상은.. 대학까지 졸업을 하고도.. 오랫동안..
부모님께 기생(?!) 해서.. 용돈을 받아 써야 했고..
심지어.. 때로는.. 부모님께 사기까지(?!) 쳐서..
부족한 진행비를.. 메우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단지.. 내 욕망과 열정을.. 불 사르기 위해..
부모님께는.. 희생(?!) 을 강요. 했던..
무척 아이러니. 했던.. 시절. 이라고 하겠는데..
당시에는.. 그런 부모님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걱정하는 잔소리가 짜증난다. 고 생각했던..
너무나도 철이 없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자식을 둔 게 죄인. 이라고..
애를 태우면서도.. 변함 없이 믿어주고..
속으면서까지(?!) 지원해주셨던.. 부모님께..
이제라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
엄마, 아버지..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