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이어지고 있는 "영어 듣기 실력 향상 프로젝트"! 지난 번에 이어 영어가 잘 안 들리는 이유를 마저 알아보자.

지난 시간에는 단어와 단어가 만났을 때 나타나는 두드러진 발음 현상 네 가지 중 두 가지에 대해 알아봤다. 첫째, 발음하기 편하게 줄어든다. 둘째, 앞 단어의 끝과 뒷 단어의 앞부분이 만나 전혀 다른 새로운 발음이 탄생한다.
이번엔 나머지 두 개의 특징에 대해 파헤쳐보자.
3. 어려운 발음들은 쉬운 발음으로 바뀐다. t와 d가 'ㄴ'이나 'ㄹ'로 바뀌게 된다.
발음하기 어려운 t나 d는 좀더 발음하기 쉬운 'ㄴ'이나 'ㄹ'로 바뀐다. 물론 아무때나 t가 'ㄴ'이나 'ㄹ'로 바뀌는 건 아니다. 이렇게 발음이 바뀌려면 t에 강세가 없어야 한다. 대개는 t 바로 앞 음절에 강한 강세가 온다.
예를 들어 guitar는 아무리 혀를 많이 굴려도 절대로 "기라"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tar에 강세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기타"라고 해줘야 한다. 반면에 잘들 알고 계시는 water는 ter에 강세가 없고 앞부분인 wa에 강세가 있기 때문에 "워러"가 된다.
t가 'ㄹ'로 발음되는 또다른 유명한 예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 "Beat it"을 들 수 있다. '비트 이트' 혹은 '비팉'이라고 하는 대신에 "비 맅~, 비 맅~"하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나 기라~ 잘 치지? 아, 참! 기라~가 아니라 기타!
사실 "워러" 같은 건 워낙 유명한(?) 발음이라 t가 'ㄹ'로 바뀐다는 건 많이들 알고 계실 거다. 그런데 d도 ‘ㄹ’로 바뀌어 발음된다는 건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우리 생각엔 "d를 발음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게 'ㄹ'로 바뀌어?" 하겠지만 d는 우리말 'ㄷ'과는 다른 발음이고, 제대로 발음하려면 조금 어렵긴 하다.
쉽게 단어를 예로 들어 보자. '편지'라는 뜻을 가진 letter는 [레터]라고 발음하기도 하지만 단어 앞에 강세가 있기 때문에 [레러]라고 발음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비슷하게, ‘사다리’라는 뜻의 ladder 역시 [래더]라고 발음하는 대신 [래러]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d 발음이 'ㄹ'로 바뀌는 것이다.
언젠가 한국 코미디언 중에 깐족거리기로 유명한 양세형이 촐싹거리는 춤을 추며 자기 소개(?)를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게 유명한 유행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에브리바디 양세바리 제주도엔 다금바리~”하면서 랩을 하듯 쏟아낸 부분이 있었다. 여기에 나온 everybody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에브리바디]로 발음해야 하지만 d를 'ㄹ'로 바꿔서 [에브리바리]로 발음되기도 하기 때문에, ‘~바리’가 반복되는 저 후렴구가 귀에 착착 감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한 단어 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문장 안에서 두 개의 다른 단어가 연결됐을 때도 일어난다. 설명이 길었다. 예문들을 보고 가자.
I don’t know. [아이 돈트 노우] => [아론/노우]
몰라.You should have accepted that. [유 슈드 해브 엌셉티드 댓] => [유 슈러(ㅂ) 엌쎕틷 댓]
그걸 받아들였어야지.Don't you get it? [돈트 유 겟 잇] => [돈츄 게릿]
모르겠니?
I don't know는 매우 쉬운 문장이라 [아이돈노]로 많이들 알고 계신데, [아론노]로 발음하는 경우도 많다. 두 번째 문장은 어제 @raah 님과 댓글로 얘기하다가 얻은 예문이다. (고맙습니다!) d가 'ㄹ'로 변하기 때문에 [슈드해브]가 [슈러]까지 바뀌게 된다.
마지막 세 번째 문장에서 don't you가 [돈츄]로 발음되는 건 지난 시간에 알려드렸던 2번 특징(앞 단어 끝인 t와 뒷 단어 앞인 y가 만나 'ㅊ'이라는 새로운 발음이 되는 것)이 적용된 것이다.
4. 강세가 없는 부분, 특히 전치사는 흘려서 발음하기 때문에 잘 안 들린다.
영어 단어에서 강세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이미 앞선 글들에서 언급을 한 바 있다. 강세가 있는 부분은 크게 읽고, 강세가 없는 부분은 흘리듯 작게 발음하게 된다. 그런데 똑같은 원칙이 문장에도 적용이 된다. 의미가 있고 중요한 부분은 크게 강조해서 읽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작게, 흘리듯 발음한다. 대개 전치사를 이렇게 흘리듯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링컨의 명연설 중 나오는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처럼 전치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그 부분을 강조해서 읽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전치사의 발음이 잘 안 들린다. ‘커피 한 잔’이라는 의미의 a cup of coffee는 [어 컵 오브 커피]가 아니라 [어 커퍼 커피]로 발음한다. 물론 앞에 나온 '커퍼'의 '퍼'는 p 발음이고, 뒤에 나오는 '커피'의 '피'는 f 발음이라 다르긴 하지만, 여기에서는 Of를 [오브]라고 발음하지 않고 그냥 [어]로만 발음하고 넘어간다는 게 중요하다.
어 컵 오브 커피? No. 어 커퍼 커피!
내가 겪은 한 일화를 알려드리겠다. 미국인과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얘기 끝에 그녀가 앞으로 46주 동안은 몸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을 했었다.
What? Forty-six weeks? 뭐라고? 46주 동안이나? 내가 놀라서 되묻자 그녀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No, four to six weeks! 아니, 4에서 6주 동안!
Forty-six는 [포티 식스]가 아니라 대개 [포리 식스]라고 발음된다. 강세가 없는 t를 제대로 발음하지 않고 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4~6’을 나타내는 four to six를 [포 투 식스]라고 말한 게 아니라 전치사 to를 상당히 굴려서 [포루 식스]라고 말했다. 그러니 순간 내 귀에는 마치 [포리 식스] 즉, 46이라고 들렸던 거다. 전치사는 발음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과 t 발음을 굴린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갑자기 훅 들어온 [포루 식스] 발음은 못 알아들었다. 이래서 듣기 공부는 게을리할 수가 없다.
I go to school. [아이 고 투 스쿨] => [아이 고루 스쿨]
나 학교 다녀.I go to bed at 9. [아이 고 투 베드 앳 나인] => [아이 고루 베뎃 나인]
난 9시에 자.Have a cup of a coffee. [해브 어 컵 오브 어 커피] => [해버 커퍼 커피]
커피 한 잔 마셔.

자, 이쯤 되면 서서히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할 것이다. 도대체 이 많은 법칙과 예외들을 어떻게 다 외운단 말인가? 사실 여기에 적어 놓은 법칙들은 아주 적은 부분이다. 실제로는 더 많은 연음 법칙과 발음 법칙들이 있다. 또한 사람에 따라, 지역에 따라 각각의 법칙이 적용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I want you to go를 [아 원츄루 고]라고 발음할 수도 있고 [아 원/ 유루고]라고 발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시중에는 영어 발음과 듣기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각 상황에 따른 연음 법칙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이런 책들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발음과 듣기에 대한 학원 강좌를 듣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혼자서 공부할 방법을 찾고 있다면, 혹은 책을 공부하고 학원 강좌를 듣고 나서도 더 꾸준히 공부하고 싶다면 나는 ‘받아쓰기’를 권하고 싶다. ‘받아쓰기’야 말로 영어 듣기 실력을 확실히 향상 시켜주는 방법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우리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각각의 연음법칙과 발음 법칙들을 달달달 외워서 그때 그때 적용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실전에 적용하지 않은 채 머리로만 외우게 되면 잊어버리기도 쉽고, 헷갈리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건 원어민처럼 영어를 듣는 절대량이 많아서 자동으로 이런 법칙을 깨우치는 거겠지만, 그건 이번 생에서는 글렀고.(이미 한국에서 태어나 수십년을 살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받아쓰기를 하면 우리의 귀가 영어 듣기에 단련이 되고, 그렇게 익숙해지게 되면 굳이 연음 법칙을 외우지 않아도 듣는 법을 몸으로(귀로) 체득하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받아쓰기를 하면서 아는 단어도 들리지 않는 충격과 경악을 경험하고 나면 그런 단어와 거기에 관련된 발음 법칙은 절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마치 내가 four to six를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해서, 다음 편에서는 ‘받아쓰기’로 듣기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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