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쓰는 비법은 없다 - 김중혁, 《무엇이든 쓰게 된다》

김중혁 작가를 처음 알게된 것은 그의 소설을 통해서가 아니라 방송을 통해서입니다. 그는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가 진행하는 <영화당>이라는 방송에서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작가로 출연하는데, 초반에는 좀 어색한 느낌이었지만, 방송에 잘 적응하면서 발전하여 보면 볼수록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김중혁 작가는 이런 형태로 첫인상을 남기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의 외도(?)라고 오해할 수 있는 다방면의 활동은 작가적 면모를 과소평가하게 할지도 모르지만 저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그는 예술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팔방미인인거죠.

꾸준하게 글을 쓰는 것이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는데, 그의 글쓰기에 대한 책,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에는 건조하디 건조한 의학논문을 작성하게될 운명이긴 하지만 내 생각을 되새김질하는 글쓰기에 조금은 도움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죠.

근데 이 분, 책의 초반부에 자신이 선호하는 필기구와 문구,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림도 귀엽고 나름 옛날 생각도 나긴 하지만 '소설가 김중혁은 맥북과 율리시스라는 앱을 쓰고, 에버노트를 잘 활용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책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조금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그가 내놓은 가벼운 디저트였음을 알게 되긴 했지만요.

전채요리 다음에 주요리로서 창작에 대한 그의 생각이 차려집니다. 읽기, 첫 문장 쓰기, 문체, 글쓰기의 의미에 관한 내용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작과 끝을 경험하는 일이다. 글의 시작이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고, 글의 끝까지 달려가본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게 된다. 글쓰기 경험은 삶의 경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나인지 알 수 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 p. 82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분리시키고 싸우게 만들고 대화하게 만들고 중재해야 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두 개의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문장이 한 사람의 목소리로 적어가는 것이라면, 문단은 두개의 마음이 함께 써내려 가는 것이다. - p. 86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위해서 대화를 상상해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챕터에 후식으로 실제 문학작품에서 대화문을 발췌해서 문제와 자신만의 해설을 첨부합니다. 물론 우리가 수능 언어 영역에서 접했던 그런 글과 해석은 아니죠. '참신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읽고 풀어 보았으나 다 틀렸죠. 네, 저는 재능이 없나봅니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충고를 한데 끌어모았을 때, 그 교집합이 최고의 비법일까. '열심히 쓴다', '꾸준히 쓴다' 정도만 교집합에 남아 있겠지. 충고 따위 무시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해설을 보지 않고 문제집을 풀 때처럼, 작가들의 충고는 모두 잊고 혼자서 밤을 꼬박 지새우며 글을 쓰다보면 저절로 작은 깨달음이 올 때가 있다. 자기만의 공식이 하나씩 생겨나고, 작가들의 충고가 무슨 말인지 몸으로 알게 되는 때가 온다. 그 사소한 깨달음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p. 132

이 책을 읽고 나서 글쓰기의 비법을 알게되고 실용적인 도움을 받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대신 글쓰기를 시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가벼운 용기를 주는 그런 책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히' 인 것 같습니다. 창작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는 것. 그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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