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기 개처럼 생긴 토끼가 있어!!!"

녀석은 당근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날도 당근을 길게 썰어 도시락 통에 담고 산책에 나섰죠. 호수를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 익숙한 길이었습니다.

이맘 때였던 거 같아요. 덥진 않았지만 햇살이 따가웠죠. 중간쯤 어느 벤치에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생수병을 꺼내 물을 조금씩 나눠 마신 다음 저는 녀석에게 길게 썬 당근 조각을 하나씩 건넸습니다.

"와삭 와삭 와삭~"

보고 있는 제가 군침이 돌 만큼 소리까지 맛있게 먹습니다. 그때 한 꼬마 신사가 어디선가 다가왔습니다.

"아저씨~ 이 강아지 안 물어요?"

"응~ 안 물어."

대답해 놓고 나니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꼬마야, 너 그런데... 얘가 개처럼 보여?"

"어? 개 아녜요?"

"에이~ 어디 얘가 개처럼 보이니? 너 당근 먹는 강아지 봤어?"

"어? 강아지 맞는데...? 그럼 아저씨~ 얘는 강아지 아니고 뭐예요?"

"얘는 참... 토끼 잖아. 귀도 길고 당근도 이렇게나 잘 먹고. 잘 봐~ 토끼 맞지?"

"어? 토끼는 꼬리가 짧은데, 얘는 꼬리가 길 잖아요. 강아지 아닌가?"

이 쯤 되면 반쯤은 넘어온 겁니다. 이럴 때 고삐를 확 당겨야죠.

"아니, 개도 꼬리가 짧은 개가 있고, 토끼도 꼬리가 긴 토끼가 있는 거야. 너 꼬리 짧은 개 못 봤어?"

"아아~ 그렇구나."

그리곤 가엾은 우리의 꼬마 신사. 멀리서 지켜보던 엄마에게 달려가며 이렇게 외칩니다.

"엄마~ 저기 개처럼 생긴 토끼가 있어!!!"


벌써 10년도 더 된 추억이네요. 녀석의 이름은 콜롬보.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한 저희 부부의 '강아지 아들'입니다. 오늘은 녀석의 생일이었습니다.

12년간 저희 부부와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고 3년 전쯤 무지개 다리를 건넜죠.

작지 않는 도시에서 요즘도 가끔 저희에게 조심스레 다가와서 콜롬보의 안부를 묻는 (저희는 정작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걸 보면, 녀석은 참 좋은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03071801.jpg

콜롬보 2003. 5. 14. - 2015. 8. 26.

생일 축하해. 콜롬보.
엄마, 아빠. 조금만 기다렸다 다시 만나자~

H2
H3
H4
Upload from PC
Video gallery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2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