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_ 17. 그 여자의 청첩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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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멋지게 써주신 @kundani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kimssu

_


"아....진짜지?
근데....재돌샘 오늘 하루종일 연락이 없어서...
아무튼 연락 되면 나갔다 온다?"
"그래~ 갔다와라?"
엄마에게 그 여자의 청첩장 얘기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가 기회다 싶어 재돌샘에게
얼른 문자를 보냈다.

아... 화장했는데 갈 데가 없어요~ㅠㅠ
-킴쑤


17.
그 여자의 청첩장(3)

시간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왜 하필 이런 날 연락이 없는거야...'
기다리고 있느니 차라리 셀카나 찍자 싶어서
옷도 갈아 입었다.
셀카를 20장 쯤 찍었을 때 재돌샘에게 답장이 왔다.

여기 저기 쫓아다니느라 바쁘네
화장은 왜 했어?
-재돌오빠

오빠 보여주려구요~
엄마가 지금 오빠하고 커피 한 잔 하고 오래요
지금 볼 수 있어요?
-킴쑤

그렇단 말이지
그럼 곧 집 앞에 갈 것 같으니까
조금 있다가 나와
-재돌오빠

네 알겠습니당
-킴쑤

겉옷만 얼른 걸쳤다.
"엄마 나갔다 올게."
"연락 안 온다더니?"
"아, 집 앞에 온다고 나와있으라네?"
"그래. 아빠 오기 전에 와야 된다 했다.
얼른 갔다와."
"응!"

나와서 기다리는 편이 편했다.
재돌샘은 10분 정도 지나서 왔다.
내가 생각했던 방향이 아닌 반대쪽에서 차가 보였다.
나를 못 봤나 싶었지만
재돌샘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차를 돌려서 왔다.
내 앞에 멈춰선 재돌샘 차.
이젠 그 마저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왜 그 쪽에서 와요?"
"내가 아까 말했잖아.
오늘 하루종일 불려다녔다니까~"
"아...어딜 불려다녀요?"
"학교 갔다가 교육청 갔다가,
아고....바빠 죽겠다. 운전을 얼마나 한지 모르겠어. 이제 어디로 가?
언제까지 들어가야 하는데?"
"그냥 잠깐 나온 거예요.
엄마가 아빠 들어오기 전까지는 들어오래요."
"아버님 언제 들어오시는데?"
"음...한 6시 다 되서? 몰라요. 들쭉날쭉해서...
그래서 얼른 들어가야 해요."
"얼마 안 남았네? 일단 차 세우고 커피 사올게.
너도 커피?"
"네. 전 달달한 걸루요!"

재돌샘은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우고
커피를 사왔다.
"자, 그러면 이제 어디로 갈까?"
"....글쎄요? 가까운 데?"
"그럴 줄 알았어~"
"오빠가 저보다 이 주변을 더 잘 알면서~"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재돌샘은 차를 몰아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
해안도로 같았다.
초, 중, 고등학교까지 이 지역에 살면서
한 번도 와 본적이 없는 곳이었다.
"이런 데 어떻게 알아요? 진짜 좋다!"
"자전거 타고 이쪽으로 돌기도 했거든.
여기 해지는 것도 예쁘고."
재돌샘은 차창 밖을 바라봤다.
나는 재돌샘 뒤로 보이는 바다를 한참 바라보다가
재돌샘에게 더 시선이 갔다.
얼굴이 많이 상해보였다.
많이 힘들었던 걸까.

"얼굴이 많이 상했어요."
"그래? 피곤해 죽겠어. 아휴~"
재돌샘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자, 이제 얘기해봐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재돌샘 쪽으로 완전 몸을 돌리고 앉았다.
"뭐가. 좀 쉬자."
재돌샘은 눈을 감았다.
"그 여자 청첩장은 봤어요?
진짜 오빠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어요?"
"....어."
재돌샘은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와! 미친...진짜. 진짜 뻔뻔하다.
그래서요? 결혼식에 오래요? 미쳤나봐. 진짜."
재돌샘은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몸을 일으켜 커피만 마시고 별 다른 대답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뭐래요? 오빠랑 그 여자랑 사귄거 몰랐어요?"
"학교에서는 난리 났지.
나 놀린다고 난리야. 웃음거리가 됐어."
아차싶었다.
엄마에게 신이 나서 이야기를 나불거렸던
내 주둥이가 생각났다.
"아...그랬군요. 기분...나쁘겠다...
나도 엄마한테 얘기 다 했는데... 미안해요."
"아니야...뭐.
어머님은 뭐라시던데?"
재돌샘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안 됐데요. 불쌍하다구 하셨고.
오빠 여자 보는 눈 없데요...!
그리고 오늘 나온 거 보면 모르겠어요?
엄마가 나더러 오빠 위로 잘 해주래요."
재돌샘은 '여자 보는 눈 없다'라는 말에서
크게 웃었다.
"그래...위로 좀 잘 해줘라. 좀."
"위로 해주면 또 연민이라고 걷어 쳐라고 할거면서!"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커피를 들이켰다.
"미안..."
재돌샘은
궁금해 죽겠는데 별 말이 없으니
내가 먼저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언제 헤어졌는데 벌써 그 여자가 결혼해요?"
"어...작년 9월인가...여름이었나."
"네? 9, 10, 11....1, 2? 뭐요?
6개월만에 새 남자 만나서 결혼해요?
4년을 만나고도 결혼 안 했으면서?
뭐 6개월만에 결혼을 해요? 결혼이 그렇게 쉬운거예요?"
"나도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진짜...할 말이 없다, 진짜.
사기다, 사기.
이게 사기지, 뭐가 사기야?"

갑자기 재돌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말 안했나?"
"뭘요?"
"내가 말 안했구나...
심지어 그 여자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랑 결혼한데."
"네? 그걸 어떻게 알아요? 기간제 교사요?"
"그래서 이번에 둘 다 학교 관두고.
정석쌤이 알려줬어. 너한테 말한 줄 알았는데...
과목이 윤리라던가.
너 우리 학교 도덕쌤 알지?
그 쌤 대학교 후배라더라고.
도덕쌤이 미리 알고 그 남자한테 '중학교에 원래 사귀던 사람이 있었고,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고 만나지 마라'고 뭐라 했었데. 그럼에도 계속 만난다고 했다더라고."
"와. 말도 안돼. 와 씨. 진짜 말도 안돼. 와!
능력 없는 남자 싫다고 헤어진 거 아니였어요?
그 기간제 교사는 엄청 집안이 좋데요?"
"내가 변호사, 판사, 의사 이 정도 되면
이해 하려고 했는데...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라는 말을 듣고 나니까
더 어이가 없고 진짜 화났는데...
그거 알아?
그러니까 진짜 더 웃음이 막 나더라.
기가 차서.
청첩장 얘기 했던 날, 너랑 전화할 때
휴게소에 차 세워놓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오빠 그 날 좀 이상하긴 했어요.
막 상도덕 없지 않냐면서 ㅋㅋㅋㅋ"
"야, 근데 진짜 상도덕이 없지 않아?
도덕 선생이란 사람이 상도덕이 없다니ㅋㅋㅋㅋ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상도덕에서 어긋나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돌샘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사실... 헤어지기 전에도 좀 이상하긴 했었어.
자꾸 야자 감독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보충 수업도 있다 그러고...
나는 중학교에 있으니 고등학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학교가 원래 좀 그러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때부터 뭐가 있었는지 모르겠어."
"왜 그 여자랑 얼른 결혼 안했어요?
4년이나 사겼으면서 그냥 얼른 결혼 했어야지!"
재돌샘이 콧방귀를 꼈다.
"결혼하기 쉬운 줄 알아?"
"그 여자는 6개월 만에 하잖아요!
엄청 쉬운 거 같은데?"
나는 속이 끓는 느낌이었다.
화가 나서 욕이라도 확 퍼붓고 싶었다.
재돌샘 앞에서 쌍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재돌샘은 오히려 평온해 보이고...
따뜻하게 마시라고 사온 커피가 시원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청첩장 가져왔던 날
학교에 정석쌤이랑 국어쌤이랑 계셨거든.
국어쌤이 처음에 잘 몰랐는데 잘 보니까
그 여자더래.
그래서 휴게실에 데리고 들어갔더니
아무말도 안 했는데
그렇게 펑펑 울고 갔다더라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허...지가 뭘 잘했다고 운데요?
뭘 잘못한 줄은 아나봐요?
아니 그럴거면 뭐하러 청첩장을 가져왔데요?"
나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쌤들이 다 결혼하고 나서 그러면 어쩔 뻔 했냐고
차라리 잘 됐다고...하더라고."
"맞아요! 진짜 결혼하고 그랬으면..."

재돌샘은 불쑥 내 손을 잡았다.
재돌샘이 먼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좋아서 활짝 웃었다.
그리고 재돌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재돌샘은 쑥스러웠는지 나랑 잡은
손만 바라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재돌샘도 활짝 미소지었다.
재돌샘이 내 손을 쓰다듬었다.
'지금이야, 오빠 지금 나한테 고백해!'
라는 속마음은 들리지 않는지
아무 말없이 웃고만 있는 재돌샘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우리 어쩌지?"

정작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쏙 빼고
대화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이제 어떡하실 거냐구요."
"나도 몰라."
재돌샘은 크게 웃었다.
그리고 재돌샘이 내 손을 꽉 잡고 양 옆으로 흔들었다.
"애는 입양해서 키우고? 어때?"
"뭐, 어쩌자고요? 으이구... 정말~
못 살아 진짜. 저도 몰라요! 몰라!"
"왜 못 살아~? 나 때문에~?
ㅋㅋㅋㅋㅋ나도 몰라!
이제 집에 가자!"

나는 안전벨트를 다시 하기 위해서 손을 놓았다가
차가 출발한 뒤
다시 재돌샘 오른손을 잡아 깍지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깍지를 풀지 않았다.

해가 다 넘어가고 주변이 어스름해진 시간이었다.
아빠가 나보다 집에 먼저 도착한 건 아닌지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도 주차장에 아빠 차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들어가야지?"
"아직 아빠 안 온 것 같아요."
"아! 내일 점심 먹을까? 나올 수 있어?"
"엄마한테 물어볼게요~ 내일 별 일 없으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해요.
음...그럼 허락 받아야 하니까
지금 일찍 들어가야 겠어요."
"그래. 이제 들어가봐."

"자꾸 그 여자 생각하지 말고.
다 잊어버리고 내 생각해요. 내 생각.
알겠죠?"
"그래. 하나도 생각 안나~ 내일 봐!"

.

.

.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B반 여자 수학선생님이 한동안
초록색 꽃반지를 끼고 다녔다.
태어난지 10000일 되는 기념으로 받았다는
그 반지.

그 반짝거리는 반지에 대해서
내 친구들은 설명을 듣고 싶어 했었다.
고3 막바지 무렵 쯤이었다.
겨울 방학을 앞두고 있었고
수능이 끝나고 남아 있는 친구들도 몇 없고 해서
선생님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다.
친구들은 그 때가 기회라 생각했는지
"남자친구 얘기 해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쉿! 목소리 좀 낮춰봐.
얘기 해줄테니까."
B반 여자 수학선생님은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서더니 칠판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 회사원
  • 카이스트
    ...

"그냥 회사원이야."
나는 그 꽃반지를 선물해준 사람이
재돌샘이라는 사실을 원래 알고 있었지만
저 말을 들으니 확실히 재돌샘 생각이 났다.
재돌샘 나에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교문을 나가는 순간
자기는 어디 가면 자기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회사원이라고 한다고.
선생님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선입견을 갖고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B반 여자 수학선생님은
하나씩 설명을 마칠 때마다 칠판에
적은 내용도 하나씩 지워나갔다.

의아했던 건 학교 이름에서 였다.
재돌샘이 나온 학교가
내가 알기로는...카이스트는 아니었는데.
그래서 약간 헷갈렸다.
내가 재돌샘 나온 학교를 잘못 알고 있나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고
일부러 재돌샘 아닌 척 하려고
B반 여자 수학선생님이
수를 쓰는 건가 라고도 생각했다.
왜냐면 그 이야기를 할 쯤에
제일 앞에 앉은 활발한 여자 친구가
"쌤, 재돌샘이랑 사귀잖아요!
우리 다 알고 있어요~"
라고 얘기했었기 때문이다.
B반 여자 수학선생님은
"누가 그래? 아니야~
내가 재돌샘이랑 사귄다고? 아닌데?"
하면서 손을 휙 저었다.

게다가 그 다음 시간에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다.
선 봤던 사람들 이야기였던가.
그러니까
'지금 이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이런 사람도 만났고,
저런 사람도 만났는데
이 사람이 더 나은 것 같아서 이 사람을 만난다.'
대략 이런 이야기를
한 번 더 칠판에 적으며 이야기를 해줬었다.
두 번째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새 재돌샘이랑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돌샘과는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늘어놨다.
실제로 경험해 본 사실을 이야기 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혼란스러웠다.
재돌샘이랑 사귀는 거 숨기려고
별 짓을 다 한다고 생각하며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물론 친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여자 친구들은 이 사람이 났네, 저 사람이 났네
B반 여자 수학선생님과 수다도 떨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원래 우리집이 되게 못 사는
집안인 줄 알고 샤프심도 거의 다 쓰고 빠지면
도로 넣어서 쓰고 막 그랬거든?
근데 생각보다 우리집이 잘 살더라고...
나 최근에서야 알았잖아."

이제와서
재돌샘에게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등학교 때 B반 여자 선생님의 말들이
퍼즐을 맞추 듯
하나씩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맞아!
그 꽃반지! 쌤이 사준 거죠?"
"무슨 반지?"
"그 초록색 반지 말이예요. 현지쌤이 자랑했었어요!
자기 태어난지 10000일 기념으로 받은 선물이라구요!"
".....선물 했었지. 내가."
"그런 선물 하고도 차였다구요?
진짜 곧 결혼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엄청 비싼 반지였어...."
"돌려 받았어요?"
"돌려 받았겠니?"

_내일 봐요!


@calist님의 아이디어를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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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_ 18. 너에게는 내가, 나에게는 네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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