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벨로타고 제주일주-6 성판악
2018.10.19
긴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하루가 밝았다. 오늘 일정은 서귀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제주 쪽으로 가서 관음사까지 가는 다소 험난한 여정이다. 어제 밤 J가 그건 불가능하다고, 죽어도 자기는 못 갈 것 같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으나 계획을 수정해서 그가 원하는 대로 들어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건 아마 오랜 세월 동안 그로부터 억눌려 찌그러진 자아를 찾기 위한 마지막 발악인지도 모르겠다.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꾸려 가능한 한 빨리 떠나야 했기에 6시경 어제 구입해 둔 컵라면과 순대를 찾고 있는데 J가 약간 비웃는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전거가 펑크가 났다고 했다.


일정수정
예비튜브도 있고 펑크수리용 공구도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펑크 정도에 당황해 할 내가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수리용 공구를 준비하고 자전거를 뒤로 엎었다. 펑크난 곳을 찾던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펑크 정도가 아니라 타이어가 완전히 찢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난 순간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분이 밤새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이 정도로 찢어졌다면 절대 타고 다닐 수조차 없는 상황인데 밤에 멀쩡하게 타고 들어 와서 갑자기 찢어졌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도 없이 그를 몰아세우기도 애매했다. J는 나만 처다 봤다. 모든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불문율이 우리 사이에는 언제부터인가 형성되어 있었다.


근처 자전거샵에 전화를 해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 받지 않았다. 미니벨로에서도 잘 사용하지 않는 18인치라 타이어를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J의 요구대로 일정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관음사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험하기는 해도 경치가 좋다고 했지만 교통편이 없어 할 수없이 성판악 쪽으로 가기로 하고 걸어서 월드컵 경기장 근처에 있는 서귀포 버스터미널로 가서 8시41분발 281번 버스를 타고 성판악으로 갔다.

영실 어리목코스
한라산을 등반하기 위해서는 4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 불리우는 "영실코스"(초급)는 가장 짧은 코스지만 경사가 조금 심하다. 총 길이 5.8km 로 왕복 3시간이면 무난하다. "어리목코스"(중급)는 영실보다 조금 더 어렵고 겨울 한라산의 눈꽃을 보러 오르기에는 최적의 코스이나 백롬담까지 갈 수는 없다. 총 길이 6.9km 로 왕복 4시간 정도 걸린다.
관음사코스
한라산 북쪽코스인 관음사탐방로는 성판악탐방로와 더불어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을 오를 수 있는 8.7㎞의 탐방로이며, 산행거리는 약 18.3km, 8시간 정도 소요된다. 계곡이 깊고 산세가 웅장하며, 해발 고도 차이도 커 한라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관음사 탐방 안내소에 짐을 보관할 수 있는 라커가 있다고 하나 미니벨로가 들어 갈 수 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버스가 없어 택시(15,000원)나 렌터카를 이용해야 한다.
성판악

성판악 코스는 백록담까지 갈 수 있는 가장 긴 등산코스로써 산장이 따로 없어 아침 일찍 갔다 그날 돌아 와야 하기 때문에 12시까지 진달래산장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올라 갈 수 없고 백록담에서는 1시30분전에는 반드시 하산해야 한다. 편도 9.6km 로 왕복 20km 가까이 되며 보통 9시간 정도 걸린다.


9시 20분경에 성판악에 도착했다. 버스 안에서 우린 서로 눈길도 주지 않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무리 허벅지가 뭉치고 힘들어도 자기가 타고 온 자전거 타이어를 찢을 만큼 악랄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어제 밤에 내리막에서 자전거가 너무 떨린다고 했던 것으로 미루어 아마 그 때 이미 찢어졌었는지도 모른다.


버스에 내려 하늘을 보니 너무 맑고 푸른 하늘이 우릴 반가이 맞았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우릴 기쁘게 하는 건 우리자신뿐이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오늘을 망친다는 건 하늘이 우리에게 준 축복을 걷어차는 미련한 행동이다. 계획대로 된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계획이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성판악 휴게소에서 김밥을 두 개 사서 힘차게 백록담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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