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평가 기간이 되면 강의 담당 선생님들이 숫자로 표시되는 ''성적 알리미''와 학생 개개인에 대한 조언 또는 의견이 담긴 ''멘토링 리포트''를 작성해서 전달합니다. 일반 학교 성적표의 ''담임의견''에 해당하는 내용을 특정 학생이 수강한 모든 과목의 담당 선생님들이 작성하는 셈이죠.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격적 교감을 위해 '작은 학교'를 지향하는 만큼 전체 학생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멘토링 리포트를 작성하는 시기가 되면 연애 편지를 쓰는 것과 맞먹는 '창작의 고통'에 시달립니다.
'너무 칭찬이 지나친 건가? 에이, 칭찬할 만 해. 이왕 하는 거 화끈하게 가자!'
'이렇게 써서 약발이 들을라나? 좀 강하게 쓸까? 아냐, 그 부모님 성격에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겠어?'
'이 녀석은 지난 번 멘토링 리포트 때랑 크게 변한 게 없는데... 표현을 좀 바꿔야 설득력이 있을라나?'
이런 고뇌를 거쳐, 때로는 갖가지 비유와 풍자를 동원한 끝에 만들어지는 '연애 편지'이기에 신입생의 경우 때로는 첫 멘토링리포트를 기념으로 가지려는 학생과 학부모님 사이에 작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답니다.
멘토링 리포트를 쓰는 시간은 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주되게는 제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권력에 걸맞는 책임을 피부로 느끼고 다시 숨을 고르고 반성하는 시간이죠.
그럴 때마다, 저는 '양치기의 권력'을 떠올립니다. pouvoir pastoral / pastoral power. 미셸 푸코가 정리했던 개념이기도 합니다. 흔히 '사목 권력'이라 번역됩니다만, 전문 번역자로서 저는 '사목 권력'이라는 관행적 번역어보다는 '양치기의 권력' 또는 '목자의 권력'이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그 권력이 지닌 속성을--종교색을 걷어내고--좀더 투명하게 드러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양치기가 양에게 행사하는 권력입니다. 푸코가 잘 정리했듯 그 권력은 일정한 경계 내부가 아닌 특정한 집단에 대해 행사되는 권력이고(학교 밖에서도 학생은 학생입니다), 본성상 (학생의 성장을 위한 것이기에) 선한 것이며, (학생 전체와 개인 모두가 대상이라는 점에서) 개별화와 총체화를 모두 지향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권력을 행사하는 자(양치기=교사)는 학생의 모든 행위에 대해 분석적인 책임을 지고, 학생 한 명 한 명의 내면을 꿰뚫어 적재적소에 그 권력을 행사하며, 언제든 학생들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도전적이거나 반항적인 학생에게는 적절한 대안적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푸코가 분석을 시작하면서 그러했듯, 저 역시 현재 운영하고 있는 독립학교를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구상하면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를 상상했었습니다. 푸코의 주요 분석 대상이 중세 사제의 권력이었던 것처럼, 저 또한 오래 전 일이지만 사제를 꿈꾸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우리 학교는 그가 말한 '양치기의 권력'이 가장 모범적(?)으로, 가장 투명하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그러한 권력의 구조가 가장 잘 실현되어 있는 모델인지도 모릅니다.
저의 반성, 저의 성찰, 그리고 그 내면적 동기인 '두려움'은 바로 거기서 출발합니다. 양치기의 권력... 일정한 경계조차 없이, 집단적이면서도 개별적으로, 개개인의 내면을 속속들이 꿰뚫고, 철저하게 행사되는... 그것은 어찌보면 가장 소름끼치는 권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멘토링리포트를 쓰거나, 아이와 상담을 찐하게(?) 나누거나, 오늘처럼 두 가지 모두가 겹친^^ 날에는 조금은 허해지고, 생각이 많아지고, 살짝 우울해지고, 가끔 잠 못 이루는지도 모릅니다.
'나라는 주체는 그러한 권력을 행사하기에 합당한가? 그러한 권력을 합당하게 행사하고 있는가? 그 합당함의 기준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내가 감당해야할 책임의 폭과 깊이와 무게는 어디까지이며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가? ...'
결론은? 물론 없습니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이고, 끝나지 않을 과정이며,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 시지프의 노고와 같은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런 시간이 되면 언제나 그렇듯,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밤이 깊어가네요. 새벽 감성에 기대어 쓸 내용은 아닌 듯하고, 내일의 알콩달콩 하루를 위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만큼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새로운 태양이 뜰 테고, 아침 여덟시 반, 교문을 열고 들어서면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 마디에 저는 이 모든 새벽의 상념들을 또 한 번 홀연히 잊고, 무언가에 취한 사람처럼 또 다른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게 되겠죠. 되풀이 되지만 항상 새로운 내일을 보내는데, 오늘 이 새벽의 상념이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되기를...
안녕히 주무십시오.
- 사족:
변방의 이 조그만 학교에서 제가 가진 권력이 두려워질 때면, 아주 가끔은, 그 권력이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의 학생들에게 확대된다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하기도 합니다. 학종 100퍼센트를 소리 높여 주장하시는 분들의 목소리에 '가장 학종스런(?) 학교'를 구상해서 7년전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제가 선뜻 힘을 보태기 힘든 이유입니다.
수십 년간 변하지 않은 공교육 시스템에 적용되는 100퍼센트 학종, 삶의 향방까지 결정해 버리는 철저한 교사의 사목 권력...
벤덤의 판옵티콘이 그러했듯,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보장해주지는 못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도 하죠. 권력의 담지자가 그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는 더더욱, 더 많은 확률로 그런 것 같습니다. 외람된 사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