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 시리즈 (혹시 이전 것들 궁금하실까봐^^ 링크포함 합니당)
- 1탄 "소금"
@soosoo/1 - 2탄 "차음료"
@soosoo/2 - 3탄 "뱅쇼를 샹그리아로 만들기-죽어가는 와인 부활시키기"
@soosoo/3-or-rebirth-bed-wine
머리를 무겁게 타고난 건 딱 두 가지 이유라죠. "머리에 든게 많거나, 그 든게 ㄸ이거나"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은 머리가 정말 무거워서인지는 모르지만 2년 쯤 베고 난 베개가 종이짝같이 얇아져 버렸습니다. (보여드리고 싶지만 뭐 모르는 사람이 베던 지저분 한 베개가 그렇게 매력적일 것 같지는 않아서^^)
배개를 사러 갔습니다. 방콕의 동쪽 공항가는 길에 큰 이케아가 몇 해전 들어섰습니다. 뭔가 풍성하면서 미끈거리는 느낌이 드는 건 틀림없이 나일론이 잔뜩 들어있을 것 같습니다. 좀 빵빵하면서 좋아보이는 속은 거위털인지 오리털로 된 배개입니다. 전에 한 번 써 봤는데, 가끔 털이 찌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털을 모을 때 잔인한 방법으로 오리나 거위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안쓰기로 해서 역시 패스합니다.
시내 여기 저기 있는 무인양품이란 일본 가게에 갑니다. 아무도 안믿지만 심플한 걸 점점 좋아하게 된 제 취향의 물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좀 비쌉니다. 순간 제 베개는 누가 사다놨을까? 그 속엔 어떤 솜이 들어있을까 궁금해 졌습니다. 집으로 빨리 돌아왔습니다.
베개속은 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칼집을 내고 뜯어봅니다. 작년에 너무 더러워진 배갯속을 깨끗하게 해보겠다고 통째로 빤 덕분에 한 층 더 몰린 솜뭉치가 불규칙하게 뭉쳐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나일론 속이 아닙니다. 목화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근데, 어쨌든 좋은 솜입니다.

그래서 솜을 타기로 합니다. 솜타기 아시죠? 뭉친 솜을 다 뜯어서 잘 분배하는 작업이요 '트다'가 맞는지 '타다'가 맞는지는 아시는 분이 좀 알려주세요^^ 앉아서 티비를 틉니다. (티비는 '튼다'입니다. '탄다' 아니죠^^ 죄송합니다) 큰 스킬은 필요없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최대한 많이 분해를 시키면 됩니다. 손으로 뜯었습니다. 솜사탕 같습니다. 손가락도 좀 아프고 생각보다 시간도 좀 걸립니다만 타고 보니 솜이 매우 하얗고 깨끗합니다. 다 뜯어서 쌓아두니까 배개 크기의 약 3-4배의 대단한 분량이 나옵니다. 나중에 저게 다시 다 베개에 들어갈 까 걱정이 됩니다.

실처럼 뭉쳐진 몇 가닥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저거 다 타다가는 손가락 나갑니다.

배갯속을 빨아서 말리고, 뽀송뽀송해진 배갯속을 채웁니다. 칼로 찢어서 빼낸 것이니 귀찮아도 실로 꿰메주어야 합니다.

역시 뽀송뽀송 통통하고 편안한 베개가 되었습니다. 햇볕에 말려서 몇 대 툭툭 쳐주기만 하면 이제 한동안은 매일 새 베개를 벨 수 있을 겁니다. (하루 자 보니까 역시 잠이 잘 옵니다.)
버리기도 애매한데 솜이 괜찮다면 한 번 솜타기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살림살이 포스팅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