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essay] 레이소다

한 때 사진을 조금 찍는다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레이소다(raysoda)라는 사이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에도 명목이야 유지되고는 있지만, 십 여 년 전 변변치 않은 커뮤니케이션 채널만 난무하던 때에 자신의 사진을 전시하고 평을 얻으며 추천을 받아 대문에 올라가는 것 -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인정받는 것 - 은 사진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바라던 일이었다. 아마추어들은 프로가 되기를 꿈꿨고 그 곳은 새로운 등용문이었다. 1면을 장식함으로써 얻게되는 쾌감은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리라. 사진은 각자의 삶의 한 단면을 담았기 때문에, 쾌감은 결국 자신의 시선과 삶의 궤적이 틀리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었을 거다.

레이소다는 각자 취향에 맞게 아무 사진이나 올릴 수 있었다. 아이디를 클릭하면 어떤 사람이 레이소다에 가입해서 그동안 올렸던 모든 사진들을 게시판 형태로 볼 수 있었다. 박리다매는 사실 잘 통하지 않았다. 사진은 매일 무수히 올라오기 때문에 적당한 퀄리티의 사진을 여러번 올린다고 1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 장의 사진이라도 무한한 정성과 노력이 담겼다면 환영할만 했다. 필름이거나 디지털의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레이소다를 활용하는 방식은 사용자마다 다양했지만, 대체로 일반적인 방식을 택했다. 조금 더 정성들여 찍고 그 중에서 괜찮은 사진을 올리는 것이었다. 사진에 대한 평은 댓글로, 사진에 대한 반응은 조회수와 추천수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잘 찍는다 싶은 사람들은 유명세를 탔고 현실 세계에서도 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애초에 직업까지 바꾸어가며 취미를 할 생각은 없었기에, 사진을 감상하고 나누고 즐기면 그 뿐이었다.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을 걸 알았기에 오히려 자유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사이트를 둘러보다보면 좋은 장비가 탐이 나기도 했다. 좋은 장비를 쓴다면 세계를 조금 더 또렷하고 깊게 담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므로. 사실 레이소다가 처음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당시 생애 최초로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샀기 때문이었다. 내 품에 처음 들어왔던 것은 Nikon 의 중고 D100 이었다. 그 전에는 똑딱이 카메라를 썼을 뿐이었다. 보통 사진을 제대로 시작한다고 하면 모든 것들을 수동으로 설정할 수 있는, 아니 설정해야만 하는 FM2 같은 류의 카메라를 추천해주곤 했지만, 그 때쯤 부터 시대가 바뀌었다. 현상과 필름 스캔의 반복적인 작업을 하기보다는 간편하게 LCD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조리개, 노출, 심도와 같은 변수들은 반복가능하며 재현 가능한 것이 되었고, 사진을 배운다는 것은 무한한 실험을 반복하는 것과 비슷했다. 셔터 박스가 나가지 않는 한, 피드백은 가볍거나 무겁거나 별 반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Sigma 28-70 mm 같은 렌즈를 가지고는, 적절한 빛을 담는 것에 대한 무거움을 물리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의 그라데이션을 담고 싶다면 편광 필터를 쓰고 이리저리 돌려야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이 순간은 무조건 지나갈 것이기에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무겁고 부피가 클수록 사진은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시선을 담는 과정이 번거롭고 귀찮을수록 포착된 장면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바람이 있었다. 모든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결국 어떤 과정이 녹아들었건 돌아보지 않게 되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불편하고 느릿한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존재할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안락할수록, 편할수록 언제나 그것들은 나와 멀찌감치 떨어진 채 생각의 수면 아래에 잠겨있다. 아마 당분간 레이소다에 올렸던 작업들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H2
H3
H4
Upload from PC
Video gallery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2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