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올림 (‘희망’에 관한 짧은 생각)

맘‘충’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곤 좀 충격 받았었다.

왠지 순수한 척 하는 것 같아서 속마음을 말하기가 좀 망설여지지만 그냥..(질러버리자..)
저 ‘충’자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충虫이 맞는건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실제로 그 정확한 뜻을 검색도 해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실제로 나를 (정말 그 단어 뜻대로 내가 엄마의 모습일 때) 충虫처럼 (벌레를 보듯이 혐오스럽게) 보는 눈빛을 세번 목격했기에 (온라인에서 한번, 오프라인에서 두번) 나도 정말로 소위 말하는 맘虫인지도 모르겠다.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온라인에서는 엄마들 카페에 아기 대변을 멋모르고 매너 사진 없이 그대로 올렸다가 봉변을 당했고 오프라인에서는 한국에서는 샌드위치를 사러 갔다가 돌쟁이 아기가 갑자기 우는 바람에, 또 홍콩에서는 감기가 걸린 돌쟁이 아기에게 숨도 못 쉬게 마스크를 씌웠다는 이유로 말 그대로 벌레를 보는 듯한, 나를 혐오스럽게 보는 눈빛을 목격한 적이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또 국내와 국외에서 모두 虫으로 인정받은 나는 정말 인터내셔널 민폐 캐릭터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누군가를 당당하게 ‘벌레’로 이름 지을 정도로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혐오하고 세상에 분노하게 되었을까.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은 것을 안다. 여전히 부족한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으며 (그것이 나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간에) 우리는 그런 눈빛에 기대어 또 하루를 힘내어 살아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이 작년이었나요 재작년이었나요’ 라고 물었다는 것을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그 책에서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란 책이다.)이런 박 전 대통령의 이상하게 보이는 비정상적인 발언에 대해서 자기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청와대에서 살았고 이른 나이에 부모 모두를 잃었다. 한 전문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트라우마가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라고 말하며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런 발언은 트라우마에 대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설명했다.

자기 방어기제라…

가끔 내 자신이, 혹은 다른 사람이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평소엔 안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뜬금없는 상황에서 버럭한다던가, 나는 정말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타인이 나를 향해 갑자기 울컥하며 분노를 쏟아내는 경우 말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 경우를 당하기도, 또 직접 타인에게 이런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세돌 된 딸에게 영어를 읽혀주다가 딸이 귀찮은 듯이 ‘하.지.마’ 라는 단 세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딸에게 “그래! 안해! 엄마 너랑 안 놀거야. 앞으로 너 혼자 놀아!” 하고 소리치며(절규하며) 돌쟁이 아들을 데리고 휙 하고 방에 들어갔었다..ㅡ_ㅡ;;

엄마의 반응에 황당했을 나의 천사는 상처 받은 영혼(엄마)을 달래주기 위해 엄마가 팽개쳐버린 영어책을 들고 (영어단어를 가리키며 천진난만하게) “엄마 이거 뭐야? 했지만 상처 받은 영혼은 끝까지 그 천사 같은 눈빛을 외면하며 “너가 하지 말라고 했지? 왜 하지말라고 했어! 너가 하지말라고 해서 안 하는거야! 가! 너 혼자 놀아!!” 하며 계속 절규했다…ㅡ-ㅡ;;;

나는 절규하며(엄마와 화해하려는 딸을 거부하며) 속으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내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고 그저 못난 나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딸은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주지 않는 못난 엄마 때문에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나중에 “왜 같이 놀아..?” 라는 말을 했는데 사실 이 말은 정황상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엄마가 절규하며(소리치며) “너랑 안 놀아! 앞으로 너 혼자 놀아!” 라고 했으면 앞뒤 문맥상 “왜 나랑 안 놀아?” 라고 물어봐야 말이 맞는데 뜬금없이 “왜 같이 놀아..?” 라니… 나는 그 말을 듣고 “응? 왜 같이 노냐고? (갑자기 어리둥절해 하며)” 하고 딸한테 물어봤고 딸은 몇번이나 “왜 같이 놀아..?” 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암튼 박 전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발언과 세살 먹은 아기의 별 생각 없는 말을 나란히 비교하는 것도 좀 웃기긴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언뜻 보기에 뭔가 앞뒤가 안 맞고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의 언행은 혹시 대부분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순간적으로 평소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가 혼자 추측해본다.

나는 언제나 바쁘셨던 엄마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라는 환경으로 인해 (아빠는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되어 헤어지셨다가 내가 사춘기 즈음에 다시 합치셨음) 아기 때부터 친척 집에 맡겨져 키워진 적이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내가 기억나는 유년 시절은 혼자 있었거나 아니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이런 회색빛 기억밖에 없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거부 당하고 버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

세살 먹은 아기가 ‘하.지.마’ 라는 말을 무심코 던진 말에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일까. 그것은 바로 나의 두려움일까.. 또 다시 나는 버림 받을 것이라는.. 나는 결국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이고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세상의 모든 악은 어쩌면 모두 사람들의 깊은 곳에 숨겨진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어쩌면 아마도 ‘사랑받고 싶으나 사랑받지 못하는’ (정말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오해하는) 두려움이 가장 크지 않을까 또 생각해본다.

나에게 내재된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일까.
또 그 두려움을 나는 어떤 식으로 이겨내고 있는가.
혹시 나는 그 두려움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그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두려움 자체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에 더 사랑받지 못할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암튼 지구상에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살아야 하는 운명을 져야만 하는 사이로서 서로가 서로를 벌레로 부르며 미워하고 죽이는 (실제로든, 아니면 마음 속으로든) 일은 점점 사라졌으면 좋겠다.

우리 안에 사랑이 가득 차올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이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불가능한 것을 꿈꾸기에, 그 희망으로 또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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