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3의 어느 날, 그 날은 늦봄이었던 것도 같고, 초여름이었던 같기도 하다. 하루 종일 문장 하나에 꽂혀 있었다. 그 문장은 물속에 들어갔던 부표처럼 내 마음에 불쑥 솟아올랐다. 특별한 문장도 아니었다.
“잔뜩 찌푸린 하늘, 곧 비가 오려나보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문장이었다. 나는 때때로 우연히 마음에 떠오른 어떤 연예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한참을 그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생각이 날 듯 날 듯 하다가 의식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곤 했다. 그런 시간이 지속되면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단지 이름 하나일 뿐인데! 내 마음에 떠오른 이미지였기 때문에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다. 홀로 풀어야 하는 숙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그 숙제를 해결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문장도 연예인의 이름처럼 나를 괴롭혔다. 이 문장이 다가 아니었다. 의식의 수면 아래에 가라 앉아 있는 그 ‘무엇’이 분명 있는데 그게 뭔지 하루 종일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실체는 보이지 않고 흔적만 길게 이어지는 문제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가 있다.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 건, 교실의 흰 벽에 형광등 빛이 반사되어 내 눈을 어지럽힐 즈음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 시작되었고 어디선가 바람은 불어 들어왔다. 하루 종일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 문장을 연습장에 적어보았다. 그러자 꽤 오랜 시간동안 내가 찾고자 했던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문장 뒤에 붙어 있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그 문장은 내가 쓴 첫 소설의 첫 문장이 되었다. 나름 글쓰기에 관심은 있었지만 이전까지 글을 제대로 써본 적은 없었다. 시나 끄적거리고 편지나 써보았지, 이야기를 쓴 적은 없었다.
그 한 문장에서 주인공의 욕망이 모습을 드러냈고, 욕망이 꺾이는 과정과 새로운 구원의 서사가 탄생했다. 그때 썼던 글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줄거리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주인공은 서기 33년,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 소년이었다. 그는 유대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로마 제국을 동경했다. 소년의 꿈은 로마 제국의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소년은 어렵게 질 좋은 나무토막 하나를 구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나무토막으로 로마 범선을 깎을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소년이 집으로 가는 길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 수많은 인파가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대화 내용을 엿듣고 소년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닫는다. 자신을 메시아라고 칭하던 예수란 사내의 처형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년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언뜻 예수와 눈이 마주치고, 소년은 사람들의 무리를 따라 골고다 언덕까지 오르게 된다. 소년은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가 하는 말과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 소년은 거의 탈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고, 크게 열병을 앓은 뒤 깨어나서는 나무를 깎는다. 소년이 깎은 것은 로마의 범선이 아니고 나무 십자가였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원고지 50-60매 분량의 이야기였다. 마침 교회 고등부에서 매년 발간하던 ‘밀알’이라는 잡지 편집부에서 원고를 모으고 있었고, 그 소설을 냈다.
잡지 밀알에는 고등부 친구들의 다양한 글과 앙케이트 같은 것이 실렸다. 워드프로세서가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글씨가 예쁜 편집부원이 손 글씨로 작업했다. 밀알의 발간과 함께 내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글쓰기 없이 살아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글을 나와 다른 이들이 함께 읽으면서 예전엔 경험해보지 못한 희열을 느꼈다. 그때부터 고기 맛을 알아버린 맹수처럼 글의 냄새를 맡으며 글쓰기의 주변을 맴돌게 되었다.

고기맛을 알아버린 맹수처럼, 글맛을 알아버렸다.
또 하나의 변화는, 친분이 별로 없던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매개로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향적인 성격에 소심해서 누구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성격 탓에 꽤 규모가 큰 교회 고등부 내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수능을 치고 얼마 되지 않아 발간된 ‘밀알’속 글을 읽고 몇몇 친구들이 내게 알은체를 해주었다. 글이 내게 존재감을 부여하고 새로운 생명을 준 사건이었다. 이 모든 일의 발원지는 늦봄이나 초여름이었을 그 야자 시간이었다. 야자에서 발원한 작은 물줄기는 더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도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형광등 불빛이 반사되던 흰 벽, 남학생들의 호르몬이 공기에 섞여 들면서 떠돌던 체취, 불온한 서적, 허튼 짓들, 교실 밖 발코니를 넘어 다니시던 감독 선생님들, 밤 10시.
나의 야간 자율 학습을 구성하던 요소들과는 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두고 작별을 고했다. 그 후로 다시는, 여러 친구들과 한 공간에서 의무적으로 앉아 학습하는 일은 없었다. 야자는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둑을 만난 물줄기처럼 우뚝 멈춰선 채 단 한 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때까지의 모든 시간과 이야기들은 추억으로 박제되었다. 많은 친구들이 함께 보낸 시간이지만, 저마다 전혀 다른 기록으로 남을 추억으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