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의 외출@jjy
봄빛이 흙빛으로 가득하던 들을 깨우고 있다.
남쪽 지방에서 꽃소식이 들릴 때마다 아직 추운 바람이 불고
꽃이 보이지 않는 우리 동네가 살풍경하게 느껴졌다.
불과 일 주일 남짓 지났을 뿐인데 버드나무가 연둣빛으로
바람을 어르고 어느새 개나리가 뾰족한 부리를 내밀고 연신
뜻 모를 얘기를 하며 말을 걸어온다.
낮에는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없어서 어쩌다 한 번 외출을 하면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새롭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이지만
볼 때마다 처음인 듯 설렌다.
쉬는 날엔 아침부터 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바쁘다.
아침 식사도 대충 빵에 커피 한 잔으로 때우고 외출 준비를
하는데 화장을 하는 중간에 땀이 나서 기다려야 하고 늘 하는
머리손질도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다.
그런 걸 보면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계절은 언제나 실수
없이 때를 맞추고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찾아온다. 언 땅이
아지랑이를 피워 겨우내 굳은 땅을 부드럽게 주무르고 냇물이
빗장을 풀고 앙다물고 있던 입을 연다.
개동백은 개동백꽃을 피우고 냉이는 냉이꽃을 피우고 한 박자
쉴 새도 없이 복숭아나무에도 분홍빛 꽃을 피우며 봄은 또 다시
우리 곁에 발을 붙인다.
다음 주 있을 행사 준비에 쫓겨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아침에
미처 먹지 못하고 냉장고로 들어간 국이며 반찬을 다시 불러내
저녁상을 차리고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일어난다.
지난달부터 미루던 저녁 약속이 잡혀있었다. 같이 운동하는
동생들과 고깃집에서 만나 고기보다 잘 익은 얘기를 한 쌈씩
싸서 잘근잘근 씹으며 거품이 소복이 담긴 맥주잔을 기울인다.
통유리 너머 조명이 예쁜 커피숍에서 하나 같이 캐모마일차를
주문하는데 혼자 유별나게 레몬티를 주문한다. 물론 레몬티가
안 된다는 말에 꽁지를 늘어뜨리고 캐모마일차로 합류한다.
오랜만의 회식이라 입에 당기는 대로 먹고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가 아니라 꺼진 배도 다시 보자는 말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아 각자의 집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서 손을
흔들고 돌아선다.
짧았던 봄날의 외출은 끝나고 나도 무사히 둥지에 안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