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주하는시간, 그림 여행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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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7487361


자신의 호흡을 찾아가는 여행에 관한 책을 사려고 했지, '그림 여행'과 같이 테마나 도구가 정해진 여행책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속초 서점 '완벽한 날들'에서 골라낸 이 책은 펼쳐보니 그림은 그리는 것을 강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속도를 찾고 나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 속에 '그림'을 하나의 태도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왠지 낯설지 않은 그림체와 어휘는 한번쯤은 접해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는데, 그는 '비수기의 전문가들'의 저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더 이상 이 책을 사지 않을 이유를 찾기 못했기에 이 책을 샀다.






작가의 지점


책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두 권의 책을 통해 팬심을 만들어낸 김한민 작가에 대해 아주 잠시 이야기해볼까 한다. '비수기의 전문가들'의 책을 읽을 땐 이 분이 어지러운 한국 사회에서 한발짝 떨어져 리스본에 사는 가난한 철학자나 예술가의 사이 그 어디쯤인 이미지로 여겨졌다. '그림 여행을 권함'에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분의 '업'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일단 소개부터가 독특한데, 덴마크와 스리랑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한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였으며 페루에서 자동차 정비학교 교사로 일했다. 독일에서도 글을 썼고, EBS 세계테마기행의 페루와 에콰도르편을 안내하는 출연자가 되기도 했단다. 도대체 이 공통점 찾기 어려운 일관성없는 삶의 경험은 무엇일까.

작가의 자세한 이력은 앞으로 그가 쓴 글과 기획한 프로젝트를 좀 더 따라가며 덕질을 통해 알아내볼 계획인데, 우선은 '그림 여행을 권함'이란 책에서 발견한 작가의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도 작가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도 작가라는 호칭이 쓰이는 요즘인데, 이 작가의 지점은 그 중간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이 책에서 글이 빠진 그림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그림이 빠진 글도 약간은 허망하다. 글과 그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바람처럼 찰떡으로 흘러간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하여


저자는 카페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호텔 침대맡에서도 그림을 그린다. 거창한 도구가 아닌 가지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가진 노트와 간단한 연필 혹은 펜을 권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림이 전공인 사람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그림을 못그리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권하는 그림의 행위이다. 너무 자세히 그릴 이유도, 너무 공들여 그릴 이유도 없다. 심지어는 지우개로 지울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맘에 안들면 그냥 부-욱하고 찢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럴거면 왜 그리라고 하나.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과물로써의 그림이 아닌, '그 시간'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쓰는 호흡과 속도에 대한 행위의 과정이 여행길에 그림을 통해 마련된다는 것이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른 속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나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통제 아래에 있지 못하는 일상의 속도를 다시 찾기 위해 여행은 지속된다.

하지만, 여행조차 바쁜 우리의 일상을 닮아있기도 하다. 여행을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려는 마음가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과 동행자를 필요로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행에는 정신없이 가속도가 붙게 될 수도 있다. 현실에 동떨어진 낭만성을 회복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바쁜 여행일지라도 구경하고 셀카를 찍는 여정의 틈에 잠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넣어놓자는 태도일 뿐이다.

그 날의 잔상을 나의 낙서로 채워보는 행위를 하루에 한번 혹은 이틀에 한번씩 내킬때 만이라도 해보라는 것이다. 완벽하게 멍때리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산만하지도 않은 '정신과 시간의 방'에 한번쯤은 들어가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서점을 그렸고, 벤치에 앉아 호수를 그렸다. 그림에 애증마저 있는 나는 아주 못생기고 또 못생긴 낙서를 그렸다.






여행의 기록


여행의 기억이 좋기만 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만족감으로 채워진 여행이 완벽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행에서 진땀뺐던 기억, 밍기적댔던 시간들, 무심하게 지나쳤지만 잔상으로 남는 어떤 장면들은 모두 그의 책에서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는 그림과 글을 함께 남겼다. 그 둘의 조합은 어쩌면 사진보다 더 여행을 잘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날의 색감과 풍경은 사진이나 영상 속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겠지만, 그 때의 감정이나 내 머릿속에 떠도는 기억들은 노트에 남는 것과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시간때울때 그리면 좋은 것으로 세가지가 제시된다. 뒷모습, 쓰레기통, 음식. 그렇게 뭐 대단한거 그리는 거라는게 아니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부담을 덜어내라고. 저자가 어머니한테 그림여행을 권했고, 책에는 어머니의 서툴지만 아름다운 그림도 실렸다. 여름에 여행을 앞둔 엄마에게도 넌지시 이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엄마는 너무나도 반갑고 흔쾌하게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싫어하거나 거절할거라고 생각한 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더 많은 책


5/ 그림같은 이상의 글 '권태'
4/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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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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