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색깔을 띠고 세상을 헤엄치는가" - 르 클레지오 《황금물고기》


세계문학전집. 아, 집에 많이 꽃혀있지만 막상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존재입니다. 제목과 작가는 알지만 내용은 잘 모르는, 먼지가 쌓여가고 있는 책을 보면 다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최근에 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세계문학전집에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이 '고전을 읽자!'라는 목표를 갖고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을 보고 책을 선택하기로 하였고, 김연수 작가가 쓴 감상문에 모두 반하여 J.M.G 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를 읽기로 하였습니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

묵직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황금물고기》는 일곱살에 유괴를 당한 흑인 여주인공 라일라의 일생을 그렸습니다. '밤'이라는 뜻의 라일라란 이름처럼 그녀의 일생은 어둡고 험난하기만 하죠. 처음으로 믿고 의지했던 주인 아스마의 사후 세상을 표류하게 된 라일라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처음에는 호의를 베풀었지만, 결국 그녀를 이용하거나 범하려고 하였죠. 특히나 가난한 흑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폭력과 유린은 언제나 그녀를 따라다녔습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를 그물로 잡으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끈끈이에 들러붙게 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감상과 그들 자신의 약점으로 내게 덫을 놓았다.

결국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왜 이 책의 제목은 '황금 물고기'일까요.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신의 눈에는 보석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하고, 그들에게 실망한 라일라 앞에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 엘 하즈 할아버지가 나타나 이렇게 이야기하죠. 저는 이 문장이 이 작품을 대변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1997년, 지금부터 20년 전에 쓰여진 이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은 흑인, 여성, 가난에 대한 사회적 메세지를 담은 것으로 혹은 개인의 자아탐구,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개인적 경험에 의해 사람마다 다르게 와 닿는 작품이라는 것에 모임식구들이 동의하였죠.

고전이나 문학전집을 읽다보면 구체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글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어 그 고됨을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그런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진 않지만 아름다운 문장과 깨달음으로 다시 한번 손에 잡게 되는 작품. 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가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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