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의 낭만을 뒤져보면 별로 찾을 만한 게 없다. 하늘이 비를 내려 주면 풍년이고 가물면 보리밥을 먹어야 했던 가난한 소농의 자식답게 논밭을 바라보며 성장했다. 그러다 빌려 읽게 된 <톰소여의 모험>, <보물섬> 등의 동화책은 작은 상상을 불러왔는데 뒷산을 누비며 그 중 가장 큰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 동네와 신작로 그리고 저 멀리 버스 종점과 중학교가 있는 곳을 바라보는 정도였다. <어린이 새농민>이었던가, 어떤 책자에 논두렁의 썪은 볏단에는 해충이 많아 다음 해 농사를 망친다는 내용에 의적단처럼 동생들과 동네 애들을 이끌고 논두렁을 태우러 나섰다. 겨울바람을 타고 이웃 논에까지 불이 붙었고, 동네 사람들이 쫓아 왔고, 그날 부모님께 작신 혼났다. 책의 낭만이 가져온 작은 부작용이었다.
중고교 시절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친구였다. 누구나 그렇듯 전혀 다른 환경의 타인을 친구로 맞는 것은 데미안적 경험이다. 더구나 내게 없는 장점을 가졌으니 한 친구는 노래를 참 잘했다. 흔들림없는 음정으로 홍난파의 <사랑>을 열창할 땐 그 애를 '다 타도록' 사랑하고 싶었다. 또 한 친구는 수학을 잘 했다. 연습장에 침을 튀겨가며 풀이 해줘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였으나 수학을 잘 하는 친구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참 으쓱했다. 다른 애들이 우리를 '난쓰리'라고 불렀던 것을 성인이 되고야 알았다. 못난이 3인방.
경제 사정을 봐서는 대학교 대신 공장에 갔어야 맞는데 우여곡절 끝에 대학이라는 곳에 다니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사실 구적거려서 비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과 친구 하나가 비오는 날은 낭만적이라고 하는 거다. 비 맞으며 걷다가 분위기 좋은 곳에서 한잔 하는 거 멋지지 않냐면서.
아, 이런 걸 낭만이라고 하는 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당장 나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하기로 하고 부리나케 술집으로 달려갔다. 그 술집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줬으니, 소주와 막걸리 잔 사이로 독재타도와 취루탄 가스와 알베르 까뮈와 라흐마니노프 피협과 그리고 날마다 데모하느라 새까맣게 그을린 그 선배.
이후 평범한 사람을 만나 평범한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평범하지 않는 직장의 전투를 치루느라 로맨틱할 새가 없었다. 그래도 일말의 흔적은 남았는지 술 한잔 기울인 날은 예전 노래를 흥얼 거리며 나의 옛 친구들이 잘 지내는지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바라는 낭만이라면 작고한 타샤 튜더 여사와 그의 멋진 반려견 코기들이 뛰어 노는 환상적인 정원은 아니더라도, 손바닥만한 마당이나마 수국과 장미가 흐드러진 사이로 바둑이가 폴짝이고 브람스와 황병기 가야금 산조가 흐르는 집이라면 하는 정도.
그러다 바람직한 지역 단체장이 나오면 특히 그가 환경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후보라면 내 나이가 몇이든 자원봉사 마다하지 않는 정도.
이게 내가 바라는 노년의 낭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