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 to. @mipha
이른 새벽, 미처 달아나지 못한 비구름이 온 하늘을 덮었다.
머리 위에 머문 구름이 비가 올 듯하면서도 오지 않는 우중충한 날을 만들어내고 있다.
방에서 뒤척이는 아이들의 움직임이 들려온다.
뒤척임이 고요함으로 바뀌기를 마음 속으로 바란다. 그 어느 때 보다 간절하다.
바스락 거림이 사라진 주변은 고요하고,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낭만을 생각한다.
커다란 창을 가린 블라인드 사이로 새벽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지금이 그러기에 적당한 때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이십대는 벼랑 끝에 매달린 낙엽같았다.
그대로 떨어진다 해도 아쉬워할 이 없는, 처절하게 뛰어내리고 싶어도 살랑거리는 바람을 따라 목적없이 흔들리고 마는...
눈을 뜨면 씻고 옷을 갈아입고 무조건 길을 나섰다.
딱히 갈 곳은 없었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기에 마냥 걸었다.
나에게 주어진 건, 그 순간만큼은 영원할 것 같은 무한의 시간 뿐이었다.
걸으며 눈에 닿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사물에 부여하는 의미가 나에게 투영되어 나 또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다. 찾을 수 없는 자존감에 억지로 우겨넣은 무의미의 의미가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해가 비치면 해가 비쳐서 눈물이 났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눈물이 났다. 괴로운 일이 있으면 괴로워서 울었고, 그저 아무렇지 않은 날에는 지루해서 울었다.
낭만은 아름다운 것이어야 할까?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낭만은 아름다워야 하는 것만 같다.
나는 고전주의에 대항하여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중시한표출되는 인간의 감정
을 진정한 '낭만'이라고 정의하며, 주관적 감성을 지극히 '낭만'스럽게 바라보고자 할 뿐이다.
나의 이십대는 '낭만적'이어야만 하기에......
어린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출장이 잦았다.
긴 출장을 끝내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손에는 늘 책을 담은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소녀는 아버지와 책을 기다렸다. 책 속에는 소녀가 꿈꾸는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어른이 되면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줄로 믿었다.
낭만은 꿈꾸던 소녀는 벼랑 끝에 매달린 낙엽
같은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낭만은 갈망이란 옷을 얻었다.
그럼에도 '낙엽같은 어른이 된 소녀'는 생각한다.
내 인생에 낭만이 가득했으며, 가득하고, 앞으로도 가득하리라고
오늘도 나는 낭만을 꿈꾼다.
꿈이 아닌 현실의 낭만을 기다린다.
이 포스팅은 @garden.park님 주최, 한여름 밤의 도라지 위스키 글쓰기 공모전에 출품하고자 작성된 글입니다.
보잘 것 없다고 느낀 시절이었어도 낭만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이십대의 날들입니다.
그 시절, 그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