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까지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책을 끼고 살다보면 주변에서 "좋은 책이 있으면 소개 좀 해줘." 라는 부탁을 듣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저에게 있어 책을 추천하는 일은 소개팅 상대를 구해주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그렇게까지 큰 기대를 하고 책을 추천해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요.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상이합니다. 살아온 환경과 사고방식의 다름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고, 그렇기에 나에게는 좋은 책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그런 책이 될수도, 혹은 최악의 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직장 상사가 책을 선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사의 의도는 '좋은 책이니까, 너도 한번 읽어봐!' 겠지만, 선물 받은 직원의 입장에서 그 책이 재미가 없으면 그렇게 난감할 수가 없습니다. 상사가 책에 대해서 물어봤을때, "아 재미없어서 그만 봤어요~" 라고 쿨하게 대답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렇게 볼 때,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지 않은 이상 책을 추천하고 선물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잘 모르는 다수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기회가 온다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꼭 한번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좋은 책이라면 엄청난 서사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줄거리는 생각보다 단촐합니다. 전쟁 후 자신의 부모, 나이도 모르는 모모라는 아이가 유태인 창녀인 로자 아주머니에게 맡겨져 빈민가에서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죠. 근데, 때묻지 않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각에 뜨끔할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내 생각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은 매사 걱정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좋은 부모와 환경 속에서,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빈민가에서 살아갑니다. 후자에 속하는,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모모가 로자 아주머니를 통해 생의 의미를 깨닫는 모습은 전자에 속하는, 나 자신에게 좋은 인생을 살고 있는지 묻게 합니다.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할아버지는 대답하는 대신 몸에 좋은 박하차만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어떤 좋은 책은 천년도 더 산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어떤 좋은 책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떠올릴 수 있게 해주며 그 모든 좋은 책들은 아무리 늙었다 하더라도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 조경란
이 책은 저에게 '그 어떤 좋은 책' 입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에게도 '좋은 책'이 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