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사랑이나 외교나 그 사이를 밀고 당기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지내온 둘이 세상이 정해놓은 틀 속에서 합을 이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친구의 주선으로 이뤄진 맞선에서 만난 준영(감우성)과 연희(엄정화), 그 둘은 과연 세상이 정해놓은 계약, 결혼에 이르게 될까? 사랑의 종착역이 결혼이 될 수는 없겠지만, 둘의 인연은 어떻게 될까?
이니와 으니의 맞선이 태평양을 건너 멀리 사는 친구의 주선으로 내일 이루어진다. 맞선이라 함은 만나는 둘이 돋보여야 할 자리인데 이번의 만남에선 주선자가 더 돋보이고 싶나 보다. 어찌 되었든 이 만남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그 물음의 답은 준영과 연희와는 다르게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결혼으로 향하려는 준영과 연희, 통일로 향하려는 이니와 으니를 동일 선상에서 놓고 보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의 답은 우리들로서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사랑의 끝이 결혼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평화의 끝이 통일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끝은 없을 수도 있다.
당장의, 눈앞에 닥친 (나이가 차서) 결혼과 (이제 할 때도 됐으니) 통일을 위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도 건너뛰고 맺어진 관계는 온전하게 잘 끌고 갈 수 있을까. 그 인내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건너뛰고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외칠 수 있는 천생연분이 있는가 하면, 이제 서로 충분히 알만큼 연애했다는 커플들도 결혼해서 찢어지는 것이 남녀 사이다.
아무튼, 이니와 으니는 임재범의 '너를 위해'의 가사처럼 복잡한 인연에 서로 영켜 있었다. 전쟁 같은 사랑은 정말 이제는 없어야 할 것이며, 서로를 바라보는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은 내일의 맞선에선 보이지 않기를 기대한다.
세 번째로 맞이하는, 남쪽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 영화를 고른 것이 잘 한 것인지는 이제 영화를 보며 차차 알아가기로 하자.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데 과연 통일은 대박일까? 503딱지가 붙은 그녀는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녀는 그냥 아무생각이 없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맞선
서로의 프로필을 물어보며 뻔하디 뻔한 절차로 끝이 날 것 같던 맞선은 택시비를 여관방에서의 하룻밤으로 맞바꾸는 것으로 다음의 만남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파격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나름의 파격적인 행보의 목적은 준영과 연희에게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결혼을 위한 만남이냐, 연애를 위한 만남 인가로 일찌감치 갈라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니와 으니의 맞선은 어떨까. 만남을 주선한 주선자는 으레 빠져주는 것이 상책인데 오히려 당사자들보다 더 입을 털기 바쁘다. 이 만남의 성사가 본인의 성과임을 만방에 알리고, 알아주기를 갈구한다. 결국에는 삼자대면인 셈이다. 각자의 머릿속에서 만남의 목적과 이루려는 목표는 어떠한지 우리는 알다가도 모른다. 나름의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상대와 주선자로 인해 형식적인 절차로 끝이 날 것 같지는 않다. 누가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내일의 만남의 장소에서 불과 일 년 안에 일개 병사가 목숨을 걸고 넘어왔고 이제는 최고 지도자가 걸어서 내려온다.
데이트
맞선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만남이 이어가려면 지속적인 연락과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에는 물어보지 못했던 상대의 마음을 캐내려고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내어놓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는 온갖 감언이설이 동원된다. 미래의 달콤함 때문에 있지도 않은 달콤함을 내어놓았다가는 언젠가 들키기 십상이다.
내일 있을 만남도 일시적인 만남으로 끝이 나서는 곤란하다. 전의 두 번의 만남에서의 성과는 과연 지금도 유효한가에 대해서는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가려면 감언이설이 난무하여도 나중에 빼도 박도 못하게 못 박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맞선의 당사자들이 그러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지만, 혹시라도 다음에 한쪽에서 마음이 바뀌거나, 또 다른 한편에 서는 인물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
혼자 사는 이대로도 충분한데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 늘어가듯, 이대로 우리끼리 사는 것도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쁘다고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늘어가는 듯하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맞지 않은 상대와 결혼을 하려니 무언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면, 이미 날짜는 정해졌으니 그래 까짓 거 한 번 살아보자는 식이라면 결혼식장에서 찍은 사진 속에 담긴 웃음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역사를 가졌다는 이유로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감상적인 태도인 것 같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이대로도 좋은데 굳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을 가지는 이들도 있다. 단순히 자신들의 세대만을 위한다면 그러할 수도 있겠지만 먼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결혼을 하는 여러 가지 목적에 자신들의 2세를 위한다는 것이 포함된다면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조금의 양보가 필요하다.
밑지는 장사일지, 대박이 날지는 두고볼 일이다.
선택
잘 지냈어?라는 말처럼 준영과 연희는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다. 연희는 준영이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선택의 범위를 늘려갔다. 그렇다고 준영을 빼놓지는 않았다. 몸과 마음에 맞는 상대는 준영이 유일하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연희는 조건을 선택했다. 결혼할 정말 없는 것이냐는 연희의 물음에 준영은 답한다, 거짓말하면서 살 자신이 없다고.
결혼할 생각이 없다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연희에게 소개해준 준영의 마음은 무엇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내일, 이니와 으니의 만남은 맞선의 자리가 아니라 상견례일 수 있다. 우리는 시부모에 빙의해 서로의 대화를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같은 자리에 앉아 상대의 의중을 캐물을 수도 도움을 줄 수도 없지만, 이니의 곁에는 컨설턴트가 자리한다. 으니도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조건을 따지다가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선택의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는 둘의 마음이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서로가 준비해온 것 이상의 것이 그 둘의 입에서 나올 수도 있다. 조건을 따지는 선택보다는 마음에 맞는 합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신혼여행
결혼은 준영과 연희가 하는 것이 아닌데, 준비는 왜 둘이 하고 있을까. '니가 사는 그집'까지 초대받은 준영과 외간 남자를 끌어들인 연희는 둘만의 신혼여행을 떠난다. 수영장이 딸린 근사한 숙소가 아닌 귀뚜라미가 우는 조용한 시골집의 민박이지만 연희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연희 자신은 어쩌면 조건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 이 여행을 제안했는지도 모른다.
이니와 으니의 허니문은 어떨까. 상상은 금물이다. 하지만 자신을 제쳐두고 다른 상대와 떠나는 여행이 먼저였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두 二 자가 선명했을 것이다. 허니문 기간에는 누구도 건들지 않는 것이 예의인 것을, 가만히 두고는 못 보는 사람들이 많다. 취임 후에도 못살게 괴롭히더니 이제는 털 끝만 한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지고 있다. 배알이 꼴리는 것인지 자신들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바다 건너에 있는 이도 마찬가지다. 어제 그의 집 앞에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라는 노래가 울려퍼졌다 한다. 입에 침을 발라 창호지를 찢어 첫날밤을 엿보는 것은 이해해주련다, 제발 방해되지 않게 그 입 다물고 있으라.
주말부부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면서 준영은 왜 연희의 결혼생활을 상상하고 있을까. 이미 떠난 여자를 왜 기다리고 있을까. 준영의 독립을 도와주는 연희의 마음은 또 무엇일까. 둘은 주말부부가 되었다. 나는 그 둘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관심법이라도 써서 알아내고 싶지만 도리가 없다. 옴마니 반메흠.
이니와 으니의 책상에는 이제 직통전화가 깔린다. 연애 초반처럼 매일 연락할 수도 없고, 신혼처럼 매일 부대낄 수도 없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아니 서로 생각날 때 연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제라도 한쪽에서 끊어낸다면 서로 막을 도리는 없다. 일방적인 끊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저쪽에서 쉽게 끊어버리지 못할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마음만으로, 사랑으로만 결혼생활이 이루어지나? 너무 감상적인 태도는 옳지 못하다. 적당한 밀당은 기복 없는 결혼생활 아니, 평화를 향해가는 이 길목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파국
결혼이라는 틀 속에 갇히기 싫었던 준영, 결혼과 연애는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기던 연희는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 맞선 장소에서 어떤 음식을 가장 잘 하냐는 물음에 연희는 콩나물비빔밥이라 답한다. 연희가 결혼한 후 자신도 모르게 다시 물어본 그 질문에 연희는 거의 다라고 답한다. 준영은 이미 연희에게 마음이 떠났다. 연희가 차려준 콩나물비빔밥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라면을 먹는다.
콩나물을 삶고 양념장을 만들고 밥을 짓고, 콩나물비빔밥을 하기 위한 과정은 마치 연희가 원하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가치관인 듯하다. 누가 차려주는 밥상보다는 자신이 끓인 라면을 먹는 준영의 마음도 누구에게 구속받지 않으려는 자유가 담겨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남의 연애 이야기에 담긴 속 뜻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그 안을 들어갈 수도 들여다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외쳐본다. 옴마니 반메흠. 관심법은 통하지 않았다...
연희와 준영의 만남은 파국으로 끝이 났지만 내일 이니와 으니의 만남은 절대 그러해서는 아니 된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또 다른 사건 사고들로 인해 주목이 덜 한 부분이 있지만 내일만큼은 시부모의 자세로서 만남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등잔이 밝히는 바깥에서는 주목하는데 정작 우리는 그 밑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게 까대면서 결국은 '삼성 채용' 이라는 단어가 검색어 가장 윗단을 차지하고 있다. 언제쯤 나만 잘 살면 돼,라는 마음가짐이 바뀔까.
좀 같이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