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공부방에 대학교에 진학한 아이가 저를 보겠다고 찾아왔습니다. 대학생이 방학이라서 가끔은 들리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러면 밖에 나가서 호프 한 잔 하는 것이 제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지금 중, 고등학생들이 기말 시험기간이라서 시간이 안 된다고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잠깐 군대이야기 학교생활 이야기를 하고 떠났습니다.
제가 가르친 아이 중에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아이 3명이 있는데, 3명 모두 신기하게도 인 서울을 했습니다. 촌에서 한 학년에 100명이 안 되는 학교에서 서울에 중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상당히 힘듭니다. 그런데 이 3명 모두 인 서울을 했습니다. 고마운 아이들이죠. 찾아온 아이가 그 중에 한 아이입니다.
이 놈은 지금은 부근으로 이사를 갔지만 제 아파트 바로 아래에 살았습니다. 그 아이 아버지와는 학부모와 공부방 선생님 사이와 더불어서 제가 좋아하는 동생을 따르는 동생이어서 아버지와는 잘 아는 사이입니다. 이제는 형님 이라고 부르네요. 아마 저 하고 인연이 있어서 만나는 스티미언 분들이 계시면 한 번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식당을 좀 크게 하고 있으니까요.
이 집에 둘 째 아이가 보통 아이와 좀 다릅니다. 태어 날 때 괜찮았지만 클 때 열이 너무 많이 났던 것을 치료를 잘 못해서인지 (정확히 선천적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능이 좀 떨어집니다. 저는 그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냥 구석에 조용히 혼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인데, 큰 아이 공부를 가르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늘 저를 만나면 큰 아들이 여기서 같이 살면서 작은 아들을 같이 돌보면서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식당을 크게 하니까 어차피 사람 손이 필요하니, 지가 하고 싶은 것 해보라고 하고 군대 갔다가 오면 밑에서 식당 일을 같이 하면서 사는 게 꿈입니다. "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아니다. 큰 아이는 큰 아이 인생을 살도록 놓아 줘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문제는 그럼 큰 아이가 어떻게 자기 인생을 살게 살 수 있다는 말이냐? 이 곳을 떠날 수 있겠느냐? 이었습니다. 저는 아이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이니 “좋은 대학에 가서 지가 취직을 하고 멀리 떠나서 살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도 데리고 살 수 있겠어? 지 인생 지가 살겠다는 데 방법이 없잔아.” 라고 말했습니다. 아빠의 말은 “형님!! 그러면 어쩔 방법이 없잔아. 그렇게 해야지 머. 그런데 그놈이 그렇게 하겠어?”
어린 나이에 누가 공부를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이 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부를 그렇게 하기 싫어했네요. 영 단어를 제대로 암기하지 않았고, 수학 문제 식 적으면서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 후로 이 아이를 혼을 내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여기를 떠나자. 니 인생 정말 제대로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들어와야지, 처음부터 나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묶이면 인생이 너무 억울하다 하는 식으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가르쳤는데, 중학교 2학년~ 3학년 쯤 부터 이런 식으로 교육을 했습니다. 아이가 그걸 알았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그 나이에 이해를 해봐야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의 이해는 불가합니다. 혼을 내는 수 밖이었습니다. 강제로라도 말입니다. 수업 시간에 수업은 안하고 잔소리에 어르고 달래고, 그래도 도저히 안 되어서 손바닥을 매로 때리고 말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견딜 수가 없죠.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만 두겠다고 아이가 그럽니다. 저도 마음이 편할 리 없었습니다. 사실 저도 안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래 알았다. 나도 그만 할란다. 크면 다 알 텐데 후회는 하지 말아라...
그날 저녁 늦게 식당일을 다 마치고 고기 준비 해놨다고 아빠가 전화가 옵니다. 한 잔 하자네요. 아빠가 “제발! 형님이 한다고 그랬잔아요. 끝까지 봐주소. 저 놈 저거 고집은 있어도 아(아이) 는 착하잔아요.” 아빠도 큰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것이 좋았나 봅니다. 끝까지 봐 달라고 사정을 하는 소리 들으면서 날 샐 때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저도 인연이었는지 벗어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 후로 더 가열 찬 잔소리를 하고 손바닥을 때렸네요. 안 할 때 마다...
마음이 당연히 아프죠.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픈데 말입니다. 다행히 아주 뛰어 나지는 않았지만 참 열심히 했습니다.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저하고 시험 준비 해 가면서 인강 들으면서 말입니다. 운도 좋았는지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다 붙었습니다. 골라서 갔으니 말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까지 11살부터 19살까지 10대를 저하고 같이 보냈으니 제 자식이랑 같습니다. 아 물론 예전부터 머리 검은 짐승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제 마음속에서만 말입니다. 아이는 그냥 선생님 고맙다고 하지 그런 마음은 나이가 더 들어야 알겠죠.
제가 아이들에게 “ 나이 들어서 샘한테 오고 싶으면 빈손으로 오지 말아라. 어디 가도 어른 들 찾아뵈면 빈손으로 가면 못 배운 사람이라고 한다. 머라도 들고 오너라. 나중에 돈 벌면 좋은 것 사오고 콜라 1.5L만 사오면 되니까 언제든지 오너라.” 라고 합니다. 그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해서요. 그래야 부담 없이 왔다 갔다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콜라 사 들고 왔네요. 그것도 2통이나. ㅋㅋ
가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 너무 좋아요 너무 좋아요... 웃으면서 가는데 혼자서 속으로 너무 좋았습니다. 아이가 고생해서 지금 위치를 잘 지키고 좋아 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말입니다.
야구, 월드컵 이벤트가 간만에 없는 날이네요. 더불어 생각을 정리하는 포스팅 이었습니다.
남은 오후 시간 즐거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