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이든 음악이든 어떤 예술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어떤 의도나 감정, 혹은 바람과 같은 것들이 오롯이 느껴져 마치 만든 이의 혼이 담겨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창조자의 의도가 담겨있을지 모르지만, 위대한 예술 작품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감상하는 이에게 끼치는 그 영향력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적절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영향을 주는) 작품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2010년에 개봉했다가 최근에 재개봉했던 영화 『플립』을 보면서 당시 가장 필요했던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플립』은 '무지개처럼 빛이 변하는' 소녀 줄리와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눈이 빛나는' 소년 브라이스 간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자, 둘의 성장스토리입니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로맨스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둘의 성장을 통해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그 '무언가'를 가꿔가는 사람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못한 사람'과 '전체가 부분들의 합보다 더 뛰어난 사람'으로도 표현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구분은 '나무'라는 상징물을 통해 표현됩니다.

부분이 아닌 전체 풍경을 보기 위해 줄리가 종종 올라가 오랜 시간을 보내던 무화과나무는 주민과 시의 결정에 따라 베어지게 되고, 끝까지 반대하던 줄리는 그로 인해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줄리와 브라이스 가족의 저녁 만찬 자리에서 브라이스의 아버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다'라며 그 베어진 무화과나무를 언급합니다.
한때는 밴드에서 색소폰을 불며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그 옛날의 자신은 이제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밴드 활동을 하는 줄리의 오빠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브라이스 아버지는 물론 '무화과 나무를 탐탁지 않아 하던 사람'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그의 밴드 활동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그의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언젠가 그도 아끼던 나무 한 그루는 있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갈등을 거듭하던 줄리와 브라이스의 사랑은 둘이서 새로운 무화과나무를 심으면서 결실을 맺습니다. 줄리만의 전유물이었던 나무는 이제는 브라이스와 줄리의 공동의 보살핌 아래 새롭게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 종종 '나무'에 대해서, '나무'가 주는 심상에 대해서 떠올려보고는 합니다. 그리고 나무가 가리키는 그 '무언가'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본 글은 2017년 8월 25일 네이버 블로그에 직접 게재했던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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