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라. 떠올리기만 해도 달콤하다고 할까.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 가슴 뜨겁게 간직할 그 무엇.
대학시절, 지나고 나니 낭만이었네
대학은 제게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며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모임 끝나면 뒤풀이로 막걸리와 안주라고는 깍두기가 전부였지만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떤 술자리보다 더 낭만적이었네요.
그러는 사이, 마음에 드는 여성과 설레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애써 이성으로 억누르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연애보다 더 큰 낭만을 가졌던 게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부모님 속을 꽤나 썩인, 반쪽짜리 낭만입니다.
결혼 뒤, 연애다운 연애를 하다
우리는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서로 애틋하게 사랑을 해서가 아닙니다. 부모님의 간섭으로 벗어나고자.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 낭만이 허물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더군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영혼까지 앓았습니다.
살 길을 찾아야했습니다. 서울을 떠나, 시골 삶을 선택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이 일상이 되는 삶. 그래서일까. 저는 이 곳에서야 비로소 아내를 연인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내친 김에 개념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부부연애’라고. 연애다운 연애는 결혼부터라고. 잠버릇까지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삶.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서로를 애무해줄 수 있는 관계. 몸과 마음은 물론 영혼까지 하나 되는 오르가슴의 순간들.
혼자서도 온전하고 싶어라
그럼에도 낭만이 미치지 못하는 지점을 가끔 만나곤 합니다. 사랑이 식은 것인가? 그런 부분도 없지 않겠지요. 하지만 저로서는 쉬이 만족이 안 됩니다. 그럼 또 무슨 낭만이 있을까? 한 사람으로서도 온전할 수는 없을까? 그 답을 찾고자, 여러 경전을 파고들었습니다. 나름 깨달음이 오더군요. 만일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바로 내 안에 있다는 자각.
하지만 깨달음은 하루하루 생활이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깨닫는 시대요, 그 깨달음을 쉽게 공유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집단 지성’이야말로 새로운 성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상한 스팀잇 낭만
스팀잇은 참 요상한 곳입니다. 전혀 낯모르는 사람과 끈끈하게 맺어집니다. 그러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이벤트도 많습니다. 지금 이 ‘낭만’ 이벤트를 봅시다. 제 기준으로 보자면 이를 여는 것도 낭만입니다. 식어가는 스팀잇에 조금이나마 따스함을 불어넣고자 하는 낭만. 참여도 낭만입니다. 참가자들끼리 서로 경쟁자인데 경쟁만 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더 많이 알리고, 참가한 사람끼리 서로 격려합니다. 심사위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 같이 북치고 장구 치며 들썩들썩!
이런 낭만에 취하다보니 내 돈 들여 글을 씁니다. 사실 이 곳은 암호화폐인 스팀을 사서 어느 정도 파워 업을 하기 전에는 버텨내기 어렵습니다. 근데 이 스팀의 앞날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열정을 쏟는 이유가 뭘까요? ‘존버’하면 언젠가 ‘떡상’이 온다는 믿음일까요? 그것만 가지고는 답이 안 됩니다. 열정이란 내 안에서 차오르는 그 무엇이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그 어느 SNS가 이렇게 열정적일까요?
저 나름대로 내린 답은 ‘사랑’입니다. 삶을 사랑하고, 이를 이웃과 아낌없이 나누고자 하는 마음. 그렇다고 이 나눔은 결코 그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열듯이 이웃 마음을 열어야합니다. 마음의 문을 제대로 여는 건 사랑입니다. 돈이나 글로만 여는 문은 오래 가기 어렵잖아요? 사랑은 나눌수록 더 커지는 문입니다.
낭만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바로 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신은 어두운 터널을 엉금엉금 기듯이 가는 길에 있음을
행주를 삶아 빨아, 햇살에 보송보송 말렸을 때 오는 상쾌함에 깃듦을
하루를 열심히 뛰어다닌 신발 밑창에서 나는 냄새에 있음을
세월 따라 조금씩 깊어지는 주름살에 있음을
당신이 뱉어낸 숨을 내가 다시 들이키면서 생명을 이어가는 그 숨 속에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