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했다. 며칠전에 이문제와 관련해서 @scottbrian 님께서 아래와 같은 포스팅을 올렸다. 상당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한 반응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
[생각]전 비양심적이라 군필한 남자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후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주요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지 않았다. 아마도 이제는 상황이 그렇게 굴러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군대갔다 온사람들은 대부분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비양심적이라서 군대에 가서 개고생을 했느냐 하는 것이다. @scottbrian님이 포스팅에서 제기한 것 처럼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에서 양심적이라는 수식부분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종교적 교리에 입각해서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것이지 양심적이어서 군대에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며칠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이리 저리 생각을 해보았다. 저는 양심적이니 비양심적이니 하는 말이 문제의 본질을 흐트리게 했다고 생각한다. 비양심적이라서 군대에 가고 양심적이라서 군대에 가고 하는 말은 감정을 자극하는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데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듯하다.
헌법 제19조의 양심에 대한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이다. 결국 여기서 양심의 자유가 무엇이냐에 대한 해석의 문제일텐데 헌법재판소는 병역을 거부할 양심을 인정해 준것이다. 모든 판결이 그렇듯이 다양한 입장과 주장이 가능하다.
저는 문제의 핵심을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란 개인의 소신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했을때 우리사회는 개인의 소신에 손을 들어 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결정을 하던 세상이 결단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관용도가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 세상 나쁜 것만 보고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주장까지도 마음대로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다. 사회의 관용도가 넓어지면 역동성도 동시에 늘어난다. 안그래도 꽉막힌 우리나라 사회에 무엇인가 변화를 위한 물꼬를 터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젊은 남성들이 폭증할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럴 수도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만일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고 하는 젊은 남성들이 폭증하면 그에 따른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 그런데 그정도까지 될까 ? 우리나라 사람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빙자해서 자신의 양심을 헐값에 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런 판단에 앞서 국민이 져야하는 병역의 의무가 어떤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원래 서양에서는 모든 국민이 군대를 가지 않았다. 그리스 시대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소수의 제한된 시민만이 군대에 갈 수 있었다. 자신의 것은 자신이 지켜야한다는 원칙이었다. 그 이후 점차 용병이 운용되었다. 군대라는 것은 돈을 받고 운용하는 사업과 같았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의 숫한 많은 전투는 모두 용병들에 의해서 치루어졌다.
전문직업군인인 용병에서 국민개병시대로 넘어온 것은 프랑스 혁명 때였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군대도 사라졌다. 돈을 안주는 국가를 위해서 전쟁을 해주는 용병은 없다. 오스트리아에서 군대를 보내서 프랑스 혁명을 토벌하려고 했다. 프랑스인들은 혁명을 지키기 위해서 모두 같이 모여 군대를 만들었다. 오합지졸이었으니 당연히 연전연패였다. 그러다가 파리 북방지역인 발미지역에서 기적과 같이 프랑스 인민군대가 전문직업군인 오스트리아군의 공격을 물리쳤다.
이후 국민개병제는 국민국가의 상징이 되었다. 국민국가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최우선의 의무이자 권리가 군대복무하는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아직까지도 그런 의식이 강하다. 일부국가에서는 전문직업군으로 전환하기도 했지만 또 일부국가에서는 시민적 권리이자 의무로 병역의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민적 권리이자 의무인 병역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군대를 좋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별로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나는 군대에 가는데 너는 왜 안가 ? 라는 상대적 박탈감의 표현인 경우가 많다. 너는 왜 시민적 권리를 누리면서 의무는 행사하지 않으려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별로 제기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 우리의 경우 군복무라는 것이 그냥 귀찮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 스스로 국가를 만든 것이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 경험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도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 전쟁을 치루었다. 한국전쟁은 미국이 주도해서 치룬 전쟁이지 우리가 주도한 전쟁이 아니다. 한국전쟁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준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었다.
우리가 병역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주인으로서 국가를 지켜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보다는 어찌하면 피해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병역을 거추장스런 부담으로 생각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재벌들이었다.
국가를 유지함으로써 가장 이익을 보는 집단은 재벌이다. 그런데 그들 자녀중에서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이 얼마나있는지 한번보라.
현재 재벌 회장들중에서 군대에 제대로 갔다 온사람들이 몇명이나 되나 ?
심지어 국방부 민간 공무원 중에서 군대에 갔다 온 사람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로부터 그리 큰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군복무가 어떻게 신성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 이미 우리 사회의 귀족들은 오래전부터 군대에 가지 않았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귀족들의 병역회피에 비하면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그들은 귀족적 권리를 향유하면서 시민적 의무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병역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재벌들이 군복무를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받아 들인 것은 그들이 쌓은 부가 정당한 노력의 댓가라서 내가 피를 흘려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희박하기 때문이 아닐까 ? 그들은 온갖 편법과 특혜로 부를 쌓았다. 기회주의적으로 부를 일군 사람들에게 병역이란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지배층들이 왜 군복무를 가치있게 생각하는가를 한번 보면 우리나라의 재벌들과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이미 내려졌다. 다시 바뀔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은 대체복무를 힘들게 해서 군대에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생각이 좀 다르다. 군대에 복무하는 것을 자랑스럽고 보람있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간부들이 병사들을 마치 종놈 대하듯이 하고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으로 아는 상황이라면 보람차고 자랑스런 군대복무란 요원하다.
군대내에서 복지를 대폭 향상시키고 군복무한 사람들에게는 인센티브도 주어야 한다. 당연한 것 아닌가 ? 그리고 여자들도 군대에 가야한다.
모든 국민들이 병역의무를 져야 하는 것 아닌가 ? 북구라파 어느나라에서는 여자들도 군대에 가더라. 여성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