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Q&A] 내가 개발한 S/W의 저작권은 누구에게로?


01.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알아두면 쓸모있는 법률상식을 모아 풀어드리는 로맨스입니다. 오늘은 [법률리뷰] 블로거 필독서 Vol 01. "저작권" 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주제 중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저작권 이슈를 다루어보려 합니다. 


  블로거 필독서 1편을 마치면서 생각보다 빠진 부분이 많아 결론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빠진 내용은 스티미언 분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채워 넣겠다는 얄팍한 수작을 부렸습니다. @yoon님, @bree1042님 등 많은 분께서 촌철살인의 질문을 해주신 덕분에 비로소 블로거 필독서 1편의 구멍들이 조금씩 메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질문 부탁합니다. 


  오늘의 포스팅은 @dgluna님께서 올려주신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댓글을 달지 않고 굳이 포스팅한 이유는 답변의 분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 답변이 스팀잇에서 활동하는 많은 S/W 개발자분들에게 유용한 상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질문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질문 내용을 보았을 때는 뚝배기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얕은 지식으로 저작권에 대해서 아는 척 했지만, 정작 실무에서 무엇이 문제 되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고 있었구나. 프로그램 개발자로서는 개발자가 개발한 S/W의 저작권이 개발자의 것인지 소속 회사의 것인지, S/W 개발을 발주한 업체가 저작권을 갖는 것인지 아니면 개발한 업체가 저작권을 갖는 것인지, S/W의 유지보수를 위해 발주 업체가 S/W의 소스코드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관심사일 겁니다. 


  @dgluna님의 질문에 덧붙여 S/W 개발을 둘러싼 저작권 이슈들을 차례대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02. 개발자 vs 회사


  • 어떤 상황이 문제인가?



  김 대리는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A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품질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김 대리, 드디어 기존의 소프트웨어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기능을 장착한  '패션 X'라는 이름의 디자인 소프트웨어 개발에 성공합니다. A사에서는 김 대리의 노력과 능력을 인정하며 승진과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김 대리에게는 큰 꿈이 있었습니다. 1인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A사의 제안을 과감히 뿌리치고 퇴사를 선택한 김 대리는 나 홀로 B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김 대리는 '패션 X'의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패션 X'와 거의 동일한 '패션 Y'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를 출시하였고, 패션 Y는 업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행복한 순간도 잠시, 김 대리에게 청천벽력 같은 편지가 날아옵니다. 그것은 A사에서 B사의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패션 Y'의 사용금지와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내용의 소장이었습니다. 김 대리는 자신이 개발한 소스코드로 패션 Y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왜 A사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김 대리는 소송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김 대리는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 개발자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은 누구의 것인가?


  컴퓨터 프로그램 또한 특정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컴퓨터 내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사용되는 일련의 지시ㆍ명령으로 표현된 창작물에 해당하므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입니다.(저작권법 제2조 제16호) 저작물이 만들어진 시점에 저작자가 당연히 저작권을 취득한다는 저작권법의 원칙대로라면 김 대리는 자신이 개발한 '패션 X'의 저작권자가 됩니다. 김 대리가 애초에 혼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프로그램을 개발할 당시 A사에 소속되어있었다는 점이 뭔가 찝찝합니다. 관련 규정을 한번 살펴봐야겠습니다. 


 제9조(업무상저작물의 저작자) 법인등의 명의로 공표되는 업무상저작물의 저작자는 계약 또는 근무규칙 등에 다른 정함이 없는 때에는 그 법인등이 된다. 다만,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이하 "프로그램"이라 한다)의 경우 공표될 것을 요하지 아니한다. 


  저작권법 제9조에 따르면, 저작자가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 근무하면서 회사가 기획한 대로 저작물을 창작(이를 '업무상저작물'이라 합니다)하였고, 그 저작물이 회사의 이름으로 시중에 공개 또는 발행(이를 '공표'라 합니다)되었다면, 그 저작물의 저작권은 회사의 것입니다. 특히 회사에 소속된 사원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한 경우에는 회사의 이름으로 시중에 공개되었는지와 관계없이 그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은 당연히 회사의 것이 됩니다. 김 대리도 패션 X를 개발할 당시 A사에 소속되어있었으므로 패션 X의 저작권은 해당 프로그램이 개발되었을 시점에 바로 A사가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김 대리는 패션 Y를 더는 사용할 수 없으며, A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주어야 합니다. 


  김 대리,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요? 김 대리가 회사와의 저작권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첫째,  A사에 입사하면서 근로계약을 작성할 때 특별한 조항("김 대리의 입사 후 김 대리가 개발하는 모든 프로그램의 저작권은 김 대리에게 귀속한다"와 같은 조항)을 삽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프로그램 개발 전후로 A사와 저작권 귀속에 관한 별도의 합의를 할 수도 있습니다. 회사와 합의한 내용을 계약서의 형태로 작성해두면 저작권법의 규정보다 회사와의 합의가 우선합니다.


  개발자에게 매우 불리한 조항이기는 하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개발자의 능력만 믿고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한 것이므로 그 결과물인 저작권을 회사의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거나 저작권의 귀속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당사자 간의 '계약',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03. 발주업체 vs 개발업체


  • 어떤 상황이 문제일까?


  창고 관리 프로그램으로 재고를 관리하던 A사는 더욱 효율적인 재고 관리를 위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B에게 새로운 창고 관리 프로그램의 개발을 의뢰했습니다. B사는 A사가 원하는 대로 혁신적인 기능을 갖춘 새로운 창고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내었고, A사는 보다 효율적으로 재고를 관리할 수 있게 되어 큰 매출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발에 따른 보수를 지급한 A사는 다짜고짜 B사에게 해당 프로그램의 저작권이 A사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요구대로 소스코드를 넘기지 않으면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B사의 입장에서는 B사의 노하우와 숙련된 기술이 축적되어있는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절대로 A사에게 넘길 수 없었습니다.  


  한편, 프로그램을 유지 보수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자 A사는 창고 관리 프로그램의 소스코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A사와 앞으로 지속적인 거래를 해야하는 B사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B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의뢰받아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은 누구에게로?


  "업무상 창작한 프로그램의 저작자에 관한 구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1994. 1. 5. 법률 제471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조의 규정은 프로그램 제작에 관한 도급계약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 (대법원 2000. 11. 10. 선고 98다60590 판결)


  앞서 살펴본 '개발자 vs 회사' 편에서 개발자가 회사에 소속되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한 경우 그 프로그램의 저작권은 회사에 귀속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법원은 이와 같은 논리가 원칙적으로 업체와 업체 사이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즉, 발주업체로부터 의뢰받아 제작한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은 이를 만든 개발사(즉, 저작자)에게 있는 것이지 프로그램 개발의 대가를 발주업체가 지불한다고 해서 소프트웨어의 저작권까지 발주업체에게로 이전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단, 이 경우에도 발주업체와 개발업체 사이에 작성된 계약서에 "이 프로그램의 저작권은 발주업체에게로 이전된다", "이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는 발주업체의 소유로 한다"는 등의 특별한 합의가 명시된 경우에는 무조건 계약 내용에 따릅니다. 위에서 언급한 법원의 판단은 당사자 간에 합의를 미리 해놓지 않은 경우를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특별한 합의 또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창고 관리 프로그램의 저작권은 B사에게 있으므로 A사는 B사에게 해당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가 원칙입니다. 이제부터는 A사가 B사에게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문자가 전적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기획을 하고 자금을 투자하면서 개발업자의 인력만을 빌어 그에게 개발을 위탁하고 이를 위탁받은 개발업자는 당해 프로그램을 오로지 주문자만을 위해서 개발·납품하여 결국 주문자의 명의로 공표하는 것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는 법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창작한 프로그램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 같은 법 제7조를 준용하여 주문자를 프로그램저작자로 볼 수 있다.(출처 : 대법원 2000. 11. 10. 선고 98다60590 판결)


  만약, A사가 전적으로 창고 관리 프로그램을 기획 또는 설계하고 자금을 투자하면서 B사의 인력만 끌어다 썼고,  개발한 프로그램을 B사가 오직 A사에만 납품한 경우에는 '회사-사원'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발주업체를 해당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자로 볼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라면, A사는 창고 관리 프로그램의 저작권자로서 B사에 소스코드를 이전하라는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단, (끊임없이 강조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당사자 간 '합의', '계약'이 무조건 우선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저작권(또는 소스코드)은 어떠한 경우에도 B사에게 귀속한다"라는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되어있다면 법원의 판단을 살펴볼 필요도 없이 계약 내용대로 프로그램의 저작권은 B사에게 당연히 귀속합니다. 


  • 당사자 간 계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앞에서부터 계속 강조했던 내용이 바로 '당사자 간 계약 또는 합의'입니다. 저작권 분쟁과 관련한 모든 법원의 판단은 당사자 간에 합의가 없는 경우를 전제로 합니다. 당사자 간 합의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계약서를 보고 알 수 있다면, 분쟁은 그 내용에 따라 해결하면 됩니다. 


  그런데 당사자 간에 저작권의 귀속에 관한 합의를 하였으나 그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문제 됩니다. 계약서의 특정 조항이 저작권을 발주업체에 통째로 넘기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만을 허락한 것인지 불분명 할 때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살펴보겠습니다.  


저작권에 관한 계약을 해석함에 있어 과연 그것이 저작권 양도계약인지 이용허락계약인지는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 저작권 양도 또는 이용허락되었음이 외부적으로 표현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저작자에게 권리가 유보된 것으로 유리하게 추정함이 상당하며, 계약내용이 불분명한 경우 구체적인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 거래관행이나 당사자의 지식, 행동 등을 종합하여 해석함이 상당하다.(대법원 1996. 7. 30. 선고 95다29130 판결)


  쉽게 말해, 계약 내용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저작권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는 내용입니다. 저작권을 발주업체에게 통째로 넘기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만을 허락한 것인지가 불분명 할 때에는 후자로 해석하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의 유지보수를 위해 발주자가 프로그램의 소스코드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면 (원칙적으로)저작권자인 개발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소스코드에 접근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 가장 좋은 분쟁해결방법


  첫째, 계약서를 꼼꼼하게 작성하라, 둘째, 계약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라, 셋째, 계약서를 명확하게 작성하라.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 도급계약에 따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전에 미리 저작권의 귀속, 소스코드의 사용 가능 여부, 유지보수 시 소스코드 접근 가능 여부 등 분쟁의 소지가 있는 모든 사안을 검토하여 계약서를 작성해두면, 나중에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05. 나오며 


  한 평생 외도없이 문돌이로 살아 온 제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질문과 관련한 자료를 정리해보았습니다. 혹시 용어 중 틀린 부분이 있거나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질문하셔도 좋습니다. 지적과 질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덧붙여, 좋은 질문으로 답글을 달아주신 @dgluna님께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W 개발자님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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