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라는 주제를 받고도 오랜 기간 선뜻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기도 했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심리나 태도. 사전적 정의를 보고선 나에게는 낭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꾸는 꿈은 현실에 매여있다. 강남에 몇십억짜리 빌딩을 산다거나, 멀고 먼 브라질에서 사는, 그런 꿈을 나는 꾸지 못한다. 그저 내가 속한 삶에서, 어느 정도의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만을 바라며 산다. 그러면서도 아직 나는 젊기에 막상 그런 것들을 간절히 바란다면, 언젠간 이룰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도 함께 든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것들은 낭만이 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글쓰기를 포기하려던 참에, 본가에 다녀오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신소리를 자주 했다. 때로는 그 정도가 지나친 적도 있었는데, 나는 아빠의 그런 모습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아빠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허무맹랑한 것들을 원하곤 했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수백 장의 LP판이 있었다. 그중 일부는 오래돼 곰팡이가 핀 것도 있었다. 우리 집에는 턴테이블이 없었고, 그런 집에 있는 수백 장의 LP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자리만 차지하는 LP판을 버리고 싶어 했고, 그런 말을 꺼내면 아빠는 이 가수가 노래를 정말 잘한다는 둥, 이 곡이 좋다는 둥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아빠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툴툴댔다.
본가에는 아주 오래된 릴 테이프 녹음기가 있다. 아빠가 처음 이 물건을 가져왔을 땐, 또 구매한 가격을 들었을 땐 엄마와 내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요즘 같은 세상에 왜 이런 물건을 가져왔는지 우리 모두 이해할 수가 없었다. 크기도 크고, 무게도 어찌나 무거운지. 우리는 이것을 창고에 처박아두고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아빠는 나중에 내게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빠가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 아빠는 사람과의 관계 맺음이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모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년이었을까, 오랜만에 모인 친척 모임에서 돈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가 시작될 때였다. 아빠는 뜬금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동생을 불러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속으로는 ‘또 왜 저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후에 동생에게 나가서 무엇을 했냐 물어봤다. 아빠는 여기까지 왔는데 물고기는 보고 가야 되지 않겠냐며, 동생과 식당 앞 작은 개울에서 물고기를 봤다는 것이다. 그때 깨닫게 되었다. 아빠는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기어이 때 묻지 못했음을...
그 날 이후로 아빠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아빠는 세상과 함께하기엔 너무나도 순수한 사람이었고, 감정 표현에 누구보다 서툰 사람이었다. 아빠가 종종 하던 웃기지도 않던 농담은, 실은 자신에게 보내는 자조 섞인 웃음이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가끔 집 안을 둘러보면 아빠의 많고 많은 낭만이 못 견디게 밀려올 때가 있다. TV를 보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방구석에 있는, 내가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재생되지 않았을 수많은 LP판을 보면서, 낭만이 너무 많은 삶도 외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