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애증의 모녀지간

외증조 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사진이다.
좌측의 꼬마 남자 아이가 막내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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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딸을 알려면 그 엄마를 보면 된다고...

그런 맥락에서.. 나에 대해 알려면 우리 엄마를,
또 우리 엄마에 대해서 알려면 우리 외할머니를,
얘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외할머니의 이름은 강순이.

그 시대에 흔히 그랬듯이...
글이라는 건 배워본 적도 없는 까막눈에...

(나중에 내가 커서.. 고등학교 때에야..
할머니가 까막눈이셨다는 걸 알고..
엄청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15살에 외할아버지에게 시집 와서,
외증조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호된 시집 살이를 견디며 2남 3녀를 낳았다.

(내가 아주 어릴 때.. 그때까지도 꼬장꼬장했던,
외증조 할아버지, 할머니를 본 기억이 있다.

두 분 모두 90이 넘게 장수 하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외할머니가 모셨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세월이었다고 하겠다.)

외할아버지는 철도 공무원으로... 안정적인 직장에,
돈도 제법 잘 벌어왔다고는 하지만, 치명적으로...
알콜 중독자셨다.

멀쩡하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엄청나게 폭력적으로
돌변해서... 물건을 다 때려부수고... 할머니를 패고...

(심지어 나도... 어린 시절에...
그런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ㅠㅠ)

그런데 희안한 건... 술에 취한 할어버지의
폭력의 대상은 오로지 할머니. 였다.

적어도 자식들은 할아버지의 폭력을 말리지만 않으면
직접적인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외할머니가
숱하게 맞은 건 말 할 것도 없고...

차마 말릴 수도 없었던 우리 엄마는,
늘 눈치 보며 도망 다니다가...
커서는... 아예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배회한 날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맞고 살던 까막눈 할머니가..
계산과 사재에는 또 너무나 밝으셔서...

할아버지가 벌어온 돈에, 자신도 공장에서 일한 돈을
모아모아... 땅을 사고, 부동산 투자를 하셔서...

나중에는 집을 무려 5채나 갖고 계실 정도로
부유하셨으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할아버지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돈을 벌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는지..

아무튼 할머니는 공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회생활을 빌미로 집을 비우기 시작하셨고...

그 빈자리는 고스란히...
맏딸인 우리 엄마의 차지가 되었다.

엄마는 중학교 때부터,
형제들의 도시락까지 스스로 다 싸야 했고...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할아버지의 술시중과, 난장판이 된 집 정리까지.

(할머니에 대한 엄마의 애증은...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 하다.)

그리고, 할머니는...
시부모와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의 반작용이...
어이없게 아들을 향한 맹목적 신뢰로 이어져서...

(그것도 오직 엄마의 오빠인 큰삼촌, 장남을 향해서만!
물론 그 다음은 막내 외삼촌이긴 했으나,
그건 정말 조금! 아주 갭이 크다;;;)

먼 훗날, 할머니의 전 재산을 큰외삼촌이 꿀꺽!
다 말아잡수시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니...

이에 대한 다른 형제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는 커질 수 밖에 없었고...

아직 요양원에 생존해 계시는 할머니를
끝까지 책임지고 있는 우리 엄마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 애증의 골이 깊을 수 밖에 없다 하겠다.

그래도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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